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에세이 중 가장 좋았던 책은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다.
문단에 소설가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해서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걱정하는 소설가가 없는 것으로 보아 소설가 집단이야말로 배타성이 가정 적은 곳, 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긴 에세이는 하루키라는 사람이 자신의 평생 직업인 소설가에 대해서, 그리고 소설이라는 것을 쓰는 이유와 자세, 독자에 대한 생각 등을 아주 성실하면서도 쉽고 다정한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당연히 데뷔 전과 데뷔 초기 얘기도 많이 나오고 인터넷에 뜨는 독자들의 반응과 온갖 구설을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가서 일생일대의 히트작 [노르웨이의 숲]을 쓰던 얘기도 나온다. 퇴고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온다. 자신이 [양을 둘러싼 모험]이던가, 아무튼 어떤 소설 원고의 일부분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써야 했다고 한다. 한 번 썼던 글을 기억에 의존해 다시 쓰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다가 더 걱정인 것은 다시 쓰는 글이 처음 썼던 글보다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후에 우연히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찾아 읽어보니 새로 쓴 원고가 예전 원고보다 나아서 크게 안심했다는 얘기였다. 이런 얘기까지 술술 읽고 있노라면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진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소설에 대한 얘기를 실로 많이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Ritual'에 대한 것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일하고 오후에는 수영이나 조깅을 한 뒤 아홉 시면 잠자리에 드는 패턴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 전설로 남은 천재 예술가들처럼 방탕한 생활을 흉내내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평생 단 한 번도 주문에 의해 쓰지 않고 자기가 쓰고 싶을 때만 즐겁게 글을 썼다는 그의 비결 아닌 비결인 것이다. 하루키는 이걸 애기하며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를 소개하기도 한다. 며칠 전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내도 매일 아침마다 식탁 사진을 찍어 '매일매일밥상'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고 또 출근길에 한 곳을 정한 뒤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같은 프레임으로 꾸준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에 와서 아무리 이 책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주 들춰보는 책은 사무실 책상 근처 탁자 위에 두고 읽은지 좀 된 책은 PD들과 함께 쓰는 책꽂이에 두는데 두 군데 다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빌려준 모양이다(책을 잃어버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루키의 왕팬인 김건익 실장님에게 빌려야만 했다. 아내가 읽고 나면 나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고맙습니다. 김건익 실장님.
부탁 1.
제 책을 빌려가신 분은 속히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족1.
우연히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소설가가 될 결심을 하고 서점에 갔을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다. 이것은 나에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비록 그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았지만..."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이 그의 책을 하나도 읽지 않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고 이 책부터 읽는 것은 음...뭐랄까. 교과서는 안 읽고 참고서부터 보는 격이랄까. 아니면 고기도 안 씹고 이쑤시개로 이부터 쑤시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물론 김지운이 [달콤한 인생]을 만들기 전에 오우삼의 [영웅본색]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건 워낙 그 사람이 천재였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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