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를 보고 아내가 많이 울었다. 극장을 나와 얼굴이 빨개진 아내에게 왜 울었냐고 물었더니 챙피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무엇이 챙피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 역시 부끄러웠으니까. 우리보다 훨씬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미래가 아닌 더 큰 가치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젊은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일차적으로 부끄러웠고 우리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도 더 어른 같았던 선배들의 언행에 이차적으로 부끄러웠다. 지금처럼 시험에 나오는 지식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던 시대라 그런 '인간의 품격'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시인 윤동주는 어렴풋이 알지만 독립운동가 송몽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살았던 우리들의 얕은 역사 지식에 또 한 번 부끄러워졌다. 마치 영화 <암살> 덕분에 뒤늦게야 천만 명의 한국인이 김원봉이라는 거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처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중학교 땐가 무슨 상을 받으면서 같이 받은 시집이었다. 그 후로 계속 이 시집을 끼고 살았던 것 같다. 몇 년째 나의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명이 ‘하늘을 우러러 여러 점’인 것만 봐도 윤동주의 시가 나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윤동주의 시는 그저 막연히 아름다웠으며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그런지 글에서 늘 청년의 냄새가 났을 뿐, 그 시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으로 씌여졌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영화 <동주>를 만들기로 한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얼마 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만으로 참 감동적인 씨나리오를 썼다 생각하고 찾아보니 극본을 쓴 신연식은 <러시안 소설>이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인데 그가 먼저 씨나리오를 써서 이준익 감독에게 보여주었고 이후 둘이 같이 각본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백억 원이 넘는 흥행작을 주로 만들던 감독이 순제작비 5억 원짜리 흑백영화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모험’이었을 것이지만 이준익은 거기서 흥행의 부담감을 덜어낸 자유를 느꼈던 것이리라. 대신 이준익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과정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비록 적은 예산이지만 70년 전에 살았던 젊은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뜨거운 혈기는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펄펄 살아날 수도 있고 그냥 날아가 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감독과 제작자의 간절한 마음이 통해서 그랬는지 영화는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호연으로 찬란하게 빛이 난다. 북간도에서 함께 나고 자란 윤동주와 송몽규는 사촌형제다. 둘 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편인데 내성적이고 섬세한 동주에 비해 몽규는 행동주의자적인 면모를 지녔다. 당연히 몽규가 앞장서고 동주가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장난처럼 투고한 글이 동아일보 꽁트 부문에 당선되는 것도 몽규가 먼저다. 늘 시인이 되기를 꿈꾸던 동주는 뭐든 결심하면 곧바로 몸을 던지는 몽규가 부럽다. 몽규는 ‘니는 계속 시를 쓰라. 총은 내가 잡을 테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격과 성향이 달랐을 뿐 뜨거운 심장을 가진 것은 똑같았기에 결국 둘은 같은 감옥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 두 사람을 얘기하면서 배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우선 유아인을 제치고 동주 역을 맡게 된 강하늘(시나리오를 읽어본 유아인이 동주 역을 매우 탐냈으나 너는 너무 스타라서 안 된다며 감독이 거절했다는 얘기를 아내에게서 들었다). 섬세하고 내성적인 윤동주의 파리한 얼굴은 물론 원고지에 세로로 써내려가는 펜글씨까지도 윤동주의 필체를 닮았다. 이준익 감독도 영화를 찍으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윤동주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금 윤동주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윤동주가 된 사람. 이는 강하늘만이 아니다. 배우들 뿐 아니라 전 스태프가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윤동주평전을 읽었다고 하니 ‘과정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자는 감독의 다짐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영화의 제목이 ‘동주’지만 사실은 ‘몽규’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송몽규 역을 맡은 박정민의 연기는 대단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 취조장면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엄청나다. 박정민은 지치고 아픈 연기를 하기 위해 촬영 전날부터 물과 밥을 안 먹고 버텼으며 연기에 너무 몰입하느라 안압이 올라 실핏줄이 터지는 바람에 촬영을 중단하고 병원에 실려갈 정도였다고 한다.
감옥 창살 사이로 별을 헤아리며 동주의 목소리로 '별 헤는 밤'이 흘러 나올 때부터 아내는 울었지만 영화에서 가장 슬프고 아팠던 부분은 일본 경찰이 동주와 몽규에게 각각의 죄상을 적은 서류를 주고 서명을 요구하는 장면이었다. 동주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지장을 찍으면 될 것 아니냐며 서명을 거부하고 몽규는 거기에 적힌대로 내가 다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울부짖으며 서명을 한다. '우리는 문명국이라서 절차를 지키는 것’이라는 일제의 궤변 앞에서 목숨을 걸고 서명을 거부하는 젊은이도 불쌍하고 눈물을 뿌리며 서명을 감행하는 젊은이도 불쌍하다. 객석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진다.
면회 장면에서 동주의 죽음을 알리는 몽규의 비참한 얼굴이 눈에 선하다. 동주와 몽규가 살아서 지금 엉망이 된 우리나라를 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다행히 영민한 배우들이 있어서 조금 위안이 되긴 한다. 연기를 잘 하던 배우 박정민은 글도 잘 쓰는 모양이다. <톱클래스>라는 월간지에 매달 칼럼을 연재한다고 한다. 그가 쓴 글 <동주>를 덧붙인다. ‘언희(言喜)’는 말로써 기쁨을 준다는 그의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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