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노량진이라는 지역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소설가가 하나 있다고 치자. 그는 그 소설을 쓰기 전에 무엇부터 했을까.
일단 노량진에 갔을 것이다. 거기 가서 그곳에 밀집되어 있는 고시텔 주상복합 건물들이 대개 몇 층짜리인지부터 살펴보았을 것이다. 거기 가서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사는 삼 평이나
사 평짜리 초라한 원룸을 들여다 봤을 것이고 내친김에 뚝불과 돈가스, 삼천 원짜리 김밥 + 라면을 파는 일층 대형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어봤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곳에선 사천 원짜리 식권 열 장을 사면 삼만오천 원을 받고 월식 구십 끼니는 육만 원을 깎아줘서 삼십만 원을 받는다는 것도 당장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고시텔 앞에서 일회용 컵에 소시지볶음밥, 야채비빔밥, 카레라이스를 담아 팔고 있는 무허가 노점상들도 조용히 취재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손바닥만한 고시텔의 이름이 ’집현전’이거나 뭐 그
비슷한 우스운 이름을 달고 있는 것도 부수적으로 알게 되었을 테고 기타 소설에 써먹을 만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하나 둘 사금처럼 모아졌을 것이다.
노량진 고시텔에서 ‘구준생(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살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 ‘영자’라는 이름의 여자와 동거했었다는 얘기를 쓰고 싶어서 자료를 찾다보니 우리나라에 남녀 동거를 알선해 주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남녀 동거를 알선해 주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는 것을 전에 우연히 들었는데 마침 생각이 나서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고 이 소설에 써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얘기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먼저 잡아먹는 놈이 임자일 뿐이다.
10톤 규모의 어선으로 고기를 잡던 주인공의 아버지가 어획량이 줄자 4.5톤 배로 줄였고
그걸 팔아 아들의 서울 이주비용을 대준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처럼이라도 쓰려면 지금 서해안의 4.5톤짜리
중고 배 시세가 대충 얼마나 나가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이런 게 소설가의 일이다.
‘사육신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남긴 시구의 의미를 묻는 문제가 재작년 9급 지방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출제되었다’는 설정은 주인공이 머물고
있는 고시텔 ‘집현전’에서 두 블럭 건너편 언덕에 사육신
묘지가 있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픽션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고 특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뚜렷한 인간의 신념이나 입장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소설가 김훈이기에 더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 것일 확률이 높다.
김훈은 사육신의 묘가 노량진에 있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죽을 벗기고 무릎 뼈를 빻고 가랑이를
찢어서 거리에 버리는’ 가혹한 형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임금을 꾸짖으며 신념을 절대로 바꾸지
않은 바보 같은 인간들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을 것이고, 심지어 ‘인두가
겨드랑이 밑을 지져서 기름이 튀고 누린내가 퍼질 때’도 자신을 고문하는 형리에게 “인두를 달구는 화로가 식었지 않느냐”라고 호통을 칠 수 있는 인간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쉬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대단했던 신념들이 작금에 와서는 겨우 9급 지방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출제되어
그 해 수만 명의 수험생을 탈락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의 역사적 아이러니에 몹시 허탈해 했을 것이다.
김훈의 단편소설 <영자>는 가난한 서해안 어부의 아들인 구준생 남자가 가난한 남해안의
순댓집 딸 영자와 노량진 고시텔에서 1년 간 동거하면서 시험준비도 하고 섹스도 하다가 남자는 붙고 여자는
떨어져서 결국 헤어졌다는 이야기다.
‘검사, 판사. 도지사는 한자로 쓸 때 일사(事)가 맞고 변호사, 계리사, 변리사, 회계사, 운전사는 선비사(士)가 맞는’ 이상하고 아리송하고 쓸데 없는 문제들에 직면해 헤매던 남자는 결국 시험에 합격해 바라던 공무원이 되지만 그렇게
해서 그가 도착한 곳은 서울도 아니고 자신의 고향도 아닌 ‘마장면’이라는
작은 지방 마을의 하급 공무원 자리일 뿐이다.
소설가는 마장면 사무소에 9급 총무계 서기보로 부임한 주인공 얘기를 쓰기 위해 가축 전염병
예방주사를 신청하는 공문을 작성해서 축협으로 보내거나, 오십 시시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돌며 공가 상태를
점검하거나, 산불 팻말을 밭두렁에 박거나 마을 경로잔치 때 면장의 축사를 쓰는 일 등 ‘이것저것 다 하는’ 그의 업무 내용도 조사했을 것이다.
9급 서기보인 주인공의 한심한 처지를 보여줘야 하기에, 어느날 5급 중앙 사무관으로 합격한
마장면 출신 청년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다는 장면에서는 ‘현수막의 제작비가 만이천 원인데
관급물품이라고 팔천 원으로 깍아주지만 배달은 없다’는 사실도 알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동거했던 영자가 도대체 무슨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었는지 몰랐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는 주인공의 반성을 쓰기
위해서는 서울 강남에 식당 화장실 앞에서 지키고 서 있다가 손님이 용무를 마치고 나오면 안으로 들어가서 변기에 눌어붙은 배설물을 솔로 닦아내고 물
위에 단풍잎을 띄우는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것도 알아냈거나 상상해 냈을 것이다. 그래야 단 한 번의 외출이자
데이트였던 사육신묘 장면에서 영자가 굳이 단풍잎을 줍던 이유가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소설가가 하는 일의 전부일까?
내 생각에 소설가가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마을 노인들 효도관광에 따라갔던 주인공이 남해안을
지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영자에게 전화를 걸어봤을 때 ‘이 전화기는 고객의 사정에 의해 사용이 중지된
번호’라 흘러나오는 서글픈 음성 메시지를 독자들이 함께 듣게 만드는 일. 그
장면 때문에 오래 전 내 옆에 있던, 그러나 지금은 없는 각자의 사람을 떠올리고 또 앞으로 내
옆에 있을 미래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일. 소설가는 2014년
현재 서울 노량진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일 뿐이지만 그것들은 결국 2014년 대한민국 전체의 이야기가 되고, 이는 더 확장되어 2014년 지구 위의 모습이 되고, 마침내는 이 이야기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수천 년간 그게 그거였던 하찮은 인간사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일. 그게 바로 소설가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방금 김훈이 한 일이기도 하다. 그저, 내 생각엔
그렇다는 것이다.
'독서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을 잘 다루는 사람이 삶의 주인이다 - [휴대폰 소녀 밈의 시간의 발견] (4) | 2015.04.12 |
---|---|
'너무'라는 말을 자꾸 쓰게 되는 소설 - 한강의 [소년이 온다] (0) | 2015.01.28 |
문어체의 아름다움 – [百의 그림자] (0) | 2014.09.28 |
세상에 널린 이야기들을 내 스토리로 만드는 법 - 전미옥의 [스토리 라이팅] (0) | 2014.09.20 |
오늘 아침 신문에서 본 신간들 몇 권 (0) | 2014.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