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없습니다)

영화제 특수'라는 말이 있다. 깐느나 베니스영화제 등지에서 큰 상을 타고나면 국내에서 반짝, 하고 흥행이 되었다가 바로 꺼지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상을 탄 영화들은 대부분 심각한 주제의식이나 난해한 미장센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 관객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제 개봉한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의 [기생충]도 그런 영화일까? 결론적으로,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가족 구성원 전원이 백수인 집이 있다. 반지하에 살면서 휴대폰 와이파이마저도 윗집 것을 몰래 따서 쓰는 기택과 기우, 기정(이 집은 이상하게도 아버지와 아들 딸이 다 기 자 돌림이다) 가족은 어떻게 남을 속여서라도 돈을 좀 벌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생각에 온 가족이 똘똘 뭉쳐 모종의 사기극을 꾸민다. 이 과정에서 아들 딸들은 말끝마다 육두문자를 남발하지만 그걸 듣는 부모들은 태연하다. 자기들도 똑같이 숨쉬듯 쌍욕을 입에 달고 사니까. 그러나 박 사장이 사는 집을 공략하기 위해 캐릭터들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연극 대사 연습을 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다가 결국은 이 사람들이 거사에 성공했으면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관객이 주인공들에게 자연스럽게 동화가 되는 것이다.

스토리 누설은 여기까지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전반부를 제외하면 가는 곳마다 스포일러가 터지는 부비트랩 같은 영화니까. 대신 배우들 얘기를 해보자. 송강호야 새삼 말하면 입만 아픈 '연기의 신'이지만 조여정이 이렇게 연기를 잘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감독의 조련에 의해 연기력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나 하는 건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 이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그리고 젊은 박소담이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는지 누가 알았단 말인가. 대사를 구사하는 호흡이나 목소리는 물론 순간을 제압하는 카리스마도 장난이 아니다. 최우식, 이정은의 연기도 시종일관 너무나 뛰어나다. 결국 어느 정도 선의 연기를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박 사장 역의 이선균이 가장 처진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반지하 창에서 바라 본 1층 거리 풍경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다. '기생충'이라는 제목이나 해외에서의 반응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계급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은 켄 로치가 아니고 봉준호다. 어떤 심각한 얘기를 하더라도 유머와 재미를 놓치지 않는 그가 이번이라고 그 미덕을 포기할 리가 없다. 박 사장과 그의 부인 연교에게 접근하는 기태 가족의 속임수들은 아이디어와 능청이 넘치고 계급 간의 경멸을 표현하는 데는 '반지하'보다도 '냄새'가 가장 치욕적이라는 통찰도 놓치지 않는다. 박 사장의 집으로 들어간 후에도 봉준호는 놀라운 구성과 연출로 관객이 딴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디테일에서도 감탄을 금할 수 없다(단 몇 장면밖에 나오지 않는 체육관 씬의 정교함을 보라!). 카메라, 음악 등등 모두 베테랑의 숨결이 느껴지는데 특히 정재일의 클래식 음악은 영화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와 함께 옆자리에서 영화를 본 아내는 영화가 너무 슬프다고 하며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는 박사장 가족과 그의 집에 들러붙어 생활을 영위하려는 기택의 가족 중 진짜 기생충은 누구일까, 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한 번 더 봐야겠다고 했다. 물론 나도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도 유머와 공포와 비극미를 고르게 가지고 있는 영화는 전체 내용을 다 파악하고 보는 재미 또한 각별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자는 [기생충]의 황금종려사 수상은 한국 영화 백년의 쾌거라고도 하지만 내 생각에 이건 한국 영화 뿐 아니라 세계 영화의 쾌거다. 이런 걸작은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어디에서도 쉽게 나온지 못할 테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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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는 악당들의 인질극 덕분에 주인공 이소룡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에 있는(!) 파고다탑에 가서 보물을 탈취해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탑엔 각 층마다 세계의 무술 고수들이 지키고 있는 거죠. 이소룡은 첫 칸부터 압둘 자바가 기다리고 있는 맨 윗층까지 올라가 차례차례 고수들을 제압해 나갑니다. 전 그 영화를 볼 때 어린 마음에도 “쟤네들은 도대체 이소룡이 오기 전까지는 저기서 뭘 하고 기다릴까? 먹을 것도 놀 것도 없는 텅 빈 방에서…그리고 왜 이소룡이 괴조음을 내지르고 싸울 때 밑으로 내려와 동료 고수들과 같이 싸우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등장인물들에 대한 ‘개연성’에 대한 목마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보면서도 비슷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설국열차라는 설정 자체가 ‘노아의 방주’ 같은 세기말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짐작 못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꼬릿칸의 사람들은 저토록 현실적이고 삶에 대해 확고한 신념과 욕구, 기대치가 있는데 반해 다른 칸 사람들은 왜 저렇게 비현실적이며 도대체 ‘인격체’처럼 느껴지지 않는 걸까 하고 의아했습니다. 물론 꼬릿칸 사람들이 최하층민 계층이니까 반란의 욕구가 매우 강하고 다른 사람들은 지배층에 속하거나 그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계층이라서 그렇다고 할 순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란군들이 달려오는데도 자신의 열차칸을 벗어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비로소 총을 쏘거나 도끼질을 한다는 게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가하게 앉아 초밥을 만들어 먹거나 어린이들과 수업을 하거나 계속 마약을 하고 춤을 추고 사우나를 한다는 건 지나치게 관념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한마디로 불편한 거죠. 그런데 제 아내는 이 장면이 너무도 당연하고 잘 된 설정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저와 삐딱선을 탄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여기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봉준호의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박찬욱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것도 관람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었습니다. 열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서로 망치 살육전을 벌이던 적들끼리 “해피 뉴 이어!”를 외치며 잠깐 멈추는 유머코드는 [올드보이]에서 자기 생니를 뽑으며 고문하던 악당에게 “우린 친구잖아”라고 말하는 오달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박찬욱은 이런 잰체하는 유머코드를 좋아합니다.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틸다 스윈튼의 연기도 거북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결정적으로 삶은 계란을 나눠주다가 그 트레이 속에서 기관총을 꺼내 쏘는 장면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명백한 오마주라고 해야겠죠.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시퀸스에 이르기까지 ‘팔’에 대한 고찰이 많이 나옵니다. 앤드류의팔은 열차 밖으로 내밀어졌다가 박살이 나고 꼬리칸의 선지자 길리엄은 팔이 없는 반면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커티스는 아직도 자기가 팔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죠. 그런데 이 모든 게 나중에 ‘달마대사’의 메타포임이 밝혀집니다. 전 이게 좀 싱겁습니다. 


