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쓰게 되었네요. 독하다 토요일에서 정한 책의 마지막권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었습니다. 지난 9월 8일 오후 2시 대학로 서점 '책책'에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날은 모임이 끝나고 저희집 '성북동 소행성'에 가기로 했었고 옥상에서 맥주도 한 잔씩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김하늬 씨에게 우쿠렐레 연주를 부탁하기도 했었구요. 약속대로 김하니 씨가 우쿠렐레를 가져와서 더 즐거웠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아깝게도 김인혜 씨는 집안일 때문에, 손영연 씨는 회사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정아름 씨도 집안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고 김성희 씨는 결혼식장 갔다가 전철을 반대로 타는 바람에 고생고생하며 늦게 도착했습니다. 왜 그런 날 있잖아요.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그날만 이상하게 헷갈리는 날. 임기홍 씨는 여전히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원서를 들고 나타났구요. 독하다 토요일 때만 읽는 책이 틀림 없는데, 다 읽으면 자신이 정리한 영어단어장을 회원들에게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은 5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단편소설들이 모여 장편을 이룬 작품입니다. 좀 특이한 시도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이 작가 역시 '판타스틱'이라는 SF잡지에서 발견했는데요, 데뷔작이 <드림,드림,드림>이라는 단편이었습니다. 아쿠다가와라는 소설가를 알게 해주신 친할아버지에게 감사한다는 얘기를 어딘가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그런 언급 자체부터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소설을 읽고 혹딱 반했죠. 평범한 교사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이사장의 손자인 한문선생과 손을 잡고 귀신을 퇴치하는 내용인데 매우 재미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렇게 좋아하는 작가지만 윤혜자 씨는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태도로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어린 티가 팍팍 나는 글이라는 평가였죠. 그런데 김하늬 씨는 대체로 재미 있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요즘 들어 온기를 품고 있는 글들이 좋아졌는데 이 작가의 글이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주인공 중 칼에 오십몇 번이나 찔려 죽는 사람도 나오지만. 그러면서 등장인물 중 양혜경과 윤창민 등을 거론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짧은 글들임에도 완결성이 느껴지고 연결도 잘 되어 있어 좋다는 소감도 얘기했습니다. 

임기홍 씨는 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큰 병원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했습니다. 통속적인 남녀 역할이 바뀌어진 것들도 재미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외과수술을 잘 하는 천재소녀 얘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갑자기 '언어학 개론' 얘기를 꺼내며 'Me Tazan, You Jane' 얘기를 했고 퍼포먼스(실제 실행)와 컨피던스(내재적 능력)의 차이 등을 매우 심도 있게 설명해서 사람들의 기를 죽였습니다(자세한 내용은 물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천재들은 감성적인 면에서 무딘 편인데 여기 나오는 천재는 너무 쿨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소설 쓰는 사람들이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얘기를 쓸 수 있을까 늘 감탄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중간 이후로 좀 루즈해졌다가 마지막에 화들짝 놀라게 하는 면이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자기는 원래 '숲보다 나무를 보는 성향'인데 모든 인물이나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면에서 이 책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올리브 키터리즈]와 매우 비슷한 책이라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모여서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각자 예전에 읽었던 책을 떠올리는 것도 독서모임의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정아름 씨는 한 번 통독을 하고 다시 읽었는데도 재미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읽을 때는 어디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살피면서 읽었는데 진선미 아줌마 부분을 가장 웃으면서 읽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정세랑이 긍정적인 부분을 잘 다루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뭔가 세어보았다고 했는데( 열다섯 개라고 했는데) 뭔지는 생각이 안 납니다. 너무 늦게 정리를 하다 보니 이렇군요. 거듭 죄송합니다. 

