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자? 아유, 이름도 참 예쁘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가 혜자를 보자마자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혜자라는 이름이 뭐 그리 예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혜자'보다 더 예쁜 이름을 가진 여러 여성들과 사귈 때는  정작 그녀들의 발꿈치초차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어머니로서는 막내아들놈이 처음 데려온 여자의 이름이 어떻든 얼굴이 어떻든 그저 죄다 예쁠 수 밖에요. 더구나 혜자가 나온 고등학교가 호수돈여고라는 사실을 안 다음에 그 애정은 확고부동한 자부심으로 변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월남하시기 전 개성에서 호수돈여고를 다니신 걸 최대의 자랑이자 추억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었는데 나중에 그 학교가 혜자가 살던 대전으로 내려왔거든요. 

어머니는 제가 마흔 살이 넘으며서부터  ‘저러다 저 놈이 평생 결혼을 안 하고 살면 어떡하나...’ 하고 늘 걱정을 하다 가신 분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결혼을 안 하고 살 생각이 컸구요. 이상하게 저는 처음부터 혼자 사는 게 싫거나 귀찮지 않았고 또 왠지 결혼이라는 제도가 저랑 안 맞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잠깐씩 좋아하던 여자들도 늘 저랑 결혼까지 할 생각은 없는듯 보였구요. 그러다가 한참 후에 혜자라는 여자친구를 만나 미친 척하고 냅다 살림부터 차렸는데, 하루는 어머니께서 부르시더니 “너희들, 그러지 말고 결혼식을 올리는 게 어떠니?”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듬해 5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는 그 결혼식을 못 보시고 말았죠. 그 해가 가기 전 크리스마스 즈음에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지금 살아계신다면 당신의 며느리인 혜자가 이름 말고도 이쁜 게 얼마나 많은 아이인지 아시고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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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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