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하늘색 웃도리를 입은 서현진이 식탁에 앉아 입이 미어터지도록 밥을 밀어넣으면 그 위로 '엄마의 마음이 놓이는 장면'이라는 자막이 뜬다. 옆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맛있니?" 계속 숟가락에 묻은 밥알을 핧아 먹으며 "어...!"라고 대답하는 서현진. 카메라가 밑으로 내려가면 그녀가 먹는 밥의 정체가 보인다. 햇반이다. 그것도 미처 밥공기에 덜지 못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것 그대로 퍼먹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얘 엄마는 뭐하느라 굶고 들어온 딸년 밥 한 공기 못 해먹이고 햇반 뜯어먹는 걸 옆에서 쳐다보며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는 걸까. 


나도 광고를 만드는 사람인데 남이 만들어놓은 광고를 헐뜯으려고 이런 글을 쓸 리가 없다. 더구나 이 광고는 아주 잘 만들어진 광고다. '마음이 놓이다, 햇반이 놓아다'라는 카피도 질투날 정도로 좋고 바스트샷 카메라를 압도하는 요즘 '대세' 서현진의 찰진 연기도 만점이다. 다만 그녀가 먹고 있는 밥이 문제다 햇반은 밥이 아니다. 카피처럼 '갓 짓은 밥맛'이긴 하지만 이건 알고보면 가짜다. 심지어 밥알도 진짜 밥알이 아니고 지어진 밥을 으깨어 다시 밥알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밥이 중요하다는 얘기고, 마침 고은정의 <반찬이 필요 없는 밥 한 그릇>이라는 책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므로 그 책의 유용함에 대해 소개하려는 것이다.


고은정은 약선 식생활연구센터 소장 겸 우리장 아카데미 대표다. 지리산 뱀사골 근처 '맛있는 부엌'에서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기도 하는 음식문화 운동가다. 한 마디로 요리 연구가가 아니라 음식 연구가인 것이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보다는 우리 몸에 좋은 음식 얘기를 많이 하고 음식 밑에 깔려 있는 인문학적 통찰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맛이 없어도 몸에 좋으니 참고 먹으라는 막무가내식도 아니고 우리 음식이 무조건 좋다는 식의 국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밥'에 대한 책을 냈다. 냄비나 압력밥솥 또는 전기밥솥에 쌀 씻어서 안치면 저절로 되는 게 밥인데 뭘 새삼스럽게 책을 다 냈을까. 


밥은 쌀과 물과 불이 만들어내는 삼중주의 예술품이다. 하지만 재료가 너무 단순한 탓인지 오히려 맛있는 밥맛을 구현해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재료뿐만 아니라 조리법조차 단순하여 밥맛 내기의 어려움에 한몫 거든다.


 위의 글처럼 이 책은 재료 뿐 아니라 조리법초차 간단하여 밥맛 내기에 어려움이 있음을 바탕에 갈고 들어간다. 그러면서 제대로 '요리'된 밥 한 끼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하게 하는지를 역설한다.  


우리의 밥도 다양한 재료와 결합하면 더 맛있어진다. 철마다 나오는 싱싱한 채소나 감칠맛 고는 해물들을 쌀과 같이 넣고 밥을 해 먹거나 조금 더 기분을 내고 싶은 날엔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를 넣고 같이 밥을 해 먹으면 밥도 요리가 된다. 흰쌀밥을 할 때 갖게 되는 반찬의 부담감을 밥 하나로 다 날릴 수 있으니 자꾸 밥을 해 먹고 싶어진다. 밥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맛있는 밥을 집에서 해먹는 것. 거기엔 밖에서 아무리 비싼 요리를 사먹더라도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기쁨과 충만함이 있다. 그리고 보온밥통에서 꺼내먹는 이름만 '더운밥'인 보온밥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이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매끼 새로 밥을 해서 먹을 수 없게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전기를 이용해 보온을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밥 짓는 수고를 힘들어하고 밥을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보온의 기능이 담긴 밥솥이 처음 들어왔을 때의 놀람과 기쁨을 잊지 못하지만 그건 정말 잠시였다. 수고를 덜고 시간을 벌었지만 밥맛을 놓쳤기 때문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한 이 대사 한 마디가 이렇게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될지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누구나 생래적으로 느끼는 삶의 본질을 건드린 대사라서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그만큼 우리에겐 한 끼니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당장 김한길의 에세이 [아침은 얻어먹고 사십니까]나 김훈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들춰보시라. 이 책들은 제목에서부터 우리의 삶이란 밥에서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도 처음 자취생활을 시작할 때 밥하는 법이 적혀있는 요리책을 산 기억이 있다. 요즘 영화 <곡성> 때문에 뭣이 중한디? 라는 말이 유행이다. 나는 정말 중요한 건 밥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제목이 '반찬이 필요없는 밥 한 그릇'이다. 그렇다고 맨밥을 먹으라는 게 아니다. 쌀을 잘 고르고 재료의 성질을 잘 이해하면 누구나 가장 소박하면서도 알찬 한 끼를 영위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책값이 만 원이다. 내가 가끔 가는 을지병원 뒤 평양면옥의 냉면 한 그릇 값인 만천 원보다 싸다. 지금 친구에게 냉면 한 그릇을 사주면 하루 고맙다는 소릴 듣겠지만 오늘 그 친구에게 이 책을 한 권 선물한다면 그는 아마 몇 년 동안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너무나 간단하고도 중요한 행복의 방법을 선물해 주었으므로.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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