그리고 열차의 엔진을 소유하고 있는 맨 앞칸의 윌포드가 작은 아이를 납치해 가는 이유도 “이 작은 곡사포 안을 어린아이 손 아니면 어떻게 닦아낸다 말입니까?”라는 거짓말로 나치들로부터 어린 생명을 구했던 쉰들러의 대사를 거꾸로 변용한 것 같아서 좀 낯간지러웠습니다. 



얘길 하다 보니 온갖 불만을 늘어놓으며 남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영화를 일방적으로 폄훼하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군요. 그런데 평소에 안 그러던 정말 제가 정말 왜 이럴까 생각해 봤더니 가장 결정적인 건 ‘감동’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짜릿함이나 감동 부분의 트리거 역할을 해야 할 요나와 남궁민수의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 연기 잘 하는 송강호와 동서양 어디서도 통할 거 같은 매력적인 포스를 뿜어내는 고아성은 영화 내내 심드렁하게 겉돕니다. 캐릭터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죠. 이 열차의 보안 책임자였던 남궁민수와 다음 칸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있는 요나는 원할 때마다 열차칸의 문을 척척 열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지만 정작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성취동기’가 부족합니다. 하다 못해 윌포드에게 철천지 원수 진 일이 있어 그걸 꼭 갚아야 한다든지, 아니면 그게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진실과 통한다든지 하는 확실한 동기가 그들에게 주어졌으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건 고작 1년에 한 번씩 세계를 뱅뱅 도는 ‘윤회’ 같은 이 지겨운 열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에서 생존 가능성을 찾는 것뿐입니다. 이건 좀 맥이 빠지는 결론이며 안일한 통찰이죠. 



이상이, 엄청난 스케일과 비주얼, 쟁쟁한 스타들의 뛰어난 연기가 등장하는 만듦새 훌륭한 일급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설국열차]를 재미 없게 본 이유입니다. 물론 이 메모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혀야 뒷탈이 없겠으나… 따지고 보면 개인적이지 않은 의견이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저는 유명한 평론가나 기자도 아닌 일반 관객인데요 뭐. 그런 의미에서 매우 성급하고 편협한 영화 일기인지 알면서도 그냥 올립니다. 이건 그저 제 개인적인 블로그이고, 개인적인 페이스북 담벼락일 뿐이니까. ^^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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