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아내가 길을 걷다가 모텔 간판만 나타나면 내게 던지는 농담이다. 우리는 둘 다 혼자 살던 시절에 만났으므로 처음부터 다른 연인들처럼 모텔이나 호텔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결혼 전에도 항상 서로의 집으로 가서 자면 되었고 나중엔 아예 살림을 합쳐 살다가 결혼식을 올렸으니까. 아내는 그게 좀 아쉽다면서 툭하면 모텔에 가자는 농담을 한다. 그런 우리에게도 모텔의 추억이 꼭 세 번 있다.
첫 번째는 결혼한 다음 해 내 생일 때였다. 그땐 어떤 마음에서였는지 이번 생일엔 친구들을 죄다 불러 모아 밤새 술을 마셔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사동의 한 술집을 예약했고 저녁 7시부터 술자리가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모이게 된 것이었다. 수십 명이 목소리를 모아 한꺼번에 건배를 외쳤고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고루 사랑받는 호스트로서의 뿌듯함을 감추지 않으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친구들도 다음날이 휴일이라서 그런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마음껏 술을 마시고 취했다. 술값이 좀 많이 나오겠지만 이미 취한 상태라 '뭐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는 대범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친 듯이 술을 마시다 문득 눈을 떠보니 모텔 안이었다. 친구 영학이가 너무 취한 나를 보고 신사동의 모텔 하나를 예약한 뒤 키를 선물이라며 주고 간 것이었다. 생일선물로 모텔 키를 받아본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아내는 내 옆에 누워 간밤에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었다. 내 친구 중 어떤 여자분들은 술을 마시다 취해서 테이블 앞에서 울고불고했고 어떤 남자분들은 서로 이유도 없이 주차장에 나가 싸우더니 또 곧 화해를 하고... 나는 모텔에 누워 하하하 웃었다. 술이 안 깨서 둘 다 너무 힘이 들었다. 우리는 모텔에서 나와 기념으로 모텔 간판 사진을 찍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는 옥천에 사는 아내의 고등학교 때 친구 정미 씨에게 놀러 갔을 때였다. 정미 씨는 우리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 준 네 명 중 유일한 아내의 친구였는데 옥천에서 남편, 두 아들 들과 섬유미술 작업을 하며 살고 있었다. 정미 씨와 희관 씨, 그리고 우리 부부까지 네 명은 폐교를 개조한 정미 씨의 작업실에서 밤늦게까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미 씨 부부는 피아노 앞의 의자에 무릎을 베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내는 이불속에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테이블 위엔 소주는 물론 새로 딴 양주 한 병까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공기가 좋아서 여기 오면 누구나 술을 많이 마시게 돼요,라고 희관 씨가 말했다. 나도 한참을 누워있다가 나와 어찌어찌 밥을 먹고 태관 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옥천역까지 갔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역으로 들어가려는데 둘 다 너무 힘이 들고 멀미까지 나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우리 그러지 말고 모텔에 들어가서 두 시간만 자고 나오자고 했다. 역 앞에는 모텔들이 많았다. 그중 좀 깨끗해 보이는 모텔을 골라 들어가 '숏타임'을 끊었다. 방에 들어간 우리들은 샤워도 하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두 시간을 달게 잤다. 겨우 기운을 차린 우리들은 "모텔에 와서 또 잠만 자다 가네..."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옥천역으로 들어가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는 지난 1월 24일 성대 앞 도어스에서 술을 마시던 날이었다. 그날은 친구 문송과 술 약속이 되어 있어서 논현동에서 둘이 막 술자리를 시작하는 참이었는데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에게서 호출이 온 것이었다. 김영일 선생이 부르면 무조건 가야 한다. 우리는 당장 술자리를 걷고 광화문에 있는 전집으로 달려갔다. 김영일 선생 말고도 또 한 분의 일행이 있었다. 우리는 맛있는 생선전에 막걸리를 마시다 성대 앞 도어스로 갔다. 여기는 김영일 선생의 단골이기도 하다. 아내도 뉘 늦게 술자리에 합류해서 맥주와 양주를 마셨다. 아내 빼고는 다들 전작도 있고 해서 빠른 속도로 취해갔다.
눈을 떠보니 또 허름한 모텔방 안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내가 어느 순간 맛이 가더니 잘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술집을 나올 때 다들 취해 있었는데 나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해서 무릎이 계속 꺾인 모양이었다. 아내는 도저히 나를 데리고 집까지 갈 자신이 없어서 눈에 띄는 3만 원짜리 모텔로 들어왔다고 한다. 방은 몹시 좁았고 새하얀 침대와 베개는 지나치게 푹신해서 몸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안 좋은 자세로 잤더니 여기저기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아팠다. 아내가 "여보, 우리 신발은 어딨지?"라고 묻길래 방문을 열어보니 옹색한 현관에 아내와 내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욕실을 열어보았으나 타일이나 욕조의 상태가 너무 정 떨어져서 도저히 샤워를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일회용 칫솔로 양지만 하고 서둘러 모텔을 나왔다. 1층에 있는 객실에서 나와 현관 옆에 있는 카운터에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길래 그냥 나왔다. 우리가 성대 앞 싸구려 모텔에서 자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며 헤어졌다. 나는 곧장 회사로 가고 아내는 필라테스 선생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예전에도 물론 이성과 함께 모텔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건 아내와 만나기 전의 일이니까 숨기거나 비난을 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내와 모텔에 갈 때마다 번번이 건전하게 잠만 자고 나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음엔 멀쩡한 정신에 모텔에 가서 반드시 아내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야 말겠다고 불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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