김하늬 씨가 중간에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얘기를 했는데 아마 제목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윤혜자 씨는 작가가 '머리 좋은 편집자'로 느껴졌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이든 사람들은 잘 그리지 못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20대 30대들에게는 각광을 받을 만큼 잘 썼다는 얘기를 했고, 그것만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출판기획자의 입장에서 얘기를 해보면 무슨 책이든 연령층에 따라 독자층이 확연히 구분되기 마련인데 자신이 처음 기획을 했던 [마흔의 심리학]이라는 책도 중년들에겐 공감을 얻었지만 20대들에겐 외면을 받았던 경험을 떠올린 것 같았습니다. 

정아름 씨가 입사 10년차의 고민은 무엇일까 얘기를 시작했더니 김하늬 씨가 '회사 생활보다는 그 나이에 찾아오는 우울증 등 개인적인 심리가 더 큰 일'이라고 했고 이어 정아름 씨가 책 안에서 싱크홀에 빠졌던 여자의 슬럼프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하며 자신도 정신과 의사나 전문가의 상담을 한 번 받고 싶다고 했더니  윤혜자 씨가 상담은 자기가 해줄 테니 어서 돈을 내라고 농담을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어쩌다가 대학교 얘기가 나왔고 '통페합'에 대한 비판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졌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윤혜자 씨는 '출판사의 기획'에 의해 쓰여진 책인 거 같은데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다 보니  중간중간 기복이 느껴져 작가가 겨우겨우 썼을 것 같은 안쓰러운 느낌도 받았다고 했고 정아름 씨가 차라리 장편소설이라는 얘기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다루는 시선이 좋았고 특히 장유라 편에서 화물연대에게 빵을 주는 장면을 읽으며서 이 작가가 사회적인 문제도 잘 다루는 것 같다고 윤혜자 씨가 잠깐 칭찬을 했습니다. 

그후 관장합시다, 10년 후 영점 조정, 문용림 교조적이더라, 진선미 아줌마의 딸...등등 아무말 대잔치 같은 순간이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김성희 씨도 통폐합 얘기를 오래 했고 소설에서 귀에 벌 들어간 사람이나 컬에 찔린 사람 얘기는 너무 '잘 기획된 느낌'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임기홍 씨가 대학 얘기에 나도 공감한다고 하면서 9월이 수시입학이 절정인데 교사로서 입시를 대하는 부모들을 보면 마치 자녀의 배우자를 고르는 느낌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서동현 씨는 여기 모인 사람 중 자기만 공대 출신(건축과)이라고 얘기를 꺼내면서 이번 책은 많이 읽지 못하고 왔지만 일단 문체가 매우 좋았고 눈에 띄는 표현들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통속적이고 적나라한 일상을 잘게 다져서 계속 카메라로 비추는 느낌'이었다고 간단한 총평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건축가들도 다 스타일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전체부터 구상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작가처럼 장면장면을 그려서 나중에 한덩이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소설을 건축에 비교하니 또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김성희 씨가 자신은 '병원 드라마 성애자'라는 고백을 하며 그래서 이 책을 더 각별하게 읽었다는 얘기를 했고 그러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싫었던 기억들에 대해 얘기를 하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 그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임기홍 씨가 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에스] 얘길 꺼내며 '우리는 개체가 사라지기 전에도 진화를 하는 놀라운 일을 한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그냥 쫓아가기에도 정신이 없다'는 내용의 얘기를 해서 모임의 종말을 재촉했습니다. 

이날은 '혜화칼국수'로 이차를 가서 전과 칼국수 등을 먹고 약간의 술을 마신 뒤 약속대로 저희집 '성북동소행성'에 올라갔습니다. 각자 마실 맥주를 사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노을을 바라보며 놀있습니다. 커다란 다라이에 얼음물을 채우고 맥주를 담가놓았더니 뭔가 피크닉을 온 것 같았습니다. 김하늬 씨가 우크렐레를 꺼내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고 저도 답례삼아 기타를 가져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같은 뚜라미 출신이지만 저와 다르게 기타를 매우 잘 치는 임기홍 씨가 반주를 해줘서 사람들이 이런저런 노래를 많이 부르고 놀았습니다. 원래는 노을 지고 달 뜨면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너무 재미 있어서 열한 시 넘어서까지 놀았습니다. 

