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엔 연극을 한 편 보자고 전부터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올 크리스마스에 선택한 작품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걸이가 언제나 옳아요]라는 창작극입니다.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연극을 보면서 의문이 풀렸습니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기드 모파상의 [목걸이], 그리고 안데르센의 [영감이 하는 일은 언제나 옳아요] 세 편을 묶어 한편의 뮤지컬로 만들었으니까요.  이 연극은 100% 노래만 하는 뮤지컬이 아니고 등장인물들이 라디오 공개방송을 진행하면서 잘 알려진 단편소설들을 극으로 재연해 보여주는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왜 이런 노래를 부르는지, 또 기왕의 단편소설이나 동화들이 현대에 와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고 작가나 연출자의 기획 의도도 명확히 알 수 있죠. 진행자와 초대손님들, 그리고 밴드가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따뜻하고 편안하게 진행되는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두 훌륭합니다. 소극장이라 배우들의 목소리나 동작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는 장점도 있구요. 뮤지컬 장면들의 화음도 뛰어납니다. 


무대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는 배우들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별로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닐 텐데 언제나 어딘가에선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한 것이죠. 이런 일은 취미삼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작년에 봤던 연극 [식구를 찾아서]의 배우와 스탶들이 다시 뭉친 연극이라 들었습니다. 그때도 참 재밌게 봤는데. 각본을 쓴 오미영 작가의 작품은 다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에 들어있는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이 연극은 12월 28일까지 대학로 아리랑소극장에서 계속 상연됩니다.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 사랑하는 사람과 연극을 한 편 보는 건 참으로 옳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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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희연 2014.12.26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리스마스날 보았는데 가슴따듯해지는 공연이였습니다. 돈으로 이벤트로 상술로 변해버린 크리스마스!! 배려 와 믿음 가짐없는큰자유 를 일깨워주며 본질을 찾게하는 재미있고 따듯한공연입니다.






“오늘 볼 연극 제목이 뭐랬지?” 

“반도체소녀!”


그럼 좀 심각한 내용이겠네. 저는 반도체소녀라는 말을 듣고 김옥빈이 나오는 이재용 감독의 옛날 영화 ‘다세포소녀’를 떠올렸다가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 가끔은 심각하고 진지한 연극도 한 편 봐줘야지. 게다가 이 연극은 아내와 같이 ‘여자연구소’ 라는 모임의 멤버로 활동 중인 연극배우 이승연 씨가 출연하는 덕분에 가게 된 거니까.



지금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문화창작집단 날이 상연하고 있는 연극 [반도체소녀]는 짐작대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처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 이야기입니다. 소재 자체가

슬프고 심각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한 시간 반 가량 되는 상연시간 내내 심각하기만 하면 관객들 몸이 뒤틀려서 끝까지 보기 힘들겠지요. 그래서 여기에도 재미있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일인다역’ 역을 맡은 배우 오주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연극 도중 부당해고 된 재능교육 선생님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인물 혜영 옆에 가 느닷없이 작업을 거는 연극배우 오주환은 자기가 가난한 연극배우임을 밝히며 이번에 들어간 연극 [반도체소녀]에서는 자그마치 ‘1인 14역’을 맡았다며 한탄을 하기도 합니다. 그 후에 그는 정말 신문기자, 인사담당자, 취객, 경찰, 퀵서비스 직원 등등 벼라별 변신을 거듭하며 관객들에게 깨알 웃음을 선사합니다. 어제는 판사로 분한 장면에서 맨 앞줄에 앉아 보던 저에게 와 망치를 선물하고 갔습니다 



연극은 호스피스로 일하며 ‘반도체소녀’와 인연을 맺은 간호사 정민과 그녀의 남동생 세운, 정민의 남자친구 동용, 그리고 세운의 여자친구 혜영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호스피스인 정민은 임신 3개월 상태인데 얼마 전에 정을 붙였다가 죽어버린 환자 ‘반도체소녀’가 늘 눈에 밟히고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친구 동용의 건강도 늘 걱정입니다. 삼성에 입사하는 꿈을 꾸며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 세운은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언급하며 자신의 ‘스펙쌓기’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상주의자 노교수가 못마땅하고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독려하기는커녕 사사건건 비난하며 ‘쓸데 없이’ 재능교육 1인시위나 하고 있는 여자친구 혜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래저래 모두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든 피곤한 인생들이죠. 


연극은 그러나 섣불리 그들의 처지를 도약시켜 해피엔딩으로 이끌거나 하지 않습니다. 반도체소녀는 죽은 뒤에도 이승을 뜨지 못해 정민 곁을 맴돌고 세운은 입사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맙니다. 설상가상 몇 개월 뒤 정민과 결혼식을 올리려던 동용은 갑자기 심장이 멈춰 죽어버리구요. 교수님이나 혜영에게도 뭐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없습니다. 아마 이 연극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지금 2014년의 현실을, 그리고 우리 같은 사회 구성원들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게 없는 2015년, 2016년의 대한민국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라고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이 연극에서 교수 역을 맡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실제로 ‘우리나라 강단의 마지막 맑시스트’로 유명한 분이더군요. 아무래도 현직 연기자가 아니라 연기는 좀 부자연스러웠지만 그 진정성을 생각하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분이었습니다. 일부 수구언론에서 이 작품에 ‘빨갱이 연극’이라는 낙인을 찍었다고 하던데, 아마 이 분의 출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이 연극이 빨갱이 연극은 아닙니다.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얘기하면 무조건 다 빨갱이 콘텐츠입니까. 그리고 요즘 세상에 빨갱이 연극이면 또 어떻습니까. 하긴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백]도 ‘빨치산 소설’이라고 쓰는 기레기들한테는 뭐든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연극을 볼 때면 늘 신기합니다. 특히 어제처럼 소극장 연극인 경우 바로 눈 앞에서 자잘한 소도구들만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그렇습니다. 바로 제 발 앞에 놓인 기다란 직사각형의 아크릴 박스와 약간의 물, 그리고 모래만 가지고도 금방 바닷가가 되는 마술이 벌어지니까요. 불이 꺼지고 깜깜했다가 다시 들어오면 어둠 속에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배우들도 신기하구요. 배우들과 관객이 서로 짜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공법의식이 생겨 늘 즐겁습니다. 그리고 이런 ‘쓸데 없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착하게 느껴져 고마운 생각도 들고요. 


