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느닷없이 이번 주 금요일엔 진도엘 좀 다녀와야겠다고 했다. 은곡도마의 이소영 대표와 함께 전남 진도에 가서 바다 갈라지는 것도 보고 씻김굿도 좀 보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갑자기 그런 일정을 잡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했더니 자기도 자세한 건 모르겠고 아무튼 내려가기로 했으니  당신도 금요일에 휴가를 내서 갈 수 있으면 같이 가자고 속 편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일이 바빠서 바빠서 도저히 안 될 것 같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소영 대표는 은곡 이규석 선생의 딸로 평생 목공예를 하던 아버지를 설득해 도마를 만들게 하고 '은곡도마'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이끌어오고 있는 젊은 사업가다. 우리 부부와는 은곡도마 런칭 초기에 대학로 마르쉐에서 손님과 판매자로 만났던 인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은곡도마는 강원도에서 나는 박달나무 등으로 만드는 수제품인데 그 품질이 뛰어나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이다. 아내와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인제에 있는 은곡 선생의 작업장까지 가서 도마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기도 했다. 은곡 선생은 평생 자유인으로 살아온 예술가인데 얼마 전 KBS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소영은  10살 때부터 소리 공부를 했던 젊은 소리꾼이기도 했다. 짧고 날렵한 헤어스타일에 힙한 의상을 하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던 국악소녀였으나 어느날 미련 없이 국악계를 떠났던 인물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주축인 국악계에서 홀로 '강원도 애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일부터 시작해 크고 작은 갈등이나 세력다툼 등을 견디기 힘들어 소리를 집어치웠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진도씻김굿 배우는 곳에 갔다가 예전 국악 경연대회에서 입상자로 만났던 후배이자 요즘 가장 잘 나가는 고수(북이나 장구를 치는 이) 김태영을 다시 만나면서 씻김굿에 빠졌다는 것이었다. 씻김굿은 소리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이소영은 김태영을 비롯한 젊은 후배들을 만나 씻김굿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마음속에 새로운 불길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목요일 저녁에 갑자기 급한 프로젝트 하나가 취소되는 바람에 금요일 연차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매우 기뻐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자세한 일정은 잘 모르지만 내일 아침에 같이 진도로 가면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누구랑 가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아는 게 뭐냐고 했더니 진도에 가서 이소영이 누군가를 모시고 소리를 해야 하는 것만 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낮에 이소영이 성북동에 있는 우리집 '성북동 소행성'에 와서 혼자 소리 연습을 하고 갔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게 이번 여행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아내도 나도 알 수가 없었다. 

궁금하던 사연은 다음날 아침 이소영을 만나고 나서야 풀렸다. 진도 태생인 김태영 고수가 마침 일 년에 딱 한 번 바다가 갈라지는 '진도하늘길축제' 기간을 맞아 공연을 하는데 그 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보유자인 박병호 선생을 비롯한 진도씻김굿 보존회의 대가 세 분께 이소영을 소개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한 분인 김오현 선생은 김태영의 친아버지이기도 한데, 그분들께 이소영이 하는 씻김굿 한 대목을 들려드리고 인사 겸 어떤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말하자면 업계 지존들을 바로 앞에 모셔놓고 하는 일종의 오디션인 것이다. 

