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EBS ‘한국영화특선’에서에서 이창동의 [밀양]을 다시 하네요. 2007년도 영화입니다. ‘생일번개’로 친구들과 이 영화를 본 다음날 집에서 꼼짝 않고 오후 내내 영화일기를 쓰다가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고 다시 들어와 마저 완성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제가 쓴 영화일기 중 가장 집중해서, 가장 괴로워하면서, 그리고 가장 행복해하면서 쓴 글이 아닐까 합니다. 제목도 없고 좀 긴 글이지만 그래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져 오랜만에 다시 꺼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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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 저, 신애예요. 이신애. [밀양]의 주인공이요. 며칠 전 전도연씨가 칸에서 상 탄 소식 듣고 저도 무척 기뻤어요. 혹시 [밀양] 아직 못보셨어요? 어머, 그럼 이 글은 읽지 마세요. 저도 스포일러라고 욕먹고 싶진 않거든요.

 

 

[밀양]보시는 동안 힘드셨죠? ㅋㅋ…죄송해요. 제 팔자가 좀 세야 말이죠. 사실 남편 고향이라고 밀양 내려간 건 순전히 제 오기였죠. 죽은 남편이 바람 피운 것도 인정하기 싫었고, 사랑에 배신당한 여자라구 동정 받는 것도 싫었거든요. 그래서 ‘오냐, 내가 얼마나 잘 살아내는지 한번 보여주마!’라는 마음으로 내려간 거였어요. 괜히 센 척 한 거죠. 안 그러면 전 재산 780만원 남은 년이 땅은 왜 보러 다니고 그랬겠어요.
 
우리 쭌이 보셨죠? 예쁘죠? 진짜 너무 예뻐요! 근데 그렇게 이쁜 애를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미치겠더라구요. 처음 범인의 전화를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제가 밀양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겨우 종찬 씨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무작정 달려갔는데 이 남자, 혼자 카센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예요. 미치는 줄 알았어요. 정말 애는 돌려줄 줄 알았는데. 걔가 무슨 죄가 있다구 그렇게 죽여요? 그게 사람이에요? 당장 패 죽이고 싶었어요. 찢어 죽이고 싶었어요. 그 놈 죽이고 저도 죽어버리고 싶었어요…

 

 쭌이 사망신고를 하고 나오다 동사무소 앞에 잠깐 정신을 놓고 쓰러졌었는데 그 때 마침 ‘상처 받은 영혼들을 위한 기도회’ 라는 현수막이 보이더라구요. 약국 아줌마가 예수 믿으라고 치근덕댈 땐 이게 왠 헛소린가 했는데 그 땐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걸음이 향하더라구요. 이런 게 바로 성령인가 싶었죠.

 

무턱대고 들어가 의자에 앉았는데 처음엔 계속 기침만 나왔어요.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냥 울음이 쏟아지는 거예요. 무슨 둑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나도 왜 그랬는지 몰라요. 도저히 울음을 그칠 수가 없더라구요. 사실 우리 쭌이 보내고 나서 그때처럼 후련하게 울어본 게 처음이었어요. 목사님이 와서 제 머리에 손을 얹으시는 순간 온 몸이 짜릿하게 떨리고, 아 이제 살겠구나 싶었어요. 전 그날 처음으로 잠을 아주 푹 잤어요.

 

 왜 하필 기독교냐구요? 저도 이창동 감독님한테도 물어봤죠. 왜 하필 교회냐구. 그랬더니 ‘기독교만큼 사람들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종교가 또 있냐?’고 하시더라구요. 맞는 말이에요. 제가 만일 교회 대신 절이나 성당에 갔었으면 그토록 빠르고 그토록 절실하게 구원과 평화를 얻지는 못했을 거 같아요. 제가 만난 신이 하필 하나님이었던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좀 극성스럽긴 해도 이건 단순한 종교영화나 반기독교 영화는 절대로 아닌 거죠.

