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건 <원더플 라이프>였다. 상영관이 광화문 씨네큐브였는데 예매를 해놓고도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시간에 쫓겨 마구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헐떡이는 숨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지켜본 그 영화는 죽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 열흘 정도 림프계에 머물면서 자신이 살아있을 동안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무엇인지 반추해 보고 그걸 토대로 자기만의 단편 영화를 하나씩 찍는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일생을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으로 '도쿄 디즈니랜드에 갔던 때'를 꼽은 경우가 많았다는 기사에 충격을 먹어 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는 후일담을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아내는 원작소설을 읽은 것 같다고 한다)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죽음이든 죽음에 대한 생각이든 이 감독은 전혀 슬프지 않게 일상처럼 차분하게 다룬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 영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팬이 되었고 그 후로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등을 차례차례 극장에서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개봉한 그의 데뷔작 <환상의 빛>을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어제 보게 된 것이다. 영화는 아무런 이유 없이 3개월된 어린 아이와 아내를 남겨두고 스물여섯 살에 자살하듯 기차에 치여 죽은 남자 얘기로 시작된다. 망연자실한 아내. 그러다가 몇 년 후 아랫집 세탁소 아주머니의 소개로 멀리 바닷가 마을로 재혼을 하러 간다. 상대는 딸이 하나 있고 늙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다.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아이들도 여자를 잘 따르고 남자도 서글서글하니 잘 대해준다. 처음 남편이 죽었을 때는 도저히 못 살 거 같았는데 또 어찌어찌 다른 곳에서 정을 붙이고 살게 된다. 



여자는 전남편이 왜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는지 늘 궁금해 하지만 인생엔 끝내 답을 찾을 수 없는 게 너무나 많다. 여자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전남편의 죽음에 대해 현재 남편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남편은 담담하게도 자기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여자는 어쩌면 지금 남편이 시아버지에게 들었다는(마치 사이렌의 노래를 닮은) 수평선 위 반짝반짝 빛나는 '환상의 빛' 때문에 그 남자가 그렇게 된 건 아닐까 그냥 짐작해 볼 뿐이다. 분명한 건 누군가의 죽음 뒤에도 다른 사람들의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그걸 서두르거나 채촉하는 일 없이 카메라를 통해 천천히 바라볼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씨네21의 20자평을 찾아보니 그냥 다짜고짜 '환상의 힘'이라고만 쓴 평론가도 있고(진짜 이 영화를 본 건지 의심이 간다) '동전의 양면 같은 생사불이, 거기 아롱대는 빛의 매혹!"이라고 과대하게 의미부여를 한 사람도 있었다. '남겨진 사람의 통증. 답을 찾으려, 빛을 찾으려'라는 휘트먼의 싯구절 같은 평마저 있다. 내 생각엔 영화에 죽음이 나온다고 해서 그 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들엔 죽음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그 자체의 비장함보다 죽음 이후에도 또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따뜻하고 차분한 시각으로 관조하는 데 쓰임으로써 더 큰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악인이나 극적인 사건, 또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아도 그의 영화는 언제나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리라. 


이 영화는 만든 지 21년이나 된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내는 "저 어린 여배우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겠네..." 라고 혼잣말을 했다.  1995년 베니스 영화제 촬영상(황금오셀리오니 상), 카톨릭 협회상, 이탈리아 영화산업협의회 상을 수상하고,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것도 모자라,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게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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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예정되었던 일정들도 미리 앞당겨져 다 소화되는 바람에 졸지에 사무실에 한가한 바람이 불길래 옆방의 윤PD를 꼬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보러 가자. CGV압구정, 3시 20분 있네. 표는 내가 살게.” 


대뜸 넘어오는 윤PD. 그래서 오래 전부터 보고 싶어했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NHK의 대하드라마 [료마전]의 타이틀롤을 맡았던 미남 배우죠.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탐정물 [갈릴레이] 시리즈의 주인공이기도 하구요. 언제 봐도 준수한 외모와 좋은 인상,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자기관리 등으로 이름이 높죠. 1969년생인가 그런데 아직도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지금도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고 싶은 연예인’ 같은 앙케이트 조사에서 해마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엄청난 훈남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죠? 나 참. 


