토요일 한낮, 전철 안에서 어제 산 김민정 시인의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를 읽으며 웃었다. 

첫 페이지 '시인의 말'부터 펴서 읽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서른 네 해째 나라는 콩깍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부모님아, 사랑도 다정도 병이라니깐요.'라는 메모에서 앞으로 펼쳐직 유쾌당혹발랄한 시어들이 벌써부터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집으로 본격 돌입하기 전에 제목들이  나열되어 있는 차례를 열어보니 첫 시 제목이 김정미도 아닌데 '시방' 이건 너무 하잖아요,다. 오규원 시인의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라는 시 제목이 광고 카피를 패러디한 것이라 화제가 되었다면 김민정의 시 제목들은 가요, 영화, 욕설, 섹스, 찌질함 등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또는 은밀하게 마주치는 그 모든 현상들이 소재요 주제로 종횡무진이다. '젖이라는 이름의 좆'은 워낙 유명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뛰는 여자 위에 나는 詩'라든가 '陰毛라는 이름의 陰謨'나 '페니스라는 이름의 페이스', '선우일란, 빵의 비밀' 등등 너무 알록달록해서 마치 어렸을 때 동네 사탕가게에 처음 들어온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김민정의 시가 이런저런 자극적이고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웃기기만 하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원래 시인이란 인생을 얘기해야 하는데 시냇물을 얘기한다든지 사랑을 얘기하는데 달이나 애기똥풀을 거론한다든지 하는 엉뚱하게 에둘러 말하기의 명수들 아닌가. 김민정도 그렇다. 웃으며 얘기하는 것 같지만 그 유머와 위악 속엔 날카로운 면도칼이나 사금파리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래서 '고비하는 이름의 고비'라는 시를 읽으며 언어유희가 재밌네 하고 마냥 웃을 수만 없고  '정현종 탁구교실'이라는 시를 읽으면서도 시인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너저분한 이름들 앞에서 느닷없이 삶의 비애를 느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너무 무겁게 대하면 살기 힘들어지는 것처럼 시도 너무 고귀하고 심각하게 대하면 쓰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내 주변 사람들의 취미와 버릇과 역사를 가지고 무심하게 만들어 던지는 시는 쉽게 읽힌다. 여기서 쉽게 읽힌다,에 방점을 찍기 바란다. 쉽게 읽힌다고 쉽게 쓰여지지는 않으니까. 자고로 쉽게 읽히는 글일수록 쓰기 어렵고 짧은 글일수록 쓰는 데 더 오래 걸린다. 김민정의 시가 그 적절한 예라고 나는 믿는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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