아내와 나, 이소영 대표, 그리고 이소영의 동료이자 친구인 나윤 씨와 선화 씨 등 다섯 명이 진도에 가서 태영 씨를 만났다. 이소영은 자신이 아는 가장 박자 감각이 뛰어난 고수라며 김태영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태영 씨는 우리를 데리고 전통문화유산 전수관이라는 곳으로 갔다. 거기엔 진도씻김굿 말고도 다시래기, 들노래, 강강수월래 등의 무형문화제들을 관리하고 전수하는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진도씻김굿'이라는 글씨가 쓰여진 방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으니 곧 세 분의 악사가 들어오셨다. 태영 씨가 인사를 하고 이소영을 가리키며 이 분은 예전에 소리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인데 지금은 국악계를 떠나 사업을 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진도씻김굿을 소개받고 굿이 너무 좋아 자신과 잠깐 연습을 해보았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구를 잡으며 이소영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나는 이소영이 소리하는 것을 여러 번 보고 들었지만 이토록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벽에 기대 앉아 눈을 감고 있는 현존 최고의 권위자들 세 분 앞에서 5일 정도밖에 익히지 못한 노래를 불러야 하니 왜 안 떨리겠는가. 징도 처음 쳐보는 것이라 했다. 긴장하기는 고수 김태영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진도씻김굿의 한 대목이 시작되었다. 조심스럽게 첫 번째 곡을 들은 어른들은 이소영이 두 번째 곡으로 '살풀이'를 시작하자 표정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김태영이 장구를 치며 추임새도 더 넣고 바라지를 여유있게 하자 이소영도 자신감을 회복했는지 갑자기 목소리에서 윤기가 찰찰 흘렀다. 우리는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고 그 모든 과정을 아내 윤혜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녹화하고 있었다. 

장구가 멈추고 방 안은 조용했다. 살풀이가 끝나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한 어른이 미소를 짓고 "용감하네!"라고 일갈하며 웃자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어른들 앞에서 이렇게 하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젊은 사람이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이런 건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박병호 선생은 소리를 잘 한다고 해서 씻김굿까지 잘 하는 게 아니라면서 이소영은 아직 소리를 하던 기운이 남아있어서 목을 너무 꺾는다는 주의를 주었다. 그러면서 한 번 꺾으면 그 다음은 반드시 밀어야 한다는 팁도 전해줬다. 그러나 그건 야단치는 소리가 아니라 기특해서 하는 칭찬의 말씀이었다. 강원도 출신인데도 참 잘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가 이소영의 어머니가 전주 분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렇지.  역시 몸 안에 뭔가가 있어."라고 흡족해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진도씻김굿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씻김굿은 죽은 사람의 원을 풀어주는 장례의식인데 우리나라엔 지방마다 많은 씻김굿이 존재하지만 진도씻김굿만큼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것은 없다고 한다. '벌교 가서 주먹 자랑 말고 진도 가서 소리 자랑 마라 '는 옛말이 있듯이 진도 사람들은 한 집 건너 인간문화재라는 소리를 듣고 산다. 박병호 선생은 독일에 가서 공연을 했을 때 무대가 모두 끝날 때까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울던 경험을 얘기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위무해주는 그 마음만은 다 전달이 된 것이었기에 1979년 세계민속음악제에서 금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굿하는 사람들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신도 젊었을 때 굿을 버리고 밴드를 한 적이 있다는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소영처럼 다른 욕심 하나 없이 오로지 씻김굿이 좋아서 배우고 싶다는 젊은이가 제 발로 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이런 건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나야 하는데 이소영에겐 그런 게 보인다고 하면서 안그래도 독보적인 무녀 한 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마침 이런 친구가 나타나다니 참 신기하다,라고도 했다. 더 이상이 없을 정도로 최상의 칭찬이었다. 

