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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24 낮에 아리랑시네센터에서 혼자 -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러 간 날의 이상한 영화일기 (2)


일요일인 오늘 낮, 뒤늦게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러 갔다. 극장은 아리랑시네센터. 2000년대 초반 정릉에서 혼자 살 때 갔던 것 말고는 십수 년만에 가보는 극장이다. 구민회관입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형!" 하고 부르길래 쳐다보니 같은 동네 사는 배우 박호산이다. 작품 연습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요즘 좀 뜸했는데 밖에서 우연히 마주치니 반가웠다.


버스를 탔더니 어떤 아저씨가 옆에 앉자마자 내 넓적다리를 꽉 잡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손짓을 이상하게 하고 소리고 자꾸 지르는 폼이 뭔가 몸이 불편한 분 같았다. 이런 분은 혼자 버스에 타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앉아 있다가 아리랑시네센터 정류장이 가까워져 내리려고 좀 비켜달라고 했더니 얼른 다리를 접어준다. 알고보니 선량한 사람이었다.

극장에서 표를 사고 나와 먹을 걸 파는 집을 찾아 헤매다가 웬 화덕피자집에서 칠천 원짜리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끔찍했다. 스파게티를 내주고 남자 직원들끼리 점심을 먹고 있길래 혹시 피클은 안 주냐고 물었더니 냉장고에서 포장 피클을 하나 꺼내 주며 '200원인데 그냥 주겠다'고 한다. 돈 드릴게요, 라고 했더니 괜찮단다. 한숨이 나왔다.


극장에 올라가 표를 내보이는데 키가 작고 안경을 쓰고 목소리가 높은 남자 직원이 나를 쳐다보고 웃으며 "어떻게 저 있을 때만 오시나 봐요?!" 라고 인사를 한다. 저 여기 처음 오는데요, 라고 말이 헛나왔는데도 그 남자는 여전히 친한 사람 대하듯 싱글벙글이다.

극장에 들어가니 내 자리 뒤에 앉은 어떤 아저씨가 양말을 벗고 내 왼쪽 팔걸이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발을 내려달라고 정중하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두 줄 앞 좌석엔 할머니 두 분이 앉아 박근혜에 대해 큰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홍상수 영화를 보기엔 지나치게 고령이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뒤에 있던 그 남자 직원이 날 보고 또 인사를 했다. 영화를 같이 본 모양이었다. 엇 뜨거라 하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완전히 밖으로 나가려다가 아냐, 간단하게 영화 리뷰나 써야지 하고 극장 안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계단을 올라갔더니 그 남자 직원이 "뭐 두고 가셨어요?" 라고 반갑게 묻길래 그대로 다시 내려왔다. 이상한 날이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영화 리뷰는 다음에 쓰지 뭐.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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