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뚝섬유원지로 산책을 나갔었습니다. 저희 커플은 한강변에 사는 게 좋아서 평일 밤에도 강변을 따라 자주 걷고 또 주말이면 거의 매번 이곳으로 나와 역 광장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구경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특별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장터 한쪽 천막 안에서 윤호섭 교수님이 ‘그린 캔버스’라는 프로그램을 열고 계셨습니다. 윤호섭 교수님은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을 통해 환경운동을 전개하고 실천하는 에코 디자이너로 이름이 높은 분입니다. 저와는 IMF시절에 공익광고로 인연을 잠깐 맺은 적이 있죠. 어쩌다 보니 교수님이 아이디어를 내고 제가 거기에 카피를 쓰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땐 제가 연차가 너무 어렸고 또 같은 공간에서 작업한 게 아니라서 교수님은 기억을 못하실 겁니다.
윤호섭 교수님은 사람들이 가져온 티셔츠에 초록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주고 계셨습니다. 그림을 받은 사람들은 옆에 있는 모금함에 환경운동 성금을 성의껏 내구요. 저도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돌고래 제돌이에 대해 아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하고 예전 광고회사 다닐 때 얘기며 공익광고 얘기도 했습니다. 역시 기억을 하진 못하셨습니다. 광고작업을 손에서 놓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티셔츠에 교수님의 그림을 받고 싶었지만 마침 운동복을 입고 나온 상태라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들고 온 카메라 가방을 여친에게 맡기고 집에 가서 흰 티셔츠를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집까지는 15분 거리. 왕복 30분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습니다. 도중에 단골 수퍼 [신화마트]앞에 앉아있는 주인 아저씨를 만나 한참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아저씨가 일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인대수술을 받고 참 오랜만에 가게 앞에 나와계신 거였거든요.
집에 가서 흰 티셔츠를 찾아보니 마땅한 게 없었습니다. 의외로 흰색 티셔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에 띄는 티셔츠를 몇 가방에 챙겨 다시 뚝섬유원지역으로 갔습니다. 윤호섭 교수님이 그려주고 있는 그림은 돌고래 ‘제돌이’였습니다. 동물원에 갇혀서 재주를 부리는 돌고래는 행복하지 않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말이죠. 교수님은 이전에도 샴프 안 쓰기나 자전거 타기, 냉장고 안 쓰기 등 환경운동을 실천하기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그 실천적인 면이 존경스럽기도 했구요.
제가 교수님에게 그림을 받으며 예전 공익광고 얘기도 하고 최근에 아이디어를 낸 ‘뒤집을수록 맛있어지는 패자부활전’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교수님은 별로 관심이 없으시고 그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케이블 채널 TvN의 사진기자와 작가였습니다. 그들은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팀인데 마침 윤호섭 교수님 편을 찍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한테 윤호섭 교수님에 대한 인터뷰를 좀 하자고 해서 졸지에 카메라 앞에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하시는 환경운동에 대한 생각과 교수님에 대한 얘기를 좀 나누었습니다. 젊은 여자분인 작가선생이 “다음주 월요일 저녁에 방영될 것”이라고 귀뜸을 해주던군요.
집에 와서 교수님이 그려주신 티셔츠를 다시 펼쳐보니 기분이 참 뿌듯하더군요. 왠지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초록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싱그럽게 만들어 주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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