'독하다 토요일'을 시작할 때 함께 읽기로 했던 책들(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한강의 [흰] 김언수의 [뜨거운 피]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 모두 끝났습니다. 다음엔 번외편인 김탁환의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읽을 때 만나기로 하고 그때 다음 책들은 뭘로 정할까도 얘기해 보기로 했습니다. 

끝으로 제가 써 본 세줄평을 첨부해 봅니다: 

50여 명의 등장인물들이 희미한 끈으로  이어진 이 연작소설은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을 생각나게 한다.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많다. 생과 사를 다루기에 적합해서 그럴 것이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도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태피스트리처럼 엮여지는데 마지막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영화처럼]이 그랬듯이 극장에서 감동적인 결말을 맺는다. 가볍고 따뜻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살인이나 불륜, 연애, 섹스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도 차가워지지 않는 건 정세랑이라는 작가만의 능력일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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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역시 너무나 바쁜 한 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사 일도 바빴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엄청 바빠서 한가하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청와대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모든 영화와 연극 공연들이 망했습니다. 제가 그 기간에 봤던 한국 영화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이나 [스플릿]도 도 대중적 흡인력이 뛰어난 영화들이었는데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오죽하면 박근혜와 최순실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들이 난생 처음 치킨과 맥주를 시켜놓고 저녁 뉴스를 기다렸다고 할까요. 그러나 이런 모든 핑계에도 불구하고 '낭중지추'처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들이 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소설들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2017년의 국내 소설 Best5'를 마음대로 뽑아 보았습니다. 물론 제가 읽은 책 중에서만 뽑은 거니까 한 번 읽어보고 무시하셔도 좋습니다(순전히 제가 아직 못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김영하, 김애란 같은 일급 소설가들의 작품이 빠졌습니다). 

[82년생 김지영] 

방송작가 출신인 조남주가 쓴 이 소설을 올해의 베스트로 올리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2년도에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학 가고 연애하고 직장 잡고 결혼하고 애 낳았던 김지영 씨에 대한 이야기. 마침 레베카 솔닛 등의 저작으로 불붙기 시작했던 페미니즘 논쟁은 이 담담하면서도 탄탄한 소설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관습과 사고가 반성의 시간을 시간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의는 충분합니다. 쉬운 문장과 탄탄한 구성이 어우러져 흡사 르포타쥬를 읽는 듯한 사실감까지 선사합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나러 가는 자리에 선물해서 화제가 된 책이기도 하죠.



[거짓말이다]

우리 윗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이나 '광주항쟁'이 큰 상흔을 남긴 사건이라면 우리 세대는 '세월호'라는 커다란 트라우마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습니다. 소설가 김탁환은 단순히 세월호 유족의 슬픔을 다루는 데서 벗어나 세월호 잠수사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봅니다. 소설가의 임무는 당사자들과 같이 슬퍼하는 것보다 그 사건의 내면으로 들어가 원인과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데 있으니까요. 그래서 만나 사람이 바로 김관홍이라는 잠수사였습니다. 배가 물에 잠긴 뒤 희생자들이 다 숨진 후에 김관홍 잠수사가 진도 앞바다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냉정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인터뷰와 분명한 사건 재구성 등으로 읽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해 기어이 몇 번의 눈물을 쏟아내게 합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기뻐하다가 결국 목숨을 버린 김관홍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작업 일지처럼 쓰인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에서도 자세히 만날 수 있습니다. 두 권 다 추천합니다. 뒤늦게라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거짓말이다] 리뷰를 첨부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346?category=470827  


[사랑의 생애] 

