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기쁨 -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요즘 출퇴근길에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라는 반어법적인 제목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2부 첫머리에 말썽쟁이 딸 메리 때문에 장갑 공장을 찾아온 비키라는 여자에게 스위드가 장갑 생산 공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무두질 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가죽 무역 이야기, 그리고 장갑 사업의 역사를 거쳐 재단 재봉작업에 대한 아주 세세한 공정과 일화까지 장장 18페이지에 걸쳐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 스펙터클한 묘사는소설가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하나의 교본이나 다름없다.
필립 로스는 이 한 장면을 쓰기 위해 가죽과 장갑 생산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섭렵했을까. 책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전철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무릇 소설을 읽는 쾌감은 이런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카메라로 보여주고 스토리라인으로 알려주는 것만으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서술의 세계. 필립 로스의 전작을 다 구해서 읽고싶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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