 

하루하루가 새로웠어요. 전 그야말로 벼락을 맞은 것처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그때부터 하나님하고 연애를 하는 기분이었다니까요. 진짜 믿는 건지 아니면 믿는 척 하고 싶었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뭘 모르는 종찬씨도 저를 졸졸 따라다니다 결국 교회까지 왔지만(그 사람 진짜 속물이거든요) 그렇게라도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제가 역 앞에서 찬양하는 동안 뒤에서 불량한 친구들하고 담배나 피면서 ‘한라산 정기’ 어쩌구 떠들더라도 전 조금도 개의치 않았어요. 내가 하나님을 만나서 이렇게 행복한데, 그 사람이 원님 덕분에 나팔 좀 분다고 뭐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용서하기로 했죠. 그래, 우리 쭌이한테 그런 일이 생긴 것도,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긴 것도 다 하나님의 크고 깊으신 뜻이었을 테니까. 이제 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라면, 거꾸로 그걸 실천함으로써 나도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얻으리라. 면회 가서 그 인간을 봤을 때 전 너무나 뿌듯했어요. 아, 저기 나의 용서를 받고 새롭게 구원을 얻을 어린 양이 앉아 있구나. 이게 결국 하나님의 큰 뜻이었구나...

 

근데…근데 이런 씨발, 그게 아니었어요. 말이 돼요? 감방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그 놈의 말을, 드디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그 미친놈의 말을, 아침에 일어나 기도로 시작하고 자기 전에도 기도로 끝낸다는 그 인간 말종의 말을 제가 듣다니요!

어떻게 교도소를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제가 잠깐 기절을 했었나 보죠? 하하하. 웃음밖에 안 나왔어요. 하나님이 날 배신하다니. 하하. 그렇게 열심히 믿었는데. 약국에 찾아가서 아저씨를 꼬셨어요. 순진한 분이라 그런지 쉽게 넘어오더라구요. 아저씨랑 억지로 섹스를 하면서 전 하나님한테 물었어요. ‘보여? 보여? 보이냐구?’ 당신이 그렇게 사랑한다던 그 어린 양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보이냐구!

 

 약국 아저씨랑 헤어져서 카센터로 갔더니 종찬씨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더라고요. 오늘이 생일이었나 봐요. 아, 그래서 같이 저녁 먹자고 했었구나. 전 잔인하게 물었죠. ‘종찬씨도 하고 싶어요, 섹스? 혹시 원하나 해서.’ 미친년같이 노래를 부르는 제 앞에서 종찬씨는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가게를 뒤엎었죠.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였거든요. 하하. 신에게 복수하는 길은 신의 어린 양을 죽이는 길뿐이다. 그래 죽자! 잘 봐. 과도로 손목을 그은 것도 몰랐어요. 그냥 견딜 수가 없었나 봐요. 피가 철철 나데요. 근데 왜 살고 싶었을까요? 이 비참하고 치사한 목숨, 왜 놓기가 싫었을까요?

 

 정신병원에서 나온 저는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에 갔다가 그 살인범의 딸을 만났어요. 이창동 감독님, 정말 지독한 사람이죠? 보통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리면 그 사람도 좀 맛이 가는 법인데 이창동 감독님은 문화부 장관까지 하고 나서도 어떻게 변한 게 한 개도 없어요? 그 뭐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쓴 유홍준 씨도 얼마 전에 문화재 옆에서 고기를 구워먹다가 장난 아니게 욕 먹고 하던데 말이죠.

 

 머리를 자르다 말고 뛰쳐나온 저는 ‘니 미칬나, 머리를 한쪽만 자르다 나오게?’ 라고 말하는 양품점 아줌마 얘기를 듣고 쿡쿡 웃음을 터뜨렸어요. 미친년한테 미친년이라구 물으니까 그것도 의외로 재밌더라구요.