우리나라에서 관념적인 지식인 소설을 가장 완성도 있게 쓰던 이는 아마도 [광장], [회색인]의 작가 최인훈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대를 잇는 작가로 저는 이승우를 꼽고 싶습니다. [생의 이면]이나 [식물들의 사생할] 등에서 보여준 그 사유의 힘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죠. 그런 그가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룬 소설을 냈습니다. 책의 제목은 '사랑의 생애'. 사랑이라는 관념을 유기체로 여기는 순간 인간의 몸 또는 마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사멸하는 과정이 생겨닙니다. 이승우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라는 냉정한 문장을 시작으로 사랑의 본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합니다. 그의 문장은 관념적이지만 논리의 고리가 탄탄해 지루하지 않고 같은 계보라 할 수 있는 최수철이나 이인성, 한유주 등에 비해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아 호감이 갑니다. 마침 며칠 전 쓴 리뷰가 있으니 그것도 첨부를 할까 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431?category=470827 


[채식주의자] 


조용하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형식은 엄격하지만 내용은 늘 파격적인 소설을 쓰는 젊은 소설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한강입니다. 그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는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작년에 이 작품이 번역자에게 주어지는 맨부커상을 수상함으로써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죠. 저는 수록되어 있는 세 작품 중 두 번째인 <몽고반점>의 끝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로 치면 이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을 볼 때의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올해의 책은 아니었지만 수상 이후 계속해서 팔려 '스테디 셀러'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광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혹시 안 읽으셨다면 나중에라도 꼭 읽으시길 권합니다. 단지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내가 이렇게 잘 쓴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라는 감탄을 하실 거라 장담합니다. 



[아무도 아닌] 


그런 소설이 있습니다. 뭔가 개인적인 경함담을 읽은 것 같은 현실감을 느끼다가 다 읽고 책 밖으로 나와보면 비로소 한 편의 우화로 느껴지는 이야기. 황정은이 쓴 소설들이 그렇습니다. 저는 맨 처음 그의 소설 <백의 그림자>를 읽고 너무 좋아서 며칠간 몸살을 앓았습니다. 진지하게 하는 농담을 듣다가 홀딱 빨려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이번 소설집에 있는 <명실>이나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정은은 착하고 선량한 사람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 는 걸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작가와 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만, 괜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상하죠?  제가 예전에 썼던 [백의 그림자] 리뷰를 첨부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197



[피프티 피플] 

'베스트5'라고 시작은 했지만 섭섭해서 한 작품 더 붙이렵니다. 바로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입니다. 한두 명이 주인공이 아니라 등장하는 50명이 모두 주인공인 소설을 쓸 순 없을까, 생각하면서 창비 블로그에 연재했던 소설. 그러나 62.5매를 쓰고는 힘에 부처 그만 쓰겠다고 말했을 때 편집자의 격려에 힘입어 마저 쓸 수 있었던 소설. 정세랑은 정말 이야기를 잘 만드는 작가입니다.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본격 엔터테인먼트 소설도 잘 쓰고 [이만큼 가까이] 처럼 아련한 청춘소설도 씁니다. 그리고 이번 소설처럼 병원이 무대인 경우엔 '56번 찔린 남자'를 다루거나 '케이크 자르는 칼로 270도로 목이 잘린 여자'를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비극적인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무슨 곤란한 일도 하하하하하, 라는 웃음소리와 함께 긍정적인 일도 돌려버리는 중년 여자가 등장하고 그녀가 자르면 수술부위에 피가 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수술을 잘 해서 '천재소녀'라 불리는 외과 여의사를 짝사랑하던 마취과 의사가 결국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되는 귀여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프트하지만 섹스나 불륜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잘 다루는 작가입니다. 제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마지막에 붙였습니다만, 특히 이 소설집은 인물과 인물들이 희미한 끈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숏컷]이 생각나는 소설입니다. 올해가 아니라면 내년 초라도 일독을 권합니다(작가가 재목을 '피프티 피플'이라고 쓰고사실은 51명을 등장시켰다고 작가의 말에 썼던데, 저도 'Best 5'라고 쓰고 6 작품을 등장시켰네요. 뭐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한 권이라도 더 소개할 수 있으면 좋지요)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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