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출퇴근길에 조금씩 읽었던 이상한 제목의 단편집 [관내분실]은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마침 회사 카피라이터 박수가 광고회사 사람들이 쓴 초단편집 같은 걸 빌려주며 재밌다고 하길래 뒤적여보고 나서 느낀 결론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김동식의 소설집들처럼 기발한 발상과 시퀀스로만 이루어진 소설은 내가 매우 재미없어 한다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좋은 이야기 속엔 '인간' 또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받은 게 있으면 줘야 한다는  '기브 앤 테이크 정신'으로 나도 그 후배에게 이 책을 권해줬는데 표제작을 읽고 나더니 "짱 재밌어요, 실장님!"이라고 마음껏 감탄해서 나를 기쁘게 했다. 
 
대상 작품이 표제작인 <관내분실>인데 얼마 전 첫 아이를 임신한 주인공 지민이 '마인드 도서관'에서 분실된 죽은 엄마의 자료를 찾아 헤매는 게 중심 스토리다. 어이 없게도 죽은 뒤에야 '실종' 처리가 된 엄마의 이야기로, 거기엔 도저히 화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식구들 모두에게 냉담한 남동생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지민은 마인드 검색에 필요한 자료들을 찾다가 '김은하'라는 이름을 가졌던 엄마가 결혼 전 출판사에 다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고 그걸 토대로 '관내 분실'되었던 그녀의 자료를 찾아낸다. 이 과정 중 지민이 TV를 통해 보게 된 '인간의 영혼과 마인드는 같은 것인가?'에 대한 토론 프로그램은 작가의 과학적 지식과 존재론적 고민을 함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들은 부정적입니다. 마인드가 영혼이 아니라는 가장 결정적인 반박은, 그렇게 스캐닝된 시냅스 패턴이 더 이상 가소적으로 변형되지 않는다는 관찰로부터 나왔죠. 한 사람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성장하고, 배우고 반응하고, 노화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변형되지 않는 마인드는 영혼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시점에서 고정되어버린, 일종의 박제된 정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자책과 데이터로 구성된 마인드가 과연 인간의 온기까지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엇갈리던 소설은 마지막에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엄마와 딸의 재회 장면을 짜릿하고 짧게 포착한다. 아마도 심사 위원 중 한 사람인 배명훈이 쓴 '쨍하게 아름다운 순간'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다. 나도 읽으면서 반가웠다. 이 작품은 분명 SF소설이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뇌과학은 잘난 체하는 첨단 지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와 갈등,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책 말미에 붙은 심사평들을 읽어보면 김초엽이라는 작가가 낸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유력한 대상 후보였는데 자신이 쓴 <관내분실> 때문에 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뛰어난 SF작가의 탄생을 예고하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김초엽의 작품 말고도 김혜진의 <TS가 돌보고 있습니다>와 오정연의 <마지막 로그>도 흥미롭게 읽었다. 심사평 중에서도 재미 있는 글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울시립과학관의 관장 이정모 편이었다. 이정모 관장은 아무리 작품이 뜻하는 바가 좋고 잘 쓰여졌다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유미주의'를 내세웠는데 내게는 매우 설득력 있는 글이었다. 그리고 다른 심사위원들이 대상과 가작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에 비해 이 관장은 자기가 예심에서 골랐다 떨어진 작품들만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특이했다. 본선에 올라야만 심사평을 받는다는 상식을 뒤엎고 낙선작들을 거론한 것이다.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의기소침해 있었을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위안과 격려는 없을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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