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마종기
목판을 사서 페인트 칠을 하고 벽돌 몇 장씩을 포개어 책장을 꾸몄다. 윗장에는 시집, 중간장에는 전공, 맨 아랫장에는 저널이니 화집을 꽂았다. 책을 뽑을 때마다 책장은 아직 나처럼 흔들거린다. 그러나 책장은 모든 사람의 과거처럼 온 집안을 채우고 빛낸다.
어느 날 혼자 놀던 아이가 책장을 밀어 쓰러뜨렸다. 책장은 희망 없이 온 방에 흩어지고 전쟁의 뒤끝같이 무질서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자세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나는 벽돌을 쌓고 책을 꽂아 다시 책장을 만들었다. 아이는 이후에도 몇 번 쓰러뜨리겠지. 나는 그때마다 열 번이고 정성껏 또 쌓을 것이다. 마침내 아이가 흔들리는 아빠를 알 때까지, 흔들리는 세상을 알 때까지.
쉽게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오늘 아침에 신문에 실린 마종기 선생의 시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좋은 글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현상을 마치 신기한 것 보듯 하는 눈에서 시작하는구나.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구나. 좋은 문장이나 멋진 수식은 죄다 개뿔이었구나.
다른 시선 하나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구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24205929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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