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토요일 오후 두 시에 열리는 '독하다 토요일'의 두 번째 모임이 어제 대학로 카페 겸 서점 '책책'에서 있었습니다. 이번에 같이 읽은 책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단편집이었습니다. 두 시 이전에 모인 몇몇 분들과 함께 먼저 각자 가져온 책을 묵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개인적 미팅 때문에 김인혜 씨가 오지 못하게 되었고 정아름 씨도 출장 후유증으로 몸이 안 좋아 참석을 못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할 수 없으니 다음 달을 기약하자 했습니다. 옆집 총각 서동현 씨는 목요일에 촉발된 숙취에 괴로워하면서도 참석해 묵묵히 책을 읽었습니다.
새로운 멤버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제 후배인 광고인 김휘중 씨였습니다. 제가 몇 주 전 술자리에서 이 모임에 대해 얘기했더니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참석하고 싶다고 너무 간절하게 부탁을 해서 초대했습니다. 타고난 길치라 모임 장소를 찾는 데 좀 고생을 했지만 뒤늦게 도착해 책을 읽고 작품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늦게 도착한 사람도 있고 해서 3시 반까지 책을 읽기로 했고 그 후 십오 분 정도 각자의 독후감과 세줄평 등을 정리하고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노찬성과 에반>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에반이라는 존재는 개를 넘어서 우리가 의지하거나 붙들고 싶어하는 어떤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옆집총각 서동현 씨는 <건너편>이 너무 슬프고 리얼했다고 했습니다. 적나라했고 정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수산시장 장면에서는 마치 '사람들이 줄돔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구요. <풍경의 쓸모>에서는 무리하게 연결을 원하는 아버지와 노회한 박 교수가 교차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묘사가 일상을 마구 긁어대는 느낌이고 등장하는 사건 사고들이 '느슨한 시침질처럼 꿰어져' 오히려 거대한 풍경을 이룬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창단 멤버였지만 지난 달 참석을 못해 이번이 첫 모임이 된 진주 씨는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자기에게도 에반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했습니다. 다들 <노찬성과 에반>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같습니다. 김휘중 씨는 자기는 평소 장르소설을 좋아하는데 김애란의 소설을 읽고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적나라하고 리얼한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그는 <입동>과 <건너편>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건너편>에서 연인에게 차이는 이수의 입장이 잘 이해되어 마음 아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동> 등의 작품들이 현실을 너무 잘 반영해서 '바깥은 여름'이라는 작품집의 제목이 뜻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했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다른 사람들은 그 사정을 모르는 게 세상 일이고 결국 산다는 다 고독하다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죠.
영어선생님인 임기홍 씨는 모임에 와서 또 영어책을 읽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했는데 무슨 작품이 좋았냐고 물었더니 <침묵의 미래>가 흥미로웠다고 털어왔습니다. 다른 소설과 달리 화자가 '언어'라는 게 재밌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찬성과 에반>에서 왜 찬성이 할머니한테 '목사님이 할머니 싫어한대'라고 얘기했는지 의문을 제기해서 잠시 토론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목사님이 할머니한테 더 이상 바랄 게 없자 그런 식으로 나온 게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목사님이 나쁘다는 것이죠. 저는 읽은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 했었는데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는 바람에 확 걸렸던 대목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입동>이 좋았는데 '바깥은 여름'이라는 인식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 김애란의 에센스 같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은 다 영화화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눈먼자들의 국가]에서도 이 작가가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미리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며 지난 번 우리 모임의 작가였던 권여선보다 더 대중성이 있는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번 소설도 세월호 사건 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얘기했는데 다들 그 의견에 공감해서 찾아보니 그때 이 작품을 쓴 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손영연 씨는 <건너편>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누가 글을 양동이로 쏟아붓는 느낌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겠죠. 그리고 <풍경의 쓸모>에서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을 박제해 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결국은 '전형적으로' 살게 되는 것' 이란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아버지를 돕지도 못하고 결국 교수 임용에 떨어지는 주인공의 삶도 전형적인 것의 대표격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김휘중 씨는 그게 바로 살아가면서 나이 먹어간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잘 짚어낸 것이라 말하며 김애란이 글을 너무 잘 써서 좋기도 하지만 막상 그 글을 읽어내는 게 자신과 마주하는 것 같아서 힘들고 기분 나쁘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동료 작가와 이 작품집을 올 1월에 이미 읽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쓸 것인지를 얘기를 하느라 조금 다르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입동>이라는 작품이 별로다,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데, 그 이유가 너무 전형적으로 잘 쓴 작품이라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하다 모임에 와 보니 일반 독자들이 이 작품에 대해 반응이 뜨거운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는 것이죠.
그녀는 [침묵의 미래]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룬 [가리는 손]이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아는 언니와 나눈 '세월호와 액체괴물' 얘기도 했습니다. 다 얘기하려면 길지만 짧게 말하면 잘 몰라서, 순수해서 오히려 잔인해질 수 있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러자 김휘중 씨가 [가리는 손]이 정유정의 [종의 기원]이 생각나는 소설이라 인상 깊었다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정유정에 대한 소설 얘기를 중구난방으로 나누다가 결국 김애란은 잘 쓰는 소설가이며, 너무 잘 쓰다 보니 오히려 역설적으로짜증이 나기도 하다는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이나 단편 <입동> 모두 압도적인 소설이라는 상찬을 나누다 모임이 끝이 났습니다.
뒷풀이는 원하는 멤버만 간다는 원칙 하에 광장시장의 '박가네 빈대떡'에 갔었는데 약속이 있다는 김하늬 씨와 손영연 씨만 빼고 모두 달려가 '빈대떡 삼합' 안주에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습니다. 어쩌다 제가 똥에 얽힌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똥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김휘중 씨한테 옮겨가면서 또다른 똥얘기로 번져 오랫동안 각종 똥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다은 달에 한강 작가의 [흰]을 읽기로 하고 다들 무사히 헤어졌습니다.
다들 세줄평을 발표하지 않아서 제가 쓴 세줄평만 괜히 공유해 봅니다.
견고한 슬픔들 -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김애란의 소설은 사라진 것들이나 도달하지 못한 곳에 대한 애잔한 반추들이 있어 슬프다. 그러면서도 성실한 취재가 소설의 견고함에 힘을 보탠다. 진작에 끝나버린 연인들의 이야기 <건너편>에 등장하는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 같은 기상청의 캐치프레이즈가 그런 대목이다. 남편을 잃고 영국에 다녀온 주인공이 휴대폰 서비스 시리와 대화를 시도하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서글프다. 다른 단편집 [비행운]에 들어있는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를 추천한다. 그 소설을 읽고나면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에서 탕웨이가 하던 대사가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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