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함정임은 예전에 경향신문의 칼럼에서 "성인 남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 쓰기의 표현 욕망과 지면(紙面)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킨 매력적인 직종이 존재했다. 바로 신문 기자였다." 라고 하면서 "일찍이 그것을 터득한 기자 출신 작가가 20세기의 헤밍웨이, 카뮈, 김훈이고, 오늘의 장강명이다." 라고 쓴 적이 있다.
과연 장강명을 헤밍웨이나 카뮈에까지 견줄 수 있을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요즘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한겨레문학상 발표 즈음에서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이제 장강명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데 데뷔작인 [표백]을 읽을 때만 해도 그 말에 크게 동의하진 않았다. 그런데 한참 뒤에 강남구청역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우연히 [뤼미에르 피플]이라는 단편집을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샀다. 누군가 사서 한 페이지도 읽지 않고 되판 게 분명한 그 '헌책'엔 미카엘 엔데의 단편집이나 토마 귄지그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에 나올 법한 - 이책을 내게 빌려 준 진희 누나, 아직 내가 잘 가지고 있다오. 언제 돌려주러 꼭 갈게 - 재미있고 낯선 단편들이 그득했다. 그리고 근 일 년 새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열광금지 에바로드> 등 그의 소설들을 몇 권 더 읽었다.
그의 소설은 어떤 것은 기획기사 같았고 어떤 것은 르포 같았으며 또 어떤 것은 새로운 문체를 시도하는 예술가의 작품처럼 보였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잘 읽히고 나름대로 재미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지런한 작가라는 신문기자나 평론가들의 평 또한 또 하나의 공통점이 될 정도로 그는 열심히 쓰고, 쓴 날짜와 글의 양을 엑셀에 기록하고 그 성실성을 연료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굵직굵직한 공모전들을 좇아다니며 상금을 획득했다. 소설가라는 지위를 폼 잡는 엔터테이너나 고뇌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철저한 생활인으로 포지셔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이요 결과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에세이집을 냈다. 제목은 <5년 만에 신혼여행>.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갔다 온 3박5일간의 기록이다. 제목만 들으면 뒤늦게 신혼여행을 갔다 온 어느 커플의 알콩달콩 여행기일 것 같지만 장강명이 그렇게 알록달록하기만한 글을 쓸 리가 없다. 물론 소재가 신혼여행이니 어떻게 아내를 만나고 연애했는지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결혼 전의 에피소드들, 작가가 되기 전의 고군분투들이 재밌다. 그리고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틈틈이 펼쳐지는 결혼식에 대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화해에 대한, 직장생활과 꿈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들이 드러나는 대목들이 흥미롭다. 역시 장강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장강명은 실용주의자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 에둘러 가느라 글의 양을 늘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주장을 기술한 부분들은 직접 옆에서 귀로 듣는 것처럼 명료하고 통쾌하다. 그런데 정작 여행지에 가서 관광을 하고 음식을 사 먹고 한 부분은 별 재미가 없다. 아마도 여행지가 긴장감이나 새로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보라카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원래 계획했던 터키 이스탄불이나 일본 대신 거길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다. 가난한 부부의 형편에 맞게(또는 늘 비용 대비 효용으로 고르던 그 커플의 버릇대로) 고르다 보니 거기가 된 것일 뿐. 두 사람이 어찌나 싸구려 상술과 바가지 요금에 시달렸던지 마지막엔 둘 다 "이 놈의 보라카이..." 하며 이를 간다. 그러나 상관 없다. 우리는 보라카이라는 나른한 관광지 덕분에 소설가 장강명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대충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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