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기 1

독서일기 2012. 5. 4. 11:15

 

 

이 소설은 1933년 추석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박경리의 [토지]가 1897년 추석날 시작하던 것과 비슷하지요? 첫 장면은 제사를 지낸 규와 태가 다음날 지리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십 리라고 했던 무덤까지의 거리는 그 두 배가 넘는 길이었다는 게 밝혀지죠. 그건 할머니의 양반이수’라는 뻥이었다고 같이 가던 중부가 알려줍니다. 양반이수란 양반들이 짐꾼들 삯을 떼어먹으려고 거리를 줄여 말하던 수작을 일컫는 말이었죠. 규와 태는 결국 지리산에 있는 할아버지 묘에 참배를 하고 나오다가 제사 지낼 때 펴놨던 병풍과 똑같은 풍경을 목격하고 할아버지가 수십 년 전에 화공을 앞세우고 거기까지 와서 그 풍경을 병풍에 그대로 담게 한 까닭을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규와 같이 산소에 갔던 중부는 몇 년 뒤 가출을 해버립니다. 독립운동 하느라 집안 다 말아먹고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중부를 보다 못한 백부가 마름 자리라도 해보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된 겁니다. 행방이 묘연한 중부는 지리산에 있는 ‘서동지’라는 사람을 찾아간 게 아닌가 하는 아련한 소문만 남깁니다.

 

규는 공부도 잘 하고 마음가짐도 바른 청년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박태영이라는 엄청난 천재와 친구가 됩니다. 고리끼의 소설을 탐독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불려간 사건을 계기로 박태영과 더 친해진 규는 돈 많은 지식인이자 자신을 ‘딜렛탕트’라고 자조하는 인물 하영근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중국의 노신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죠. 그리고 하영근의 딸 윤희에게 희미한 연정도 품게 됩니다. 일본인이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인 하라다 교장과 영어선생인 쿠사마도 만나게 되는군요. 지금 고등학교 진학 공부를 위해 상주에 왔다가 여관집 딸인 야스꼬의 수학문제를 풀어주는 바람에 이 여자와도 나중에 뭔가 이루어질 분위기를 풍깁니다…지금 134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어렸을 적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새삼 기억납니다. 중편소설인데도 스케일이 크고 꿈을 꾸는듯한 낭만적인 필치가 어지간히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이게 데뷔 소설이라니요. 그리고 그 뒤 고등학교 2학년 때 [행복어사전]을 읽으면서 얼마나 즐거웠던지. 지금 다시 읽으면 좀 구시대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병주를 읽으니,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랄까.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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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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