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는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싸가지’조차 없어서 늘 다른 놈들에게 당하고 얻어터지기만 하는 ‘상 찌질이’다. 그러나 그는 싸움이 끝나고 나면 늘 자신이 이번에도 결국 이겼노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리는 ‘정신적 승리법’의 달인이기도 하다. 100년 전 대문호 루쉰은 ‘작금의 중국 동포들의 정신상태가 바로 이런 모습 아니겠냐’고 신랄하게 꼬집느라 이 소설을 쓴 것이었지만, 자고로 동서고금의 약자들에겐 그런 소심하고 편리한 상상력이라도 있어야 이 험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 법이다. 그건 20세기 최고의 사진전문잡지 ‘라이프 매거진’ 구석방에서 16년째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하며 살아가고 있는 소심남 월터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는 모히칸족 헤어스타일을 하고 스케이트보드 챔피언 대회에 나갈 정도로 도전적인 삶을 살’뻔’도 했으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로는 식구들을 봉양하느라 회사 생활에만 매진하다 보니 결국 일탈도 성공도 연애도 꿈꾸지 못하며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소시민이 되어버린 월터 미티. 그런 월터가 가장 잘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도때도 없이 멍때리기’다. 상상 속의 월터는 매우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힘이 세다. 한마디로 못하는 게 없는 수퍼 히어로다. 그러나 미망에서 깨어나 보면 회사에서 멋대가리 없는 점퍼를 입고 네거티브 필름실로 향하다가 기면발작하듯 ‘데이드림’에 빠지는 얼간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새로 나타난 재수없는 수염투성이의 구조조정 전문가에게 “야, 그런 수염은 덤블도어에게나 어울리지, 새꺄!”라고 쏘아붙이는 월터의 모습은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상형일 뿐이다. 


그런 월터에게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오프라인 잡지시대를 마감하고 온라인으로 전향하는 라이프지의 마지막 표지를 장식할 사진작가 션 오코너의 사진 중 사라진 ‘스물다섯 번째 컷’을 찾아 직접 그린란드로 날아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늘 행방이 묘연하고 세계 곳곳을 떠돌아 다니면서도 휴대폰이나 디지털 기기조차 쓰지 않는 괴짜 포토그래퍼 션을 찾아 떠나는 일에 월터가 처음부터 발벗고 나섰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가 몰래 짝사랑하는 회사 내 동료여직원 셜리의 눈빛과 미소가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그녀가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얘기만 듣고 자기도 그녀에게 ‘디지털 윙크’ 한 번 보내고 싶어서 덜컥 가입했던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의 상담원도 그를 부추긴다. “월터, 이제 망설임은 접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해 봐” 라고. 



영화는 20세기 한복판을 가로지른 역사적인 잡지 ‘라이프’의 몰락이라는 큰 그림 위에 월터의 정신적 성장이라는 구체적인 갈등을 던져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데뷔작으로 [위노나 라이더의 청춘스케치]라는 멋진 영화를 만들어 냈던(편의점에서 “맘,맘,마,마이 섀로나!”라는 노래에 맞춰 미친듯이 춤추던 주인공들의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헐리우드의 재간둥이 벤 스틸러는 이번 영화에서도 적절한 개연성과 깨알같은 유머로 관객들에게 일정량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전체적인 영화의 짜임새는 더소 헐겁지만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히말라야의 풍광들, 스케이트 보드 모티브, 빨간 마티즈 파란 마티즈,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 ‘A Space Oddity’ 등  곳곳에 숨어있는  촘촘한 에피소드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엷은 미소를 띄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뒷부분에 잠깐 등장하면서도 영화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숀 펜의 그 존재감이란. 월터의 어머니로 등장해 중요한 순간마다 슬기로운 조언을 해주는 셜리 맥클레인은 또 어떤가. 1983년 [애정의 조건]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는 자리에서 “난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외치며 데보랑 윙거의 눈물어린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를 어찌 잊으랴. 


미리 예상은 했지만 션이 "월터는 그 누구보다도 내 사진을 잘 이해했던 사람"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선물처럼 건냈던 문제의 ‘스물다섯 번째 컷’은 역시 우리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그것은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임과 동시에 상상에만 머물고 차마 실천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우리 모두의 '잃어버린 꿈'에 대한 아련한 찬가이기도 하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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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숀펜이 나오는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보러 인사동에 나갔다가 내친 김에 서촌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창민 사진전]에 갔었습니다. 전에 페북에선가 이 포스터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은 나는데 이렇게 불현듯 사진전까지 보러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사진전 마지막 날이라 화랑에는 작가와 작가의 친구분들이 바닥에 앉아 간단하게 술잔을 나누고 계시더군요.

전시된 사진들은 놀라웠습니다. 포스터에 실린 <브레송에 헌정>이란 작품도 좋았고 <도촬_길거리 쵤영>이나 <우회 혹은 배려>같은 작품들은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도 보는 사람의 시선과 통찰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작품들이 아이폰으로 촬영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는 바로 그 스마트폰 말이죠.ㅠㅜ


저도 요즘 카메라를 배우기 시작한 참이라 그 충격의 강도가 남달랐습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길거리, 학교, 직장, 공원 어디에도 이야기는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때마다 카메라가 없죠. 그래서 우리는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하다가도 “에이, 운이 좋아서 저런 소재와 마주쳤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야 사진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고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이란 논리가 성립되면서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그런데 아이폰 카메라가 DSLR을 비웃기 시작한 겁니다. 아니, 새로운 생각이 고정관념을 비웃기 시작한 거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죠. 한창민은 아이폰 카메라를 들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기도발이 잘 먹히는 계룡산 소백산처럼 이름난 산들은 많지만(정말 거기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 부처님과 접속이 잘 되긴 할까요?) ‘사진발’이 잘 먹히는 장소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창민 작가는 이미 SNS에서 유명인사라고 하더군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많은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텍스트를 제시하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이번 전시회도 지난 일 년간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에 올렸던 사진 3500여 장 중 64장을 골라 인화했다고 합니다. 뭔가 꾸준히 하는 사람은 역시 다르죠? 전시된 작품들 중 이미 팔렸음을 표시한 작품들이 많더군요.

 

저도 내일은 카메라를 들고 오늘 산책 나갔던 곳을 다시 한 번 나가봐야겠습니다. 찍고 싶은 장면들을 아이폰으로 대충 찍었지만 DSLR카메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아직은 노출도 셔터속도도 잘 모르지만 이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으니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아이디어가  모든 것을 결정하죠.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아마 내일도 변함없이 그럴 겁니다.

  

역시 작가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해주는 사진이죠? 

 이 작가가 찍기 전에도 누군가가 이걸 먼저 찍었을 텐데.

 핸드폰으로 찍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고 강렬합니다.

 이 꽉 찬 구도!

 이 사진도 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사진 찍다가 뺨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은 못 찍겠죠. ^^

작가님과 작가의 친구분들. 구도는 어느 정도 제 의도대로 됐는데 촛점도 안 맞고 노출도 형편없는, 바보같은 제 사진 하나 덧붙입니다. ㅜㅠ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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