대학로 좋은 배우들의 고른 열연이 빛나는 연극이었습니다. 일단 11월 30일까지 상연한답니다. 시간 내셔서 한 번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제 아내는 이 연극을 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함께 연극을 보고 저희에게 맛있는 청국장 등을 선물해 주신 전미옥 대표님도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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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먼저 본 이야기를 연극으로 다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연극 [클로저]를 보러 가면서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난 영화를 두 번이나 봐서 줄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캐릭터도 어느 정도는 파악을 하고 있다. 그러니 전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입장료는 영화를 볼 때보다 훨씬 비싸다. 단지 연극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텍스트를 관객들이 대학로까지 가서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클로저]는 1997년 5월 런던에서 초연된 후 유럽, 일본, 호주 등 전 세계 50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지금도 공연되고 있는 인기 작품이다. 영화 또한 백전노장인 마이크 니콜스 감독에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 나탈리 포트만 등 대 배우들이 출연했던 화제작이다. 



“Hello, Stranger”라는 유명한 대사로 시작하는 이 연극(영화)는 신문사에서 부고 기사를 쓰는 소설가 지망생 댄과 스트립 댄서 앨리스가 우연히 교통사고로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차에 치어 쓰러졌다가 일어나면서 “안녕, 낯선 사람”이라 인사를 건넸던 앨리스는 젊고 매력적인 댄과 금방 함께 사는 사이가 되고 댄은 그런 그녀와의 동거생활을 소재로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런데 댄은 소설의 표지사진을 찍으러 가서 만난 사진작가 안나에게 대뜸 키스를 하며 사귀자고 유혹한다. 이건 뭐 아주 개새끼가 아닌가. 


그런데 영화에서 하필 댄 역을 맡은 배우가 주드 로였다. 원래도 잘 생겼지만 그때 당시엔 정말 ‘전세계 남녀 배우를 통틀어 최고의 미모’라는 소리까지 듣던 막강 포스였다. 그러니 ‘개새끼를 개새끼라고 부를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더구나 주드 로와 입술을 맞대던 세련된 사진작가 안나는 바로 줄리아 로버츠였다. 그들의 지적인 매력에 격조 높은 연출력, 게다가 하필 데미안 라이스의 마약성 농후한 불멸의 미친 곡 ‘Blower’s Daughter’까지 배경음악으로 겹쳐져 우리는 이 막장 드라마를 마치 꽤 세련된 영화라고 착각하기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연극은 좀 달랐다. “안녕, 낯선 사람”이라 인사를 건네며 시작하는 것은 같지만 분위기도 달랐고 대사도 달랐다. 앨리스 역을 맡은 이윤지는 새처럼 자그만 몸집에 아이 같은 도발성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돋구었고 명민한 배우 김혜나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기 두려워하는 안나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잘 표현해 주었다. 댄 역을 맡은 이동하도 물론 좋았지만 최고의 캐릭터는 피부과 의사 래리 역을 맡은 배성우였다. 능수능란한 대사 구사력과 타이밍, 찰진 욕설 구사력까지, 이 연극을 이만큼 살아 숨쉬게 하는 데 이만한 일등 공신이 없었다. 


만났다가 헤어지고 용서를 구하다가도 또 배신하고,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근데 걔랑 잤어 안 잤어?”하고 묻는, 홍상수 영화의 등장인물들보다 더 찌질하고 끈적한 네 사람은 간결한 세트와 자막, 오밀조밀한 구성 등을 선보인 연출자 추민주의 능력에 의해 연극에서 확실한 생명력을 얻었다. 우리와 같이 연극을 보았던 페친 안재만 대표도 “영화에서는 미처 다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들의 행동을 이제야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자잘한 유머들(채팅창에 성기 사이즈 18cm를 18m라고 잘못 쓰고 욕을 내뱉는다든지 하는)이 그 우아했던 드라마에 막장의 개연성과 더불어 페이소스까지 더해 주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시 완벽한 반복과 변주의 차이는 아닐까? 예전에 슬픈 결말이 너무 안타까워서 한 번쯤은 해피엔딩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고 매일 똑 같은 영화를 보던 소녀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노래 가사였던가?). 


영화는 늘 똑같지만 연극은 그날그날의 캐스팅과 컨디션에 따라서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그러니까 영화는 매번 똑같은 맛에 보고 연극은 매번 다른 맛에 본다는 얘기가 된다. 선택은 자유다. 만약에 영화 속 배우가 하던 연기를 집어치우고 스크린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오면 어떻게 될까, 라는 기발한 상상을 실천에 옮긴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도 있지 않았던가. (아, 그러고 보니 그 영화에 나왔던 멋진 남자 주인공이 지금 [뉴스 룸]에서 앵커로 나오는 그 제프 대니얼스로구나) 



연극 [클로저]에는 영화와는 또다른 찰진 이야기들과 에피소드가 드글드글 하다. 그러니 이 가을에 기필코 연극을 한 편 봐야겠다고 결심한 분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클로저]를 선택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연기도 연출도 고루 좋다. 12월 1일까지 대학로에서 계속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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