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외로움'을 이겨낸다는 것이다. 스스로 홀로 되어 자신과 마주하고 세상과 독대하며 깊은 생각을 가다듬고 마침내 깨닫는 것, 이것이 모든 대가의 첫걸음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그랬고 수많은 음악가, 예술가들이 뭔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홀로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독공]의 저자 배일동도 그런 사람이다. 가난 때문에 원양어선을 타다가 뒤늦은 나이에 소리를 배운 그는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 7년 간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공부를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를 닦아세운 것이다. 그래서 [독공]은 우리나라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철학적 본보기이기도 하다. 



그는 성숙한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재주와 정신이 함께 익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주만 있고 덕이 없어서도 곤란하고, 반대로 덕이 빛나지만 재주가 변변치 않아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리공부를 하는 한편으로 수 많은 책들을 읽고 익혔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낱 소리꾼인 그가 어찌 이리 많은 한자를 알고 이렇게 많은 동서양의 지식을 쌓았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책을 조금 더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가 공부를 택한 까닭은 이렇다. 외국 공연을 많이 다니면서 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더불어 묻어오는 칭찬도 찬사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외국 음악가나 예술 석학들로부터 어떻게 판소리에 대한 영어 이론서가 하나도 없느냐는 질문을 들은 후로는 그 많은 칭찬과 찬사가 졸지에 빛을 잃었다. 자신의 소리를 한 자락 들려주면 누구라도 단박에 눈물을 터뜨리게 할 자신은 있지만 조금만 더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우리 판소리에 대한 변변한 책 한 권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물론 그를 가르친 선배들 스승들도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문서상으로 이론적인 토대를 탄탄하게 쌓아놓은 이는 없었다. 


판소리의 역사는 삼백 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우리나라 고유의 예술 철학이 담겨 있는데. 자칫 중국에서 들어온 것인가 하는 혐의를 뒤집어쓰기 딱 알맞은 조건인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그는 산에 있을 때 방 안에 벽지 대신 훈민정음 해례본을 붙여놓고 매일 들여다 보며 판소리의 발성과 장단 원리를 깨달으려 노력했다. 이러한 간절함 덕에 나날이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머릿속에 자신감과 할 말이 넘치게 되었고 마침내 책을 쓰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가 고리타분한 이론가나 꼰대스러운 예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남을 것이라는 예감은 그의 남다른 집필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판소리에 아이폰이라니! 그는 컴퓨터에도 익숙한 세대가 아니라 글쓰기에 애를 먹고 있었는데 우연히 스마트폰에 메모 어플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꾹꾹 자판을 눌러 글을 썼다는 것이다. 글쓰기부터 전통과 퓨전의 만남이요, 배일동과 스티브 잡스의 만남이었다. 


이는 ‘음양오행이나 동양철학들은 절대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학문이 아니다. 우주의 엄연한 질서를 인간의 상세한 관찰로 이루어낸 위대한 자연법칙들이다. 현대사회에서도 그러한 철학들이 문화생활의 원리에 얼마만큼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그의 퓨전 철학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아무튼 스마트폰 글쓰기에 맛을 들여 허리가 비뚤어질 정도로 글을 생산해내느라 의사한테 야단까지 맞았다는 배일동은 마침내 우리 문화사에 의미 있는 족적이 될 [독공]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이 책 이후에 판소리의 실제 이론을 다룬 제 2권이 곧 나올 예정이다. ‘명창’이라는 하드웨어적 자산에 ‘공부’라는 소프트웨어적인 추진력을 겸비한 그의 행보가 사뭇 궁금해진다. 그나마 우리 곁에 [독공]이라는 책이 방금 도착해서 여러모로 참 다행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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