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술관 관장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수잔에게 어느날 우편물이 날아온다. 전남편인 에드워드가 쓴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의 초고다. 그 소설엔 토니 헤이스팅스라는 남자가 나오는데 가만히 읽어보면 토니는 전남편 에드워드의 페르소나이고 그의 부인과 딸은 수잔이 살았을지도 모르는 또다른 삶의 모습이다.
수잔은 겉으로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사실 재정적으로 그리 편치 못한 상황이고 남편과도 냉랭한 사이다. 하물며 자신이 하고 있는 미술 일도 사실은 마음이 떠난지 오래다. 그런데 에드워드가 쓴 소설의 내용은 예전에 수잔이 잔인하게 에드워드를 떠난 일에 대한 비난처럼 읽힌다. 에드워드는 왜 이 소설을 그녀에게 보낸 것일까. 이 영화는 이런 ‘액자소설’ 구조를 통해 현재와 과거, 그리고 이루지 못한 미래를 굴곡진 시각으로 보여주는 ‘심리 스릴러’다.
우선 소설 속에 등장하는 폭력씬이 너무 길고 지루해서 힘들었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소설을 통해 추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괴로웠다. 감독은 ‘선택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하던데 수잔의 잘못된 선택이 이런 소설을 낳았고 그게 결국 교묘한 복수의 형태라면 이건 너무 졸렬한 게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다 싶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이동진의 영화평을 읽어보니 그는 이 영화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알레고리로 놓고 작품 안에 등장하는 수 많은 상징들을 해석해서 매우 고급스럽고 안정된 심리 스릴러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동진은 이전에 원작 소설도 읽었고 또 평소처럼 장면 속에 숨어 있는 상징성을 찾아 해석하는 재미(현실 속 수잔이 앉은 빨간 소파와 소설 속 아내와 딸이 강간 당한 뒤 피 흘린채 누워있는 소파 등)에 이 영화가 좋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일단 소설과 현실이 주고받는 공통점이나 연계성이 적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각도 너무 일방적이었다. 심지어 소설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캐릭터도 평면적이어서 좋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이는 주인공인 에이미 아담스나 제이크 제렌할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음악도 좋다. 그런데 전체를 이끌어 가는 플롯의 개연성이 떨어지는데다 마지막 장면까지 너무 고급스럽게 폼을 잡은 듯해서 영화 전체가 각본 감독까지 겸한 톰 포드의 아우라와 유명세에 기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솔직히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유수 영화제에서 격찬을 받고 있는 영화라는 게 좀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영화의 어디에 그리 열광하는 걸까.
내가 밥을 먹으며 휴대폰으로 검색한 결과들을 띄엄띄엄 말해주자 아내는 “근데 좋다는 사람들은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든대?”라고 묻길래 “몰라, 이동진이 빨아줘서 그런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하하 웃으며 ‘빨아준다’라는 표현은 너무 저속하니 쓰지 말았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아내도 이 영화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급스러운 식기에 담긴 그저그런 음식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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