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서
내가 지금 쓰는 것처럼
문장이 맨 오른쪽까지 가서
허공에 부딪혀 다음 줄로 가기 전에
아무 때나 서둘러 행을 바꾸는 것은
(또는 이렇게 맥락 없이 행을 띄는 것은)
자기가 쓴 글이 마치 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꼼수라는, 얼토당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니, 그게 아니라
글을 읽는 독자의 시선이
매번 맨 오른쪽까지 가느라
혹시 피곤하거니 주의력을 읽을까봐
노심초사한 나머지 알아서 적당히
행을 바꿔주는 글쓴이의 노력이나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기특한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던 찰라,
문학동네 시인선 084 김민정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읽게 되었다.
거기엔 글을 읽는 독자의 시선이
매번 오른쪽 끝까지 가느라
혹시 피곤하거니 주의력을 읽을까봐
노심초사한 나머지 알아서 적당히
행을 바꿔주지 않는, 요 며칠 유행하는 말로
'시건방진' 시가 하나 있었으니
이제까지 산문시를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와 같은 얼토당토한 생각을
하던 찰라에 마침 읽은 참신하고 재미있는 시라
한 번 소개를 해볼까 하는 생각인데.
시의 제목과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럼 쓰나만나보라는 남자가 82년생 개띠라고 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핏덩인데요. 이거 왜 이래 영계 좋아하면서. 젖비린 내 딱 질색이거든요. 이래 봬도 걔가 아다라시야. 아다라시. 두툼한 회 한 점을 집어 우물우물 씹는데 어느 대학의 교수씩이나 하는 그가 내게 되물었다. 아나, 아다라시? 무슨 스키다시 같은 건가요? 일본어 잘 몰라서요.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그들은 웃었고 그들은 소주잔에 젓가락을 찢어 숯이니 숫이니 히로키에게 써 보였고 얌전한 히로키는 빨개진 얼굴이더니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일로 그들과의 대화에서 조용히 빠져나갔다. 동경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와 공부를 했다는 동갑내기 히로키와는 가끔 만나 커피 마시며 시 얘기를 하는 사이인데 그는 윤동주의 시를 나보다 더 많이 외우고 나보다 더 많이 베껴본 터라 내가 모르는 윤동주의 시를 토론의 주제로 삼곤 하여서 내게 반강제적으로 송우혜 선생의 [윤동주 평전]을 사게도 하였는데 그런 그가 한국에 와 처음 배운 단어는 밤도 아니고 별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자지라 했다. 자라고 할 때는 자지, 보라고 할 때는 보지. 그렇지. 그건 맞지. 그래서 우리말 번역이 어렵다는 얘기지. 누가 저 문장을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웃음기 없이 술자리도 아닌 데서 듣는 아랫도리 사정이다보니 참으로 거시기하여 거시기하구나 하는데 그 거시기가 뭐냐 물으니 그러니까 나는 합치면 자보자라 하여 권유형 자보지가 된다며 뻘쭘하니 한술 더 뜨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얼렁뚱땅 시인의 시를
딱 한 편만 시 같지도 않은 형태로 소개하고
이 시집엔 이런 유쾌발랄하고
귀엽게 음란하면서도 자기비하적인 시들이
수두룩하다는 평을 슬쩍 흘림으로써
(옆에서 내 얘기를 듣던 아내는 시인이 마치
단어들을 두 주먹 안에 넣고 저글링을 하는 것처럼
자유롭고 통쾌한데 그 산문적 경쾌함이
매우 현대적이고 비주얼라이징하면서도
시류에 영합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써달라 부탁을 하므로 나는 그렇게 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그 궁금함을 못이겨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이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라는
시집을 뒤늦게 사게 만들었노라 허튼 자위를 하면서
나는 에어컨 바람 앞에 앉아 껄껄껄 웃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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