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으로 이사를 와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었다. 아파트에서는 없던 우리만의 뒷마당이 생겼고 거기엔 동네 길고양이들이 이따금씩 출몰했다. 단독주택이긴 했지만 내부는 단칸방처럼 좁디좁은 집이고 또 우리 부부는 고양이나 개를 기르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지나가는 고양이라도 우리에겐 반가운 손님이었다. 아내가 어느날 고양이 사료를 사오더니 뒷마당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사료와 물을 놓아 두기 시작했다. 그릇은 이가 빠지긴 했지만 노란색 루꾸르제 대접이었다. 그러자 길고양이들이 와서 먹이를 챙겨 먹었다. 계단 밑에 스티로폴 상자에 담요를 깔아두기도 했지만 거기 와서 잠을 자는 고양이는 없었다. 

길고양이들의 겨울나기는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길에서 아무 거나 먹고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 시동이 꺼진지 얼만 안 되는 자동차 엔진 밑에서 잠을 자다가 아침에 변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병원에 데려가주는 주인이 없으니 병에 걸리면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거나 앓다가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길고양이들의 수명은 아주 짧다고 한다. 

아내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 와서 사료를 먹던 고양이 두 마리를 양일이, 양이라고 불렀다.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녀석이들이었는데 새끼가 먹이를 먹을 동안 어미는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제 새끼가 배불리 먹이를 먹고 나면 비로소 자기도 와서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일이 양이 사이로 양삼이가 나타나기도 했고 나중에 양사까지 나타나 먹이를 두고 서로 으르렁거렸다. 우리는 큰 덩치로 기존의 고양이들을 윽박지르고 먹이를 독차지하는 양삼이를 미워했다. 게다가 어느날인가부터 양일이와 양이가 차례차례 보이지 않게 되자 그 미움은 더 커졌다. 양삼이는 덩치가 크고 검은 색깔 털을 가진 고양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양삼이도 양사도 결국은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 신세인 것을. 그래, 너라도 많이 먹어라. 아내는 양삼이, 양사, 그리고 양오까지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아낌 없이 사료를 퍼주었다. 양오는 한쪽 귀가 조금 잘린 놈이었다. 나는 고양이들끼리 싸우다가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내는 어딘가 잡혀가서 중성화를 당하고 다시 풀려났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렇게 번갈아 먹이를 나누어 먹다가 어느날인가엔 결국 모두 사라지고 양오 하나만 남게 되었다. 

양오는 도대체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면 베란다 위에 앉아서 우리를 힐난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이제야 일어나는 거야? 이 게으른 것들. 어서 먹이를 줘."라고 하는 듯한 얼굴을 한 채 발걸음을 계단쪽으로 향했다. 어떤 날은 저녁때도 찾아와 먹이를 요구했다. 아내는 기가 막힌다고 하면서도 그때마다 양오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양오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우울한 목소리를 “여보, 양오가 안 보여.” 하며 걱정을 했다. 아침마다 마당으로 나가면 늘 우리를 쳐다보던 놈이 안 보이니까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작은 집에 사는 두 사람에겐 길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가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그런데 만우절인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거짓말처럼 양오가 돌아와 있었다. 없어진지 사흘 만이었다. 다행이다. 어딜 갔다 이제 온 거야.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저 어서 밥을 달라고 우리를 노려볼 뿐이다. 아, 이런 놈에게 계속 밥을 줘야하는 건가. 생각해 보면 우리도 참 불쌍하다. 그래도 잘 돌와왔어. 웰컴백이다, 양오야.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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