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러스트 앤 본]을 ‘Watcha play' 서비스로 보았다(서비스 가입을 해놓고 시간이 없어서 못보다가 며칠 전 해약을 했는데 이번달 말까지는 뭐든 볼 수 있다고 해서 문득 어제 이 영화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녹과 뼈’라는 이 제목은 동명 소설집에서 따왔다는데 불어와 연관되어 가깝게는 ‘주먹다짐’을 뜻하기도 하고 넓게 보면 ‘녹을 벗겨내다’라는 의미로까지 확장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영어나 불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좀 더 심오한 뜻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냥 그 정도로 어림짐작을 할 뿐이다. [예언자]나 [내 심장을 건너뛴 박동]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영화지만 내게는 마리옹 코띠아르의 영화라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마리옹 코띠아르의 얼굴과 표정이 좋다.[인셉션] 같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그 번듯한 미모가 빛나지만 이 영화처럼 캐릭터 중심의 작품에서는 잘생긴 얼굴이면서도 한편 평범하기도 하고 회한이 서려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연기를 참 잘 한다는 얘기다. 

이번 작품에선 사고로 두 다리가 잘린 전직 범고래 조련사 역이다(특수효과를 잘 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정말 두 다리가 잘린 채로 나온다). 그런 여자가 사고 이후 처음으로 남자에게 안겨 머뭇머뭇 바다 수영을 하는 장면도 좋았고 남자의 제안에 의해 첫 섹스를 한 뒤 또 하고 싶어질 때마다 ‘출장 가능?’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도 좋았다. 나중에는 남자친구의 브로커 역할을 맡아 의족을 달고 길거리 싸움 현장에서 유유히 지폐를 세는 장면조차도 그녀라서 잘 어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알리로 나오는 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의 연기도 훌륭했다. 몸으로 살아가는 전직 복서이자 현 경비원인 짐승남의 역할을 무심한 척 능숙하게 연기한다. 

이 영화는 스테파니의 잘린 다리로 시작해 알리의 길거리 주먹싸움 장면에서 튀는 핏방울들과 상처와 치아, 마지막 얼음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빙판을 부수는 장면 등 육체를 날것으로 다루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아마도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살아간다는 것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이처럼 매순간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처럼 살아가기 팍팍한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들을 관조적으로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아들을 구하느라 주먹뼈를 다친 알리가 병원에서 아들이 깨어난 후 스테파니에게 처음으로 휴대폰을 통해 사랑고백을 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음악이나 촬영도 훌륭하다. 201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작이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게 밀려 수상은 하지 못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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