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자발적 노동착취의 현장 - 은곡도마 체험교실>
우리집에 있는 도마 이름이 은곡도마다. 박달나무로 만든 고가의 제품. 아내가 은곡도마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나도 매일 그 도마 위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살고 있으니 아주 무관하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도마는 은곡 이규석 선생의 작품이라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데, 목공예 예술작품만 만들고 지내던 분이 '도마 메이커'가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딸 소영 씨 덕분이었다. 열 살때부터 소리를 배워 해외 무대까지 발을 넓혀 공연을 다니던 소리꾼 소영 씨는 우연히 은곡도마 아이디어를 낸 이후로 아버지의 일을 도와 이 제품의 제작, 배급은 물론 홍보, 마케팅 등 온갖 궃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아내가 몇 주 전부터 '은곡도마 체험교실' 날짜를 잡고 멤버들을 모았다. 은곡 선생이 오래 전부터 한 번 꼭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혜숙과 그의 남편 표문송, 윤혜자와 그의 남편 편성준, 옆집 총각 서동현까지 갑자기 몽골 여행을 떠난 한 친구만 빼고 원래 같이 가려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서울에서 소영 씨 부부와 네 살짜리 아들 희수도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목적지는 인제군 필레에 있는 은곡 선생의 작업장. 전날 동현은 반차를 내고 송명섭막걸리 등 술을 준비하는 성의를 보였다. 말이 도마 체험장이지 사실은 캠핑인 것이다. 우리는 작업장으로 가기 전 인제의 하나로마트와 그 앞 정육점에 가서 고기와 술을 더 샀다. 도마 작업은 우리가 가는 캠핑의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일정은 마시고 노는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드넓은 비닐하우스 안에는 도마 말고도 은곡 선생이 만든 작품들이 즐비했다. 달마대사가 있는가 하면 새가 있고 섹시한 여인의 모습이 있도 의자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도 있었다. 짓궃은 성기 모양도 있었다. 하나 같이 그 전에는 그냥 나무일 뿐이었는데 예술가의 눈에 띄는 바람에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경험을 한 피조물들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소영 씨에게 작업 지시를 받았다. 평평하게 도마 모양으로 절단된 나무토막을 사포질을 해서 매끄럽게 만든 후 작업용 기름을 칠하고 잽싸게 천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해야 한다. 그것도 한 번에 하는 게 아니라 몇 시간 정도 텀을 두고 해야하는 제법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다섯 명의 용병들이 검은색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서울에서 각자 가져 온 앞치마를 하고 작업대 앞에 서서 조를 나눠 작업에 임했다. 누구는 도마를 날라오고 누구는 기름칠을 하고, 옆에서 그걸 받아서 기름을 얼른 닦아내고 도마가 잘 마르도록 건조대에 수납하는 일을 정성껏 했다. 신선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하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건 다들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소영 씨가 우리 옆에 와서 이렇게 고급 인력들이 내려와 일을 해줘서 고맙다며 격려를 해줬다. 비닐하우스 바깥에서는 동네 사는 인부들이 모터로 그라인딩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은곡 선생이 작업용 나무들 중 안 쓰는 것들을 모아 숯불을 만들어 주셔서 고기를 구웠다. 먼저 소고기를 구웠다. 문송이 구웠는데 음식에 엄격한 동현이 육즙이 마를까봐 굉장히 긴장하는 얼굴로 고기를 지켜보다가 고기가 채 익기 전에 얼른 들고 상으로 와서 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숯불에 구워서 그런지 더 맛이 좋았다. 돼지고기도 구웠다. 좋은 고기를 산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넉넉하게 사온 고기 사이로 오징어도 구워 '오삼불고기'를 만들어 먹었다. 송명섭막걸리를 비롯한 각종 막걸리와 처음처럼이 번개처럼 비워졌다. 아내가 작업장으로 배달을 부탁한 문어도 도착했다. 안주와 술이 넘친다.
소영 씨가 어느 정도 먹었으면 이제 저녁작업에 들어가자고 말했다. 다들 비닐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하고 작업대 앞으로 가서 도마에 기름을 칠하고 천으로 기름을 닦아내고 건조대에 조심스럽게 수납을 했다. 다리가 아팠다. 팔도 아팠다 소영 씨 말에 의하면 내일 아침에 손가락 끝이 굉장히 아플 것이란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떨어뜨릴까봐긴장하느라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작업자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도대체 쉴 틈이 없었다. 도마 하나를 건조대에 수납하고 나면 기름을 닦아내야 할 도마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마셔서 화장실에도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었다. 아, 어쩌다 이런 덫에 빠져버린 것일까.