그런데 후쿠야마 마사하루만큼이나 저를 반갑게 했던 인물은 상대역으로 나오는 릴리 프랭키였습니다. 이름이 좀 이상하죠? ‘Frank Goes to Hollyood’ 라는 영국 그룹이 있었는데 거기서 따온 예명이랍니다. 이 사람은 연기자이기 이전에 일러스트레이터였고 칼럼니스트였고 작곡가였고 라디오 DJ였으며 소설가였습니다. 보잘것없게 생겼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눈부신 재능을 뿜어내는 인간이죠. 예전에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함께 [료마전]에도 특별출연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라는 자전적 소설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전 이 소설을 읽고 정말 펑펑 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광고 카피가 ‘우는 얼굴을 보이기 싫다면 전철에서는 읽지 마라’였다네요. 나 참. 그런데 아마 지금 읽어도 또 울 겁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 책을 읽고 그렇게 울었는데 이젠 저도 릴리 프랭키처럼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요. 



영화는 아이가 병원에서 바뀐 줄도 모르고 육 년 동안이나 친자식으로 키워오다가 어느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당황하는 두 집안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매우 극적인 사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늘 그렇습니다. 죽어서 림프계에 머물게 된다거나(원더플 라이프), 엄마가 아이들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버린다거나(아무도 모른다), 실직한 사실을 숨기고 형의 기일을 챙기러 부모님댁으로 찾아 온다거나(걸어도 걸어도) 하는 돌발상황을 던져놓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살아가며 변화하고 변화시키는 인간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관찰하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묵직한 울림이나 깨달음이 다가오는 것이지요. 특수한 상황을 통해 인류 보편적 가치까지 서서히 끌어올리는 통찰력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젊은 거장으로 불리게 한 힘일 것입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맡은 아버지 역은 빈틈없고 세련된 성공 비즈니스맨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이 문제도 아주 이성적으로 풀어가려고 하죠. 반면 상대편 아버지 역을 맡은 플랭키 릴리는 시골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문제의 아들 말고도 두 명의 아이를 더 키우고 있는 40대의 중년이구요. 당연히 영화는 후쿠야마 마사하루 부부의 입장에서 진행이 됩니다. 어쩐지…수학이나 피아노를 잘 못하는 거 보면 역시 핏줄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거야. 저렇게 초라한 전파상을 하면서 애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걸까? 차라리 우리가 두 아이를 모두 키우면 안 될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얼굴은 점점 초조해지는 반면 릴리 프랭키의 표정은 늘 여유가 있습니다. 그건 두 가족이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엘리트 아빠는 자기 친아들과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서먹서먹해 하는데 전파상 아빠는 패스트푸드점 놀이시설에서 아이들과 한덩이가 되어 뒹굴고 웃으며 순간을 즐깁니다. 어떤 가정이 더 행복할 지는 관객이 눈으로 지켜보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히로카즈 감독은 아이들을 참 잘 찍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를 찍을 때는 아이들에게 연기지도를 하는 대신 촬영 직전에 아이들에게 다가가 앞으로 찍을 내용을 귀에 조용히 속삭여 주고는 그냥 마음대로 놀게 했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자연스러운 연기들이 나오는 것이겠죠. 저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이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사랑스럽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생각이 있다’ 라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영화 도중 초밥 먹는 장면이 나오자 “외, 맛있겠다!”라며 입맛을 다시던 윤PD는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대뜸 초밥 얘기부터 합니다. 



윤PD : 정했어요. 오늘 저녁엔 혼자라도 회를 먹을 생각입니다. 

성준 : 영화 참 좋지? 


윤PD : 그러게요. 잔잔하게 찍었는데도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아요. 

성준 : 저런 게 바로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윤PD : 예, 애를 하나 낳아볼까 하는 생각이 다 들더라니까요. 

성준 : 하하. 잘 생각해. 



윤PD나 저나 둘 다 아이가 없는 놈들인데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상관 없습니다. 이 영화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영화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인지를 질문하게 하는 영화니까요. 그리고 좋은 인간이 되는 법을 함께 고민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니까요.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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