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시인의 '의자'라는 시가 있다. 몇 년 전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시다.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갑자기 이 시를 떠올린 것은 출근길에 '허먼 밀러'라는 의자 회사가 눈에 들어와서였다. '의자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허먼 밀러는 비싸서 그렇지 정말 앉는 순간 몸에 착 붙는 것이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물건이었다. 포털회사 네이버에서는 수습사원들에게도 이 의자를 내준다고 했던가.
맨 처음 가정집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쓸 때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던 의자들은 품질이 그리 좋지 못했다. 오래 앉아서 일을 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었다. 나는 어느날 회사 대표에게 제안을 했다. 개인용 의자로 허먼 밀러를 하나 마련하고 싶은데 비용이 비싸니 이렇게 딜을 하면 어떠냐. 일단 의자값을 회사와 내가 반반씩 부담하자. 그리고 내가 자진해서 회사를 그만두면 의자를 두고 나가고 내가 쫓겨나는 경우엔 의자를 들고 간다. 어때, 합리적이지 않냐.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대표는 무슨 조건이 그리 복잡하냐고 웃으며 거절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사를 하면서 회사 의자는 '시디즈'로 전면 교체되었다. 허먼 밀러 정도는 아니지만 시디즈도 매우 품질이 좋은 의자였다. 특히 시디즈는 '하루 종일 우리 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의자'라는 컨셉으로 진행된 캠페인이 매우 설득력 있고 잘 만들어진 광고였다. 좋은 의자는 일의 능률도 높이고 허리도 보호해주니 여러 모로 좋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척추전문병원을 지나다가 병원 담벼락에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라는 구절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저 구절은 시인에게 허락을 맡고 가져다 쓴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혹시 좋은 의자들이 우리를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허구헌날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하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역설한 '셀프 착취'가 아닐까.
아내가 이사 오면서 집에 있는 내 책상 앞에 좋은 의자를 하나 사줄까 묻길래 싫다고 했다. 집안에서까지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집에서는 의자보다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마음껏 딩굴거나 TV를 보면서 놀고 싶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어울리는 곳은 의자가 아니라 바닥이었다. '일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일을 할수록 피곤해진다는 게 그 증거다'라는 프랑스 소설가의 농담을 난 진담으로 생각한다. 일은 조금만 효과적으로, 노는 건 오래 많이. 목표는 이건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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