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 한 번 본 것 말고는 어떤 사전지식도 없이 갑자기 어젯밤 신사동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극장에 혼자 가서 [마스터]를 봤다. 올해 12월 31일까지 쓰지 않으면 휴지가 되는 영화초대권이 있어서였다. 별 생각 없이 선택한 흥행작이었는데 감독이 [감시자들]의 조의석 감독이라는 걸 알고 나서 '최소한 스피디하고 영리하긴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감시자들]을 보고 조금 놀랐었다. 특히 서울시내에서 감행한 몹씬이나 추격신이 인상 깊었다.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도둑들]이 생각나는 케이퍼 무비. 등장 인물들의 선악 구분이 뚜렸하고 사건도 명쾌하지만 이리저리 속도감 있게 엎치락 뒤치락 하는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색다른 금융지식을 등장시키고 실제 인물들의 일화까지 반영하는 등 시나리오에 골고루 양념을 쳤다. 그러다 보니 러닝타임이 무려 143분. 영화 두 편을 한꺼번에 몰아본 기분이 든다. 하지만 길다고 꼭 지루한 건 아니다. 일단 이병헌이라는 확고부동한 스타가 중심을 잡아주고 강동원과 김우빈도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 하기 때문이다. 연기를 잘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잘 수행하는 느낌이랄까. 왜 그런 거 있잖은가. 수퍼세션맨들이 모여서 한 무대에 섰는데 어느 하나 튀지 않고 각자의 연주가 온몸으로 골고루 스미는 쾌감. 엄지원, 진경, 오달수는 물론 잠깐 나오는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까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적절하게 열연을 펼친다.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가벼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영화다. 악당들은 수 조원의 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표정이나 말투가 장난치듯 경쾌하고 경찰들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악당들에게 이죽거리는 여유를 부릴망정 크게 주눅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이게 이 영화의 승리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대한민국은 영화나 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역동적이고 엽기적인 일이 많았는데 영화에서까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달려나간다면 참 견디기 힘든 노릇이 아니겠는가. 최근 김성수의 [아수라]가 대박을 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그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입만 열면 들리는 3조 원, 6조 원 등의 금액이 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걱정 마시라. 내년에도 박근혜 최순실 패거리들이 벌인 국정농단 사건이 베일을 벗을 때마다 우리는 계속 그런 단위에 익숙한 서민들이 되어야 할 테니까.  

이 영화가 '천 만 관객'을 찍을지 안 찍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몇 년 후 다시 봐도 배우들의 활약만큼은 '미친 존재감'의 레퍼런스로 남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영화가 끝나고 송년 회식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뒤늦게 전화를 했다가 치사하게 혼자 그런 영화를 보느냐고 야단을 맞았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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