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 가는 아침 수영 클래스를 마치고 나와 간단하게 요기를 하려고 늘 가던 김밥천국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고 길은 황량했다. 광림교회 앞쯤에서 어떤 오십 대 아주머니가 지나가던 여자에게 뭔가를 묻다가 거절을 당한 뒤 웃으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주머니는 곧장 내게로 다가와서 간절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혹시 특뿔식당이라고 아시나요? 휴대폰을 내려다 보니 문자메시지를 찍은 사진이 보였고 그 안엔 '압구정역5번출구 나와 직진 우리은행 끼고 돌아 계속 직진 투뿔등심'이라는 내용이 잔뜩 틀린 맞춤법으로 적혀 있었다. 특뿔식당이 아니라 투뿔등심이네요, 아주머니. 내가 그렇게 정정하자 "맞아요. 투뿔등심!"이라고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초초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던 재중동포인 것 같았다. 

"오늘 처음 일하러 가시는 거예요?" 
"네." 
"근데 우리은행 끼고 직진하면 여긴데, 투뿔등심이 안 보이네요." 
"아이고, 어떡하나. 열 시까지 가기로 했는데... 죄송해요, 바쁘신데. " 
"아니에요. 벌써 열 시 오 분이네요. 빨리 식당을 찾아야죠." 

내 휴대폰 지도서비스로 투뿔등심을 검색해 보니 제일 가까운 게 가로수길점이고 그 다음이 논현2호점이다. 둘 다 이 근처는 아니다. 아주머니 휴대폰을 다시 보여달라고 했더니 설상가상 배터리가 다 돼서 꺼졌단다. 보조배터리를 연결했는데 전원이 들어오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추우면 더 잘 안 들어와요." 

아주머니는 애꿎은 휴대폰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면서 말했다. 검은색 휴대폰엔 애플 마크가 붙어 있었지만 왠지 가짜처럼 보였다. 나는 아주머니와 함께 근처 부동산으로 향했다. 마침 부동산 아저씨는 창에 달린 블라인드를 떼어 재설치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는 바쁘신데 미안하다고 사정 얘기를 하고 근처에 투뿔등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옆에서 아저씨를 돕던 아주머니가 이 근처에는 투뿔등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재중동포 아주머니의 휴대폰 전원이 다시 들어왔다. 문자메시지 안에 있는 01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보였다. 내가 이 번호로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고 했더니 자기 전화로는 통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까 본 휴대폰 메시지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걸 보면 이건 뭔가 아주머니 소유가 아닌 일종의 대포폰인 것 같은데, 아무튼 안쓰럽고 답답한 상황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사진을 다시 켜서 그 번호를 찍은 뒤 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거기가 투뿔등심인가요?" 
"네." 
"제가 지금 거기 찾아가시는 어떤 아주머니를 길에서 만났는데요." 
"그러세요?" 
"문자메시지엔 압구정역5번출구로 나와서 우리은행 돌아 직진하면 투뿔등심이 나온다고 돼 있는데..."
"거기 아닌데." 
"네.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해요." 

그때 복덕방 아주머니가 뛰어나오셨다. 자기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투뿔등심은 가로수길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알아서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다시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가 덮인 테이블 위엔 설치하려다가 만 블라인드가 심란하게 놓여 있었다. 얼른 재중동포 아주머니에게 약도를 그려주자며 내가 종이를 찾았더니 아주머니가 빈 로또복권 용지를 들고 왔다. 거기에 그리긴 힘들 것 같아서 내 가방 안에 있는 다이어리를 꺼내 속지 한 장을 북 찢어냈다. 아주머니가 가로수길로 가는 길을 설명하며 종이 위에 도형을 그리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아저씨가 언제 한가하게 그걸 그리고 앉아있느냐면서 테이블 위의 블라인드를 한켠으로 치우더니 유리 밑에 깔린 커다란 지역지도를 가리켰다. 그걸 카메라로 찍어서 찾아가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맞아요, 맞아. 다들 박수를 치며 그게 좋겠다고 말했다. 

재중동포 아주머니의 휴대폰 중 유일하게(?) 사용 가능한 카메라로 투뿔등심 가로수길점까지 가는 약도를 촬영했다. 그리고 복덕방 아주머니가 밖으로 따라나와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쭉 가서 두 블럭 지나 가로수길을 건너서...하며 목이 터져라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재중동포 아주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재중동포 아주머니는 가로수길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겼고 복덕방 아저씨 아주머니 커플은 다시 들어가 블라인드를 마저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나는 김밥천국으로 달려가 이천 원짜리 원조김밥을 한 줄 사서 사무실로 왔다. 2019년 1월 두 번째 화요일 아침에 벌어졌던 '압구정동 오지라퍼 커넥션'의 결말은 이렇게 싱거웠다.  그나저나 아주머니는 그 식당 잘 찾아 가셨을까. 오늘이 첫 날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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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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