박병호 선생은 씻김굿은 국악인만이 아닌 일반인을 위한 굿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공연장이 아닌 한옥에서 굿이 이루어져야 진짜라고 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작은 한옥집에서 진도씻김굿의 모든 과정을 재현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진짜 상을 당한 집에서 무녀의 살풀이와 상주의 울음소리가 자연스럽게 섞일 때 진정한 위로와 씻김이 시작되는데 그건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흐뭇한 기분이 되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진도의 '청담골'이라는 음식점에 가서 간재미무침, 병어찜, 산낙지 등 눈이 휘둥그레지는 안주에 홍주와 레몬소주를 마시며 어른들과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었다. 이차는 태영 씨네 집이었다. 태영 씨 어머니의 음식솜씨는 대단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쏟아지는 안주와 술을 즐기며 즐거운 자리를 이어갔고 우리 부부만 특별히 태영 씨가 잡고 소영 씨가 계산을 한 동네의 모텔에서 자는 특전을 누렸다. 넓은 모텔에서 딩굴딩굴 네 활개를 치고 잔 우리가 아침에 다시 왔을 때 어머니가 내주신 아침밥상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보리굴비와 조기, 곱창김무침, 깃김치, 가시리국 등 재로에서도 음식 솜씨에서도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최고의 차림새였다. 나는 진도에 있는 태영 씨네 아침밥과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과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짧은 글을 '진도의 아침밥상'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브런치에 올렸는데 그게 다음 포털 메인화면에 노출되는 바람에 현재 조회수 7만을 넘길 정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태영 씨 집에서 빈둥거리던 우리는 점심 때 축제장소로 가서 수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진도 축제공연을 보았다. 역시 축제는 시끄럽고 울긋불긋 떠들썩한 맛이었다. 진도는 길에서 걸어가며 춤추고 소리하며 노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예사스럽지가 않았다. 진도 주민 말고도 멀리서 온 유명 명창들이 들려주는 '사철가'와 호랑이탈춤 등은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후두득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특히 인간문화제 강은영 선생이 활약한 '진도북춤'은 시원한 소리부터 쫀득쫀득한 춤사위까지 너무나 흥겹고 유쾌했다. 마지막에 머리에 고깔을 쓴 여성분들이 나와 지전춤을 추며 진도씻김굿을 진행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가 악사와 명창들에게 지폐를 꽂아주었다. 소복차림으로 춤추고 노래하며 신에게 연결해주는 분들이기에 다들 아낌 없이 돈을 내고 소원을 비는 듯했다. 태영 씨가 우리 옆에 앉아 있다가 춤과 굿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사람이 죽으면 슬프잖아요. 근데 진도에서는 저렇게 북치고 꽹과리 치고 즐겁게 노래 부르면서 보내요." 

죽음을 대하는 보다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이소영은 지폐 뭉치를 손에 쥐고 무대 위로 올라가 악기를 다루는 예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차례차례 다 돈을 꽂아주고 내려왔다. 노래를 하던 분이 "아이고, 저 친구는 돈 쓸 줄 아는구마. 생긴 것도 멋지게 생겨가지고..."라며 고마운 인사를 했다. 그러나 역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씻김굿은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의 원을 풀어주려는 간절함이 없다보니 형식은 훌륭하지만 공감은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씻김굿이 다 끝나고 다시래기가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서울로 향했다. 영문도 모르고 진도까지 내려왔다가 평생 잊지 못할 문화적 체험을 하고 올라가는 길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가슴에 무엇을 품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은곡도마라는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이끈 신생 사업가이며 또다른 사업까지 준비하는 와중에 '진도씻김굿'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려는 이소영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존재다. 무엇보다도 진도씻김굿을 배우려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위로해주고 싶어서,라는 그녀의 말은 평범한 단독자로서도 존경스럽고 믿음직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된 우리 부부가 늘 즐거운 자극을 주고 있는 사업가 이소영의 행보를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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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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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자발적 노동착취의 현장 - 은곡도마 체험교실>

