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빼어난 산문집 [자전거 여행]이 100쇄를 넘긴 것은 작가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마추쳤던 만경평야나 문경새재 등 한반도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거기에 스민 깊은 사유 뿐만이 아니라 언덕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듯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단호하고도 치밀한 문장들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는 아직도 컴퓨터 대신 종이 위에 연필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아닐로그형 작가'인데 이는 우연히도 이반 일리치가 설파하는 자전거의 효용과 꼭 닮았다. 

(작가의 이름을 대하면 왠지 솔제니친이 쓴 소설의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가 생각나지만 전혀 상관 없고)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신학과 철학, 역사학 등을 공부하고 한때 사제이기도 했었던 이반 일리치는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이 발명한 교통수단들의 속도를 통해 우리 삶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지를 통찰한다. 

인간의 자아성은 생활공간 및 생활시간을 덧붙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간이 이동하는 보폭에 의해 통합된다. 만일 이 관계가 인간 자신의 이동능력이 아니라 수송수단의 속도에 의해 결정되면, 인간은 공간의 설계자로서의 지위를 잃고 단순한 통근자의 위치로 전락하고 만다.

근대 이후 도시인들은 늘 시간이 없고 바쁘다고 아우성을 치며 살고 있다. 문명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생활은 편리해지는데도 삶의 여유는 더 없어지는 아이러니는 왜 일어나는걸까. 그는 교통수단의 속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 절약된 시간을 누군가 독차지하게 되는 '시간 횡령'이 일어난다고 간파한다. 즉, 인간의 이동 속도가 자전거를 넘어서면서부터 불공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도 'Energy and equity(시간과 공정성)'이다. 우리가 매일 타는 승용차, 지하철, 버스 등은 우리를 멀리 있는 회사나 일터로 실어나른다.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멀리 간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기차나 버스를 타는 사람보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겨난다. 속도의 차이가 결국 시간의 가치에서도 차별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당신이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가르쳐주겠다."

우리는 지금 만 원 정도면 점심 한끼를 가쁜히 해결할 수 있지만 조지 소로스와 점심을 먹으려면 백만 달러를 내야 한다. 물론 이건 호사가들의 '돈지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시간보다 그의 시간이 훨씬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뜻이 되겠다. 이반 일리치는 자전거를 탄 사람은 보행자보다 3~4배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5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왜 이렇게 자꾸 자전거 얘기를 꺼내는 걸까. 설마 그가 우리에게 자전거를 팔아먹으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닐 텐데. 

자전거는 인간을 더 빠른 속도로 이동시키면서도 공간이나 에너지나 시간을 특별히 더 많이 빼앗지도 않는다. 자전거 이용자는 거리 당 이동시간을 적게 쓰면서도 연간 이동거리를 늘릴 수 있다. 타인의 일정이나 에너지 또는 공간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기술 도약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동료들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대로 자기 이동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스티브 잡스 이후 인문학 바람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우리가 뒤늦게라도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는 것은 인문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이반 일리치가 자전거를 예찬하는 것도 전 세계인이 다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에 올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는 책 제목은 칠레 아옌데 정부 법무부차관보의 말 '사회주의는 자전거를 타고서만 올 수 있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에게 자전거는 'ideal'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징일 뿐이다.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은  기계 문명에 몸을 던진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어를 시도한다는 뜻이니까. 그런 대안을 생각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의 태도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이반 일리치는 믿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전거로 인문학하기'라고나 할까. 이는 책 맨 뒤에 '<이반 일리치 전집>을 펴내며'라는 글에 있는(안희곤 대표가 쓴 것으로 짐작되는) "이성으로는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대로"라는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해설 빼고 본문만 치면 10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책이 말하려는 건 우리 모두 자전거를 타자는 게 아니라 보다 바람직한 대안을 가슴에 품고 살자는 얘기로 읽힌다. 1974년도에 이런 인사이트풀한 생각을 발표했다는 게 얼른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하룻밤 사이에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이상주의자의 꿈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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