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아Q정전]은 ‘아Q'라는 이름도 불분명한 개망나니를 내세워 근대 제국주의 앞에서 쩔쩔매는 중국인들의 내적 모순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다. 그냥 남들이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니까 의무적으로 읽은 것이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어쩌다 친구와 이 작품 얘기를 하다가 “야, 근데 아Q 그 새끼는 착하지도 않잖아. 뭐가 불쌍해.” “아유, 그러게. 아Q는 잘 죽은 거야.” 같은 소리를 서로 주고받은 기억이 난다. 

김애란의 단편집 [비행운] 중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아Q 정전]이 생각났다. 택시 기사인 용대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멸시와 홀대를 받고 살아온 인물이다. 어느 집안에나 꼭 한 명씩은 존재하는 천덕꾸러기. 그런데 그 이유는 다 용대 자신의 처신 때문이다. 자기 형이 두부공장 하다가 말아먹고 도망 다닐 때 형을 좀 찾아봐 달라는 형수에게 용대는 오토바이 기름값을 달라고 했다가 욕을 먹었다. 누가 취직을 시켜줘도 진득하게 붙어있질 못하고 때려치우는 게 다반사인 성격이고 하다못해 형수가 밭애서 고추를 따고 있을 때도 종일 툇마루에서 기타를 치고 놀던 인사였다.

그런 인간이 기사식당에서 일하던 조선족 여자 명화에게 반했다. 어렵게어렵게 같이 외식을 하고 프로포즈를 하고 결국 결혼까지 했다. 언제가 중국에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명화는 암에 걸려 죽어버렸다. 용대는 명화가 죽은 후에도 쉬는 시간이면 괜히 중국어 회화 테이프를 틀어놓고 택시 안에서 따라한다.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 입니까.” 테이프에서 명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 쩌리 위안 마?” “여기서 멉니까?” 


김태용의 영화 [만추]에서 탕웨이가 오지 않는 현빈을 기다리며 “It’s been a long time...”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던 장면이 떠오르는 엔딩이다. 아Q처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심지어 그에게 애정까지 품는 것이 문학의 위대함이 아니겠느냐고 쓴 글을 얼마 전에 읽은 기억이 난다(박웅현의 책이었던가). 그렀다면 그 얘기는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도 적용된다고 나는 믿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우리 주변엔 잘 쓰는 작가들이 참 많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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