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기계발업계에서 '아침형 인간'이 크게 우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더라는 이론이었는데 그건 나처럼 잠이 많고, 특히 아침잠이 많은 인간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렇다고 야밤에 일을 잘 하는 스타일도 아닌 나는 그저 '느즈막히 일어나 최선을 다 하다가 해 지면 술 마시고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정도의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던 터라 일찌감치 성공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행히 뜨겁던 '어얼리 버드' 열풍도 지나가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든 늦게 일어나든 신자유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누구나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도래함으로써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되었다.
라이프 코치 조정화가 쓴 [휴대폰 소녀 밈의 시간의 발견]은 어얼리 버드 열풍 이후 지금까지 여러 번 등장했던 시간 활용법에 대해 새로운 힌트를 제공하는 탄탄한 에세이다.
우선 반가운 것이 이 책은 '억지로 관리할 필요가 없는 시간관리법’을 표방한다는 사실이다. 즉, 정색을 하고 인생을 바꾸거나 할 필요 없이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인데, 조금 더 책 안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하루 24시간 중 우리가 정말로 일에 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직장이나 학교까지 가는 데 한 시간 남짓을 사용하고 자기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볼 때도 일과 관계없는 인터넷 서핑이나 휴대폰 사용, 메신저 대화 등등으로 호시탐탐 방해를 받다보면 어느덧 점심시간, 퇴근시간이 되기 일쑤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모자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지은이는 일단 '시간의 상대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님과의 한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가지만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무간지옥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원리 말이다. 지은이는 최신 영화 [인터스텔라]까지 예로 들며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척'만 하는 우리들의 생활습관 또한 매섭게 지적한다. '멀티태스킹'이 그 예이다. 철학자 한병철도 얘기했듯이 현대인은 멀티태스킹과 어울리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의 발달 등으로 인해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 결과 어떤 한 가지에 몰입하기는 더 힘들어진 것이다.
이 책은 멀티 태스킹에서 싱글 테스킹으로 가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 예를 들면 '불필요한 외부 정보를 차단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정한다',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등을 정확하게 조언해준다. 똑같은 시간이라도 몰입을 잘 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왜 한 가지 목표에만 끝까지 매달리면 안 되는지,혼자 있을 때 뭘 해보면 좋은지 등등도 페이지마다 깨알 같은 실제 정보를 통해 전해준다. 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처럼 애매하게 개인을 추궁하다 잠깐 위로하는 척하고 마는 슈퍼 베스트셀러들보다 나은 이 책의 미덕이다.
에우리피데스, 아우구스티누스, 벤저민 프랭클린, 허레이쇼 넬슨, J.P 모건, 장 폴 싸르트르, 톨스토이…등등 이 책에는 시간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들려주는위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철학자 한병철, 강신주,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 등도 기꺼이 출연해서 쓸모있는 통찰들을 들려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름난 사람들이 남긴 말들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문학적 주제와 상통하기 마련인데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정화는 우리가 시간에 끌려다니면 시간의 노예가 되지만 시간의 주인이 되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노라고 단언하다. 그리고 '시간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를 잘 사는 사람'이라는 통찰력 있는 결론을 내놓는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그런데 성공에 대한 갈망이 클수록 조급증을 낳게 되고 또 매순간 남과 비교됨으로써 끊임없이 시간에 쫓기게 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리고 성공을 이루어야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비극이다.
[휴대폰 소녀 밈의 시간의 발견]은 뜬구름 잡는 형이상학적 문장이나 간지러운 메타포 대신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을 짧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특히 매 챕터마다 등장하는 휴대폰 소녀 ‘밈’ 의 활약이 크다. 밈은 SNS를 통해 유명해진 캐릭터인데 24시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휴대폰 중독자다. 어찌보면 이 책의 주제인 시간관리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인물인 셈인데, 이 아이가 보여주는 짧은 만화 속 행태들이 영락없이 현대 젊은이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지면 공포심을 느끼고 액정이 깨지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이. 왠지 하루 종일 휴대폰 속에 빠져 사는 현재 대한민국 도시인들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가.
내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이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백날 묻고 다녀봤자 속시원히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이렇게 유용한 '참고서' 하나 읽어보는 것은 어떨는지. 내가 이 책을 통독하고 느낀 점을 한 줄로 요약해 보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간을 잘 다루는 사람이 삶의 주인이다'
한 권 사서 휘리릭 읽고 친구에게 줘도 좋고 한 권 더 사서 들고 다니다 생각날 때마다 펼쳐봐도 좋은 책이다. 혹시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이 책은 사랑 받을 가능성이 크다. 휴대폰 소녀 밈이 등장하는 만화 페이지만 대충 들춰보려고 펼쳤다가도 흥미롭고 공감가는 내용들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본문과 이어지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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