우리집에 있는 도마 이름이 은곡도마다. 박달나무로 만든 고가의 제품. 아내가 은곡도마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나도 매일 그 도마 위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살고 있으니 아주 무관하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도마는 은곡 이규석 선생의 작품이라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데, 목공예 예술작품만 만들고 지내던 분이 '도마 메이커'가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딸 소영 씨 덕분이었다. 열 살때부터 소리를 배워 해외 무대까지 발을 넓혀 공연을 다니던 소리꾼 소영 씨는 우연히 은곡도마 아이디어를 낸 이후로 아버지의 일을 도와 이 제품의 제작, 배급은 물론 홍보, 마케팅 등 온갖 궃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아내가 몇 주 전부터 '은곡도마 체험교실' 날짜를 잡고 멤버들을 모았다. 은곡 선생이 오래 전부터 한 번 꼭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혜숙과 그의 남편 표문송, 윤혜자와 그의 남편 편성준, 옆집 총각 서동현까지 갑자기 몽골 여행을 떠난 한 친구만 빼고 원래 같이 가려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서울에서 소영 씨 부부와 네 살짜리 아들 희수도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목적지는 인제군 필레에 있는 은곡 선생의 작업장. 전날 동현은 반차를 내고 송명섭막걸리 등 술을 준비하는 성의를 보였다. 말이 도마 체험장이지 사실은 캠핑인 것이다. 우리는 작업장으로 가기 전 인제의 하나로마트와 그 앞 정육점에 가서 고기와 술을 더 샀다. 도마 작업은 우리가 가는 캠핑의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일정은 마시고 노는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드넓은 비닐하우스 안에는 도마 말고도 은곡 선생이 만든 작품들이 즐비했다. 달마대사가 있는가 하면 새가 있고 섹시한 여인의 모습이 있도 의자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도 있었다. 짓궃은 성기 모양도 있었다. 하나 같이 그 전에는 그냥 나무일 뿐이었는데 예술가의 눈에 띄는 바람에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경험을 한 피조물들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소영 씨에게 작업 지시를 받았다. 평평하게 도마 모양으로 절단된 나무토막을 사포질을 해서 매끄럽게 만든 후 작업용 기름을 칠하고 잽싸게 천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해야 한다. 그것도 한 번에 하는 게 아니라 몇 시간 정도 텀을 두고 해야하는 제법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다섯 명의 용병들이 검은색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서울에서 각자 가져 온 앞치마를 하고 작업대 앞에 서서 조를 나눠 작업에 임했다. 누구는 도마를 날라오고 누구는 기름칠을 하고, 옆에서 그걸 받아서 기름을 얼른 닦아내고 도마가 잘 마르도록 건조대에 수납하는 일을 정성껏 했다. 신선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하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건 다들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소영 씨가 우리 옆에 와서 이렇게 고급 인력들이 내려와 일을 해줘서 고맙다며 격려를 해줬다. 비닐하우스 바깥에서는 동네 사는 인부들이 모터로 그라인딩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은곡 선생이 작업용 나무들 중 안 쓰는 것들을 모아 숯불을 만들어 주셔서 고기를 구웠다. 먼저 소고기를 구웠다. 문송이 구웠는데 음식에 엄격한 동현이 육즙이 마를까봐 굉장히 긴장하는 얼굴로 고기를 지켜보다가 고기가 채 익기 전에 얼른 들고 상으로 와서 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숯불에 구워서 그런지 더 맛이 좋았다. 돼지고기도 구웠다. 좋은 고기를 산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넉넉하게 사온 고기 사이로 오징어도 구워 '오삼불고기'를 만들어 먹었다. 송명섭막걸리를 비롯한 각종 막걸리와 처음처럼이 번개처럼 비워졌다. 아내가 작업장으로 배달을 부탁한 문어도 도착했다. 안주와 술이 넘친다.

소영 씨가 어느 정도 먹었으면 이제 저녁작업에 들어가자고 말했다. 다들 비닐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하고 작업대 앞으로 가서 도마에 기름을 칠하고 천으로 기름을 닦아내고 건조대에 조심스럽게 수납을 했다. 다리가 아팠다. 팔도 아팠다 소영 씨 말에 의하면 내일 아침에 손가락 끝이 굉장히 아플 것이란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떨어뜨릴까봐긴장하느라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작업자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도대체 쉴 틈이 없었다. 도마 하나를 건조대에 수납하고 나면 기름을 닦아내야 할 도마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마셔서 화장실에도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었다. 아, 어쩌다 이런 덫에 빠져버린 것일까.