 

 

죽는 건 좀 보류하기로 했어요. 그렇다고 뭐 딱히 살아갈 희망이 생긴 건 아니구요. 따뜻한 햇빛 아래서 머리를 듬성듬성 잘라버리고 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맨날 구박만 받으면서도 변함없이 제 주변을 얼쩡거리는 종찬씨가 어떤 땐 좀 고맙기도 하구요. 사실 그 사람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냐구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죠 뭐.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애들 피아노 가르치고…가끔 종찬씨 좀 갈궈주고. 아, 근데 요즘은 씽크대 앞에 서서 혼자 밥 먹고 그러진 않아요. (2007.5.25)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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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부하고 있는 사진 수업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영화일기를 썼던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2005년 3월 20일에 올렸으니 8년 전에 쓴 글이로군요.

섹스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배제된 멜러 드라마가 존재할 수 있을까.
여기 그런 영화 한편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25번째 감독 작품, 밀리언달러 베이비.
왕년에 컷맨(링의 응급치료 트레이너)으로 이름을 날리다 지금은 허름한 체육관을 운영하는 트레이너 프랭키에게 매기라는 서른 한살 짜리 여자애가 권투를 하고싶다며 찾아온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세살부터 지금까지 웨이트리스를 하고있는 순 깡촌년이다. 여자 선수는 키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프랭키는 일언지하에 그녀의 제의를 거절한다. 하지만 매일 식당 일을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체육관에 찾아오는 그녀의 열의까지 막을 도리는 없다. 왕년의 복서이자 지금은 체육관의 잡일을 맡아 하고 있는 스크랩(모건 프리먼)은 밤늦게까지 혼자서 무턱대고 샌드백을 두드리는 그녀를 보다못해 조금씩 기본기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날 ‘펀치볼’ 사건을 계기로 프랭키는 드디어 그녀의 트레이너가 되기로 결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누구인가. 우리가 어렸을 적 KBS나 MBC 주말의 명화 같은 데서 엔리오 모리코네의 노르스름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홀연히 망토를 뒤집어쓰고 나타나 시가를 입에 문 채 인상을 구기고 총질을 해대던 ‘황야의 건맨’ 아니던가. 그러나 가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수십년의 세월은 어느덧 그를 75세의 할아버지로 만들어 놓았다. 비교적 최근작인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는 너무 늙어보여 과연 메릴 스트립 앞에서 제대로 발기나 할 수 있을까, 하고 관객을 민망하게 만들었던 그가 이번 영화에서는 정말 눈이 움푹 파이고 깡마른 노인 피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늙은 건 배우로서의 육체일 뿐 감독으로서의 역량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깊게 단련되어 이제는 찬란한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된다. 이번 아카데미가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 대신 백만달러 짜리 소녀 매기의 손을 들어준 것은 어쩌면 헐리우드에 ‘클린트 월드’ 같은 저력이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프랭키는 매주 편지를 써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냉정한 딸이 하나 있고, 매기는 어렵게 번 돈으로 집을 사줘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차라리 돈으로 줄 것이지 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냐’고 화를 내는 엄마를 비롯해 몹쓸 싸가지로 똘똘 뭉친 형제자매가 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인간같았던 아버지는 일찍 죽어버렸다. 프랭키는 애써 키워 놓은 선수들은 돈을 좇아 떠나버리기 일쑤고, 23년간 매주 빼놓지 않고 가는 성당의 신부에게나 오랜 동료인 스크랩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반쯤 밖에 열지 못한다.

‘피붙이’는 있어도 ‘마음붙이’가 없는 두 사람은 서로 권투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디어 ‘아버지와 딸’ 이 된다. 그리고 프랭키의 노련한 지도와 매기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은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둔한 몸짓으로 샌드백을 두드리던 그녀는 프랭키와 스크랩에게서 ‘서고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하더니 결국 일년 반만에 한마리 날렵한 맹수로 새롭게 태어난다. 영화 속 권투 경기 장면들은 너무나 박진감 넘쳐서 ‘저것이 진정 여자들의 주먹이란 말인가’ 경악하게 되고 힐러리 스웽크의 코뼈가 부러지는 씬에서는 나도 모르게 객석에 앉아 내 코가 멀쩡한지 몇번이나 감싸쥐어야 할 지경이었다. 흔히 ‘배우들은 운 좋게 재능과 인물을 타고나 일이 없을 땐 섹스 스캔들이나 일으키고 약물이나 해대는 존재’라고 헐뜯는 사람이 있는데 난 절대로 그런 선입관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영화로 두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가져간 힐러리 스웽크는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것은 물론 석달 동안 일주일에 6일씩 두시간의 권투 연습과 두시간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반복했고, 계란 흰자를 꾸역 꾸역 먹어가며 6Kg의 근육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더라도 노력하지 않는 존재에겐 좀처럼 운을 허락하지 않는 냉정한 양반인 것이다.

