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한 번 읽은 책을 또 읽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은 언제나 다시 읽어도 새롭다. 아니, 책은 다시 읽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프랑소와 트뤼포가 씨네필이 되는 세 단계 중 첫 번째를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이라 했는데 이는 책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세 가지만 들어 보자. 

첫째, 기억력 때문이다. 분명히 한 번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다. 그게 당연한 거다. 혹시라도 읽은 내용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주받은 인생을 사는 거다. 인간은 망각해야 살 수 있는 존재니까. 둘째, 그때 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땐 몰랐는데 다시 읽으니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고 감정이나 취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이런 일은 매번 일어난다. 분명 나하고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누구는 그걸 읽고 작가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책은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그 가치가 달라지는 요술을 부린다. 셋째는 약속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 놓는다는 것은 언젠가 그 부분을 다시 읽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어느날 책꽂이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다시 펼 때 비로소 약속은 지켜지는 것이다. 

어제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무심코 책꽂이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집어들었다. 분명 다 읽은 책이고 우리집 책꽂이에도 있는 책인데 다시 펼치니 새로운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읽어보니 뻔한 내용이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라도 다시 읽으며 마음에 새길 만 한 글이다. 페이지 윗쪽을 접은 흔적이 없고 밑줄 치는 방식이 다른 걸 보니 내 책은 아니다. 이번엔 내 방 책꽂이에 있는 책 중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다시 꺼내 무라카미 하루키와 프란츠 카프카 부분을 읽었다. 전에 내가 쳐놓은 밑줄이 있어서다. 내가 그은 밑줄인데도 다시 읽어보니 ‘아, 이런 얘기가 여기 있었어?’하고 놀라게 된다. 내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어도 좋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결국 퇴근하면서 유시민의 책을 들고 나왔다. 전철에서 한 챕터만 더 읽고싶어서였다. 출판된 지 얼만 안 되는 유시민의 실용서를 읽으며 이런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나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정도는 읽으면서 이런 글을 써야 폼나지 않겠느냐 타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멀리 있는 고전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실용서가 인생에 도움이 될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요즘은 점점 쉽게 쓰인 글에 더 끌린다. 유시민이나 강신주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할 줄 아는 특급 저술가들이다. 그것만큼은 믿어도 좋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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