카피라이터 출신 광고인이 둘, 기획팀장 출신 광고인이 하나, 출판기획을 하고 있는 기획자 하나, 화장품 회사의 인테리어 팀장 하나. 이런 단순 작업을 하기엔 우리들위 학력이나 지위가 너무 높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오고 간다. 그러면서도 칠 똑바로 해라, 기름 잘 닦아내라, 떨어뜨리지 마라 등등 서로를 감시하고 독려하는 데엔 게으름이 없다.
작업은 명목일 뿐, 사실은 놀러 가는 거라는 윤혜자 여사의 꼬임에 빠져 순진하게 따라 온 나머지 네 명은 원망하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지만 윤 여사는 '나도 피해자다' 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 은곡 선생의 이웃인 동네 어른들이 놀러와서 술을 마시고 소영 씨에게 소리를 시키고 한다. 소영 씨가 어른 접대차 하는 소리 '사철가'를 들으며 우리들은 열심히 사포질을 했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겨우 겨우 도마들을 정리하고 다시 모여 술을 마셨다. 은곡 선생이 특별히 춘향가 한 대목을 들려 주셨는데 소영 씨가 북을 치고 은곡 선생이 소리를 하는 아주 멋진 무대였다. 소영 씨가 소리를 배울 때 아버지도 함께 소리를 배웠다는데 정말 솜씨가 대단했다. 타고난 예술가 집안이 아닐 수 없다. 가져간 텐트를 하우스 안 빈 공간에 쳤다. 몇 년만에 쳐보는 텐트를 어둠 속에서 치려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 텐트 여자 텐트로 나누어서 잤는데 밤새도록 빗소리가 들려왔다.
일요일 아침에 소변을 보려고 일어났다가 다들 주섬주섬 작업대에 모여 사포질을 시작했다. 웃음이 나왔다. 어느덧 작업에 중독이 된 모양이었다. 우리가 열심히 할수록 고품질의 도마가 만들어진다는 데 묘한 쾌감과 자부심이 따라왔다. 은곡선생이 오시더니 이번 자원자들은 작업 수준이 매우 높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우리는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작업도 잘 한다는 소영 씨의 뻔한 거짓말에 싱글벙글하며 또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기름칠을 하고 닦아냈다.
아침은 김치찌개와 쏘세지 볶음이었는데 은곡 선생이 한 냄비밥이 너무 맛있어서 다들 배가 튿어질 지경으로 먹고 비명을 질렀다.
오전 작업을 마무리하고 바로 옆에 있는 필레온천에 갔다. 규모는 작지만 프랑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발견된 게르마늄 온천이란다. 물의 느낌이 굉장히 좋았고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즐기는 야외 온천탕의 느낌은 정말 좋았다.
온천에서 돌아와 소영 씨 남편 동현 씨가 부쳐주는 부침개에 막걸리를 또 마셨다. 쉬엄쉬엄하라는 소영 씨의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달려가서 남은 도마들에 기름칠을 하고 바닥을 천으로 문질러 닦았다. 이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노예들이 된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교통정보를 검색해 보니 길이 막힌다 하니 저녁을 먹고 천천히 출발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차피 길에서 시간을 버리느니 그렇게 하자고 모두들 찬성했다. 소영 씨는 모든 작업이 끝날 때쯤 한 가구 당 마음에 드는 도마를 한 개씩 주겠다며 고르라고 했다. 신이 난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도마를 하나씩 골라 선물로 받았다.
토요일 새벽 여섯 시에 모여 일요일 저녁까지 꽉찬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또 한 번 놀러오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남편이 의사인 소영 씨는 서울에 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서울로 올라간다. 다 떠나고 나면 이 넓은 하우스엔 은곡 선생 한 사람만 남는 것이다. 그러나 은곡 선생도 딸 내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비는 그치지 않고 끈질기게 내린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서 집에 가서 눕고싶운 생각 뿐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겠지. 뭐, 날이 흐려서 해가 뜰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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