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나주 여행을 갔다가 들른  광주 송정시장 안의 작은 서점에서 새로 나온 헤밍웨이의 단편집 [깨끗하고 밝은 곳]을 샀다. 일단 책이 작고 예뻐서 샀고 헤밍웨이의 작품을 요즘 번역으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좀 있었다. 민음사가 만든 이 작품집엔 표제작과 함께 <살인자들>, <병사의 집>, <킬리만자로의 눈>,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등이 실려 있고 맨 앞엔 '글을 쓴다는 건 언제나 고독한 일'이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 발표했던 수상 연설문이 실려 있다. 

<깨끗하고 밝은 곳>이라는 소설은 8쪽짜리 짧은 단편인데 늦은 밤 카페에서 술을 마시는 귀머거리 노인과 그의 시중을 들던 웨이터 두 명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다. 지난 주에 자살을 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 노인은 오늘도 늦게까지 카페에 남아 브랜디를 마신다. 웨이터들이 주고 받는 대화에 의하면 돈도 많은 노인이 자살하려 한 이유는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이었다나. 늦게까지 버티고 있는 노인 때문에 일찍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젊은 웨이터 는 그에게 다가가 브랜디를 따라주며 "영감님은 지난주에 죽는 게 나을 뻔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듣지 못하는 노인은 그저 브랜디를 마실 뿐이다.

브랜디를 다 마신 노인은 '비틀거렸지만 어딘가 품위가 있어 보이'는 모습으로 돌아갔고 조급한 웨이터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자 나이 많은 웨이터가 혼자 가게 뒷정리를 하겠다고 한다. 그는 가게를 정리하면서 말한다.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아 있고 싶어. 잠들고 싶어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난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던 조급한 웨이터는 퇴근을 하고 나이 많은 웨이터는 문을 닫으며 자신이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약간 망설이는 이유가 뭘까 생각한다. 어쩌면 이 시간에도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그는 아까 그 노인을 생각하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로 시작하는 주기도문에 신이나 아버지 대신 '허무'라는 뜻의 스페인어 '나다'를 넣어 읊조려본다. 그리고 퇴근길에 들른 바에서 뭘 드시겠습니까, 라고 묻는 바텐더에게 "나다를 주게"라고 말함으로써 "여기 또 미친 놈이 또 하나 있군." 이란 농담 섞인 핀잔을 듣는다. 마지막으로 들른 바도 깨끗하고 불빛이 밝은 카페였다면 더 좋았을 것을, 이라 생각하는 웨이터. 어쩌면 그는 헤밍웨이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깊은 밤에도 자신이 허무에 젖지 않도록 옆에서 환하게 불을 밝혀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웨이터의 마음에서 소설가의 모습이 언뜻 비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도 깨끗하고 밝은 곳(A Clean, Well-Lighted Place)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자들>이라는 단편은 암살자들이 찾아왔는데도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 그대로 집에 머물고 있는 전 헤비급 챔피언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고 <킬리만자로의 눈>은 어렸을 때 고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로 봤던 작품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으로 찬찬히 읽으니 마지막 주인공이 죽는 장면만 빼놓고 완전히 헤밍웨이 자신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도 비슷하다. 이건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라는 장편이 생각나는 제목이다. 하루키도 헤밍웨이의 작품을 따서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책을 냈었다. 아마도 존경하는 선배 소설가에 대한 오마주로 이런 제목들을 지었을 것이다. 소설가, 저널리스트, 모험가로 멋진 삶을 누리다 간 헤밍웨이가 부러워진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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