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에 뚝섬유원지공원을 산책하다가 희한한 버스를 한 대 만났습니다. 알록달록 반짝반짝. 슬쩍 봐도 몹시 ‘키치적’인 버스가 사람들의 호기심 속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희도 뭔가 하고 다가가 보니 어떤 아저씨가 스티커를 잔뜩 붙인 버스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버스 옆구리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KBS생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의 이름과 ‘200만 개 돌파’ 등의 글씨들이 씌어 있었구요. 맙소사. 버스에 붙인 스티커가 백만 개라는 말인 모양입니다.
버스 기사이자 주인인 아저씨에게 가서 사연을 들어보니 어느날 차 천정을 꾸미고 싶어서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한 게 방송을 타면서 점점 더 재미를 붙여 현재 230만 개에 달하는 스티커를 붙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붙이는 게 아니라 버스 천정은 붙인 스티커 위에다 하나하나 스테이플러를 덧박았고 바깥면은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게 순간접착제를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닥에 비닐을 까는 것은 물론이구요. 이 정도면 집착을 지나 거의 착란 상태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아무런 기대를 안 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런 버스를 만나면 황당해서라도 좀 웃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오늘 내가 이상한 버스를 만났는데…”라고 얘기 보따리를 펼쳐 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잠깐을 위해 이백만 개의 스티커를 붙이라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이런 건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해야하는 거니까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버스 안도 구경시켜 주고 원하는 아이들에겐 직접 스티커를 붙여볼 수도 있게 해주는 이 아저씨는 자신의 옷과 신발에도 스티커가 빼곡합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좋아서 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전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간에 아무튼 뭐든 백만 개 이상을 한 다는 건 ‘백만돌이 에너자이저’만큼이나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해를 기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똘끼를 발휘하는 이런 ‘무해한 똘끼’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내는 숨구멍 역할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밉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무해한 똘끼’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아저씨, 언제나 운전 조심해서 다니세요. 건강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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