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짧은 글 짧은 여운 2016. 9. 27. 17:36

*오늘 비도 오고 하길래 어머니에 관한 글을 페이스북에 써서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하시며 '좋아요'를 눌러 주셨습니다.





<전화>




서른넷.
비교적 늦은 나이에 부모님의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다.

집안의 막내이긴 했지만
곰살맞은 아들은 아니어서 
남들처럼 주말마다
부모님 집으로 찾아간다거나
하진 못했는데

대신, 매일 저녁 일곱 시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화를 했다.

전화는 대부분 어머니가 받았고 
아버지가 받는 날도 가끔 있었는데 
그런 날은 정말 통화가 짧았다.

식사 하셨어요? 
그래, 먹었다. 어서 쉬어라. 
네...


2000년 1월부터
2012년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매일 저녁 일곱 시면
어디서든 전화를 했으니 
횟수만 헤아려도 
수천 통은 될 것이다.

내가 일곱 시면 휴대전화를 손에 드는 것처럼 
어머니도 일곱 시면 전화기 옆에 가 계셨다.


옆에 아버지가 계실 때는 
짧게 인사만 하고 끊으셨지만
(그래, 별 일 없다. 쉬어라) 
혼자 계실 때는 통화가 길어졌다. 
어떤 날은 30분이 넘을 때도 있었다.

통화가 길어지는 날은 
어김없이 아버지, 형 얘기였다.

신세한탄을 하고 싶은데
나 말고는 아무한테도
할 수 없는 얘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전화 거는 시간을
여섯 시로 바꾸라 하셨다.
(요새 니 아버지가 일찍 들어온다.
밖에 일이 없나봐)

그때부터 나는 저녁 여섯 시면 
일을 하다가도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일사후퇴때 혼자 내려와 
평생을 우리집 식구들을 위해 
일하고 돈벌고 속썩고 하던 어머니는 
말년에도 가만히 앉아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는 신세는 못 되었다.

막내는 아예 결혼을 안 했고 
큰아들은 나가 살다가
결국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요즘 혹시 만나는 여자는 없는지 
가끔 물으실 때도 있었다.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늘 없어요, 라고 짧게 대답했다.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마음을 고쳐먹고
뒤늦게 결혼하겠다고 
지금의 아내를 데려갔을 때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집에 데려간 여자애 말고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내를 
보자마자 좋아하셨고 
아내도 어머니를 좋아해서 
참 다행이었다.


우리 결혼식도 못 보고 
너무나 급하게 돌아가신 어머니.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오늘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가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난다.


고맙고 
미안하고 
불쌍한 
우리 어머니.


오늘 같은 날 전화를 드리면

어디 아픈 덴 없냐. 
밥은 먹었고?
라며 반가워하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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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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