연전 연승. 맞붙는 선수마다 1회 KO로 때려눕히길 거듭해 더 이상 상대 선수가 나서질 않는 경지에 오른 매기에게 오랜만에 런던에서의 시합 제의가 들어온다. 도약의 기회다. 틈만 나면 ‘늘 자신부터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읇어대는 프랭키는 시합 직전 그녀에게 ‘100% 올 실크’로 제작된 화려한 선수 가운을 입혀 준다. 그 가운의 등판엔 매기 핏제랄드라는 그녀 이름 대신 ‘무쿠슈라’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새겨져 있다. 매기는 이 경기에서도 화끈하게 승리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쿠슈라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마침내 대전료 100만달러 짜리 세계 타이틀 도전자가 되어 라스베거스 특설링에 오르게 된다.

여기까지가 매기 권투인생의 정점이다. 매기는 반칙을 일삼아 인기를 끌던 사나운 챔피언년과 맞서 싸우다 뒤통수를 얻어맞고 넘어져 전신마비가 된다. ‘늘 자신부터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프랭크의 충고를 단 한번 어긴 죄로 천국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얼굴 뿐이다. 프랭키는 모든 일을 작파하고 성심성의껏 그녀를 돌보지만 그녀의 몸은 욕창이 나서 점점 썩어 들어간다. 오직 그녀의 돈만을 노리고 나타나 장례식까지 운운하며 서류에 싸인을 요구하던(입에 펜을 물려주며!) 가족들을 쫒아보낸 매기는 프랭크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하자 혀를 깨물고 자살을 시도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장르 영화의 관습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절묘한 복선들을 곳곳에 치밀하게 깔아놓고 관객의 마음을 찢어발기다가 어느 지점에서 완만했던 서사 구조를 일시에 뒤집어 대단한 감동과 신선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프랭크와 티격 태격 유머러스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대사들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영화 전체의 나레이션까지 맡아 인생의 지혜를 끊임없이 들려주던 스크랩이라는 인물은 원작에 없었다는 점이다. 즉 70세에 ‘불타는 링’을 쓴 원작자 F.X 툴이 이 영화의 뼈와 근육을 만들어 놓았다면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각색자 폴 해기스는 영화에 살과 체온을 불어넣은 것이다.

권투 영화이면서도 멜러 영화이고, 장르 영화이면서도 파격적 주제를 담고 있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결론적으로 ‘소통’에 관한 영화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할 것처럼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프랭키는 매기와 완벽하게 소통하는 순간, 번민을 넘어 중대한 결심을 한다. 매기의 청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 옛날 다리를 절던 개를 안락사 시킨 뒤 삽을 들고 나타났던 매기의 아버지처럼.

프랭크는 밤에 주사기를 들고 병원에 나타나 매기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부터 네 산소 호흡기를 떼주겠다. 약물을 함께 주사할테니 편안하게 잠들거라… 그리고 무쿠슈라는 겔릭어로 ‘나의 혈육’이라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프랭키를 바라보는 매기의 눈에서 고마움과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매기에게 트레이너이자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주문을 마친 프랭키는 꾸부정한 뒷모습으로 어두운 병원 복도를 빠져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다. 어쩌면 그가 병상에서 읽어주던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에 나오는 오두막을 진짜 찾아나서기라도 한 것처럼.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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