카피라이터 출신 광고인이 둘, 기획팀장 출신 광고인이 하나, 출판기획을 하고 있는 기획자 하나, 화장품 회사의 인테리어 팀장 하나. 이런 단순 작업을 하기엔 우리들위 학력이나 지위가 너무 높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오고 간다. 그러면서도 칠 똑바로 해라, 기름 잘 닦아내라, 떨어뜨리지 마라 등등 서로를 감시하고 독려하는 데엔 게으름이 없다.

작업은 명목일 뿐, 사실은 놀러 가는 거라는 윤혜자 여사의 꼬임에 빠져 순진하게 따라 온 나머지 네 명은 원망하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지만 윤 여사는 '나도 피해자다' 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 은곡 선생의 이웃인 동네 어른들이 놀러와서 술을 마시고 소영 씨에게 소리를 시키고 한다. 소영 씨가 어른 접대차 하는 소리 '사철가'를 들으며 우리들은 열심히 사포질을 했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겨우 겨우 도마들을 정리하고 다시 모여 술을 마셨다. 은곡 선생이 특별히 춘향가 한 대목을 들려 주셨는데 소영 씨가 북을 치고 은곡 선생이 소리를 하는 아주 멋진 무대였다. 소영 씨가 소리를 배울 때 아버지도 함께 소리를 배웠다는데 정말 솜씨가 대단했다. 타고난 예술가 집안이 아닐 수 없다. 가져간 텐트를 하우스 안 빈 공간에 쳤다. 몇 년만에 쳐보는 텐트를 어둠 속에서 치려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 텐트 여자 텐트로 나누어서 잤는데 밤새도록 빗소리가 들려왔다.

일요일 아침에 소변을 보려고 일어났다가 다들 주섬주섬 작업대에 모여 사포질을 시작했다. 웃음이 나왔다. 어느덧 작업에 중독이 된 모양이었다. 우리가 열심히 할수록 고품질의 도마가 만들어진다는 데 묘한 쾌감과 자부심이 따라왔다. 은곡선생이 오시더니 이번 자원자들은 작업 수준이 매우 높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우리는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작업도 잘 한다는 소영 씨의 뻔한 거짓말에 싱글벙글하며 또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기름칠을 하고 닦아냈다.

아침은 김치찌개와 쏘세지 볶음이었는데 은곡 선생이 한 냄비밥이 너무 맛있어서 다들 배가 튿어질 지경으로 먹고 비명을 질렀다.

오전 작업을 마무리하고 바로 옆에 있는 필레온천에 갔다. 규모는 작지만 프랑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발견된 게르마늄 온천이란다. 물의 느낌이 굉장히 좋았고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즐기는 야외 온천탕의 느낌은 정말 좋았다.

온천에서 돌아와 소영 씨 남편 동현 씨가 부쳐주는 부침개에 막걸리를 또 마셨다. 쉬엄쉬엄하라는 소영 씨의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달려가서 남은 도마들에 기름칠을 하고 바닥을 천으로 문질러 닦았다. 이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노예들이 된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교통정보를 검색해 보니 길이 막힌다 하니 저녁을 먹고 천천히 출발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차피 길에서 시간을 버리느니 그렇게 하자고 모두들 찬성했다. 소영 씨는 모든 작업이 끝날 때쯤 한 가구 당 마음에 드는 도마를 한 개씩 주겠다며 고르라고 했다. 신이 난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도마를 하나씩 골라 선물로 받았다.

토요일 새벽 여섯 시에 모여 일요일 저녁까지 꽉찬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또 한 번 놀러오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남편이 의사인 소영 씨는 서울에 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서울로 올라간다. 다 떠나고 나면 이 넓은 하우스엔 은곡 선생 한 사람만 남는 것이다. 그러나 은곡 선생도 딸 내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비는 그치지 않고 끈질기게 내린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서 집에 가서 눕고싶운 생각 뿐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겠지. 뭐, 날이 흐려서 해가 뜰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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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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