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내면 진다, 가뷔 바위 보! 안 내면 진다, 가뷔 바위 보...!"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하며 한 명씩 피구 경기의 팀원을 뽑는 모습이 보인다. 아니, 소리만 들리고 카메라는 한 소녀의 얼굴을 고정적으로 비추고 있다. 혹시 자신이 최후까지 남을까봐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고 있는 소녀. 그러나 결국 염려대로 자기가 맨 마지막까지 선택되지 못했다. 맨 마지막에 잉여 인력인 소녀를 억지로 데려가야 하는 팀의 친구가 뭐라뭐라 이 여자애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다가 맨 마지막에 "미안, 농담인 거 알지?" 하고는 게임을 하러 가버린다. 짧지만 슬픈 장면이다.
토요일 아침에 잔인하고 무서운 심리극을 보았다. CGV압구정에서 상영 중인 영화 [우리들]. 이건 11살 어린 아이들의 우정, 이 아닌 갈등을 다룬 영화다. 다시 말해 어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어린이 영화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뭐 그리 큰 갈등이나 고민이 있겠어,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삶의 갈등과 오해, 염려, 수직과 수평을 오가는 권력관계 등은 어린이들이라고 어른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게 편치 않은 건 그게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일이라 더 답답하고 끔찍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팽팽하고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윤가은 감독의 뛰어난 연출 덕분이다. 자신의 경험담에서 시작되었다는 영화의 주제는 아역 배우들에게 연기학원을 그만두게 한 뒤 일대일 개별 면담시간을 거쳐 배우들의 개성을 파악했고, 전체 내용은 모르더라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들은 정확하게 인식하게 한 다음에 자신의 표정과 대사로 펼치게 한 즉흥연기를 카메라 두 대로 찍어냄으로써 훌륭한 리얼리즘으로 형상화되었다. 이 영화의 출현을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비교하는 영화의 카피는 이전에 이 작품과 거의 비슷한 연출 방법을 먼저 선보였던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작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출 방법이 비슷하다고 폄하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것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기에 사용된 것이었을 테니까.
영화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들이 떠올랐다. 직접적이고 분명한 갈등들, 가슴을 후벼파는 대사들, 원형적인 인물들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모양이다. 뛰어난 어린이들의 연기는 물론 영화에 배치된 어른들의 캐릭터나 배경도 영화의 질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맨 마지막에 아주 희미한 화해의 가능성만 남겨두고 두 인물에 집중하는 카메라 워크는 이 영화를 끝까지 빛나게 한다. 특히 무심하게 들려오는 피구 경기의 앰비언스는 대학교 개방형 강의실을 물끄러미 비춰주던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마지막 씬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가 해외에서 상을 많이 타서 감독이 다음 작품을 좀 더 수월하게 연출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 토요일에 영화를 보고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급하게 쓴 감상문인데 기록의 차원에서 제 홈피에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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