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아리의 소설 <미인도>를 읽었다.
한 노인이 길에서 쓰러져 사망했는데 몸을 뒤져보니 대학생 학생증이 나왔고,지문을 감식해 보니 놀랍게도 그 학생 본인이 맞더라는, 신기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중편소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신동으로 유명했던 전아리는 예전에 박웅현 ECD와 함께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한 적도 있는 젊은 작가인데 우리집에도 <즐거운 장난>이나 <시계탑> 같은 단편집이 있다.
동양화과 다니는 박성우라는 남자애가 우연한 기회에 아르바이트로 누군가의 별장을 지켜주러 갔다가 노골적인 춘화로 가득한 노인의 방에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어떤 섬이더라는 구운몽 같은 이야기다. '미인도'라 불리는 그 곳은 한복을 입고 옛말투를 쓰는 젊고 아름다운 미녀들로 그득한 섬이었는데, 여자들은 한결같이 새로 온 남자에게 관심을 표명하고 어떻게든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기운이 역력했다.
색정적인 기운이 넘쳐나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떤 남자든 누군가와 한 번 합방을 하면 그 순간 섬을 떠나야 하는 얄궃은 시스템이 문제였다. 그런데 웃기는 건 합방만 하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연애나 섹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인터코스'만을 피해 그 상황을 오래오래 즐기려는 야리꾸리한 상황들이 속출한다. 성우는 그 곳에서 누군가의 정사를 훔쳐보다가 그림 잘 그리는 게 탄로나는 바람에 섬 여인들에 의해 돌아가며 '주문제작 춘화'를 그리며 살게 되는데... 풋풋한 야설 같은 이 이야기는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스피디한 글쓰기에 힘입어 너울너울 단숨에 읽힌다. 한여름 납량특집극을 시청한 것 같은 알싸한 느낌의 스토리텔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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