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전에 소설의 수준은 결정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가가 초고를 쓰기 전 어딜 가는가, 무엇을 읽는가, 누굴 만나는가에 따라 소설의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법이다.”
소설가 김탁환이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 감사의 글’에 쓴 문장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기 전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들을 듣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과 디테일이 달라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 텐데, 왜 그는 굳이 이런 얘기를 책 말미에 써놨을까. 아마도 그는 언론 보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접하는 것과 직접 현장으로 나가 관련된 사람들과 인터뷰 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주하는 세월호의 이면이 얼마나 다른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너무, 자주 기가 막혔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하려고 해도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얘기와 상황들. 나도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에서 주인아줌마가 TV뉴스를 보다가 “아유, 유족들 한 사람당 삼 억씩 받았다메?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받으려고 저 난리래…”라고 말하는 걸 듣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사장님,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으셨어요? 라고 말하던 나는 그 순간의 무력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노란 리본 좀 안 달고 나오면 안 되냐고, 이젠 세월호 지겹다고 말하던 청중 속 아줌마에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 호통치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심정이 그때 나와 같지 않았을까.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맹골수도에서 선체 수색과 실종자 수습을 위해 일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이다. 김탁환은 세월호 사건 이후 조선 후기 조운선 침몰 사건을 다룬 장편 [목격자들]을 펴냈지만 역사적 사건의 비유만으로는 도저히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가 없어서 결국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을 다시 쓰게 된 것이다. 마침 세월호 유족들이 출연하는 팟캐스트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목격자들]을 읽고 김탁환을 사회자로 초빙하면서 소설의 구성은 더욱 객관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설의 주인공을 단원고 학생들이나 유족 대신 민간 잠수사로 정한 것이었다. 사건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유족들처럼 마냥 슬픔에 잠겨 있는 게 아니라 뭔가 구체적인 ‘작업’을 수행했던 사람들. 그러면서도 그 선의를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한 건’ 하러 내려갔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도록 일만 하다가 신체적 외상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심지어 정부로부터 민간 잠수사로 인정도 받지 못한 그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이었고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던 던 잠수사 나경수가 이 소설 [거짓말이다]의 주인공이다.
소설 속 이름은 ‘나경수’로 나오지만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은 김관홍이다. 김탁환은 팟캐스트 진행을 하다 민간인 잠수사였던 김관홍을 만나면서 세월호 침몰 이후 벌어진 일련의 참담한 과정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일테면 희생자를 인양하는 방법은 오로지 두 팔로 시신을 껴안고 올라오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신문이나 뉴스를 봐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나라에서 끝끝내 바디팩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아직도 배가 인양되지 않았으니 침몰된 선체의 내부를 직접 본 사람들은 잠수사들 뿐인 것이다.
작가는 세월호 유족들 뿐 아니라 진도 어민, 생존 학생과 그 부모들, 공무원, 동료 잠수사들, 심지어 일베 회원들까지 만나면서 이 사건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의 연속이고 동시에 사실들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르포타쥬 형식으로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돈 벌려고 간 겁니다. 간단해요…잠수사 일당이 백만 원이고, 시신 한 구당 오백만 원을 더 얹어 준다면서요? 민간 잠수사가 한 달 잠수하며 시신 열 구를 건졌다고 칩시다. 그럼 얼맙니까? 월수 3천만 원에서 시신 건진 값이 5천만 원이니, 한 달에 자그마치 8천만 원을 버는 겁니다. 그렇게 두 달이면 1억 하고도 6천만 원이죠. 두 달 동안 국가에서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줬습니다. 생활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죠. 나야 핸들 잡는 재주밖에 없어 이러고 있지만, 잠수기능사 자격증만 있다면 당장 그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잠수사들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바로 맹골수돕니다.”
소설가 김탁환이 만난 대리운전 기사 공환승(60세) 씨의 이야기다. 누가 이 사람을 욕할 수 있을까. 우리도 한때 이런 흉흉한 소문을 듣지 않았던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었다. 잠수사들이 그렇게 많았다는데도 단 한 명을 구조하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이기도 했고 또 너무나 기가 막힌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김관홍을 비롯한 많은 잠수사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내려간 것이지만 그러한 마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다 죽은 뒤에 내려가면 뭐하냐', '돈 벌러 가는 것 아니냐'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을 뿐 이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해군이나 해경과는 달리 작업일자 내내 육지나 항공모함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바지선에서 생활했던 민간 잠수사들은 결국 일을 끝내지도 못하고 나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
김관홍은 잠수사 일을 그만두고 대리운전을 했고 아내는 꽃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바닷속에 들어가 활보하던 사람이 대리운전을 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맹골수도에 다시 간 나경수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장면으로 끝나는 소설의 마지막을 작가에게서 듣고 마음에 들어 했다던 김관홍 잠수사는 결국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이 독후감은 2016년 11월 6일에 쓰다가 만 것이었다. 일요일에 시작해서 그날 다 쓰려다가 무슨 일이 있어서 미뤄둔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인터넷에서교보문고가 2016년도 '올해의 한국소설10'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1위로 뽑힌 소설이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라는 기사를 읽고 그때 쓴 메모를 다시 찾아보았다. 참담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천 일이 지났지만 선체는 여전히 인양되지 않았고 참사 당일 대통령의 일곱 시간 행적도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희생자들도 건져내지 못한 우리들은 역사의 죄인이 아닌가.
그래서 [거짓말이다]라는 소설이 고맙다. 역사소설을 주로 써오던 김탁환은 세월호를 기점으로 난생 처음 르포에 가까운 현대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의 인세는 전부 세월호 규명 활동을 위해 기부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김탁환 덕분에 우리는 세월호라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아주 외면하지는 않고 잠시 들여다 보았다는 치사한 위안을 얻는다.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비겁한 우리들을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 같은 소설인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간악한 무리들이 저지른 국정농단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기 힘든 시절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옳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 오늘 다시 들춰본 이 소설책에서 김관홍이 후배 잠수사인 박정두에게 일갈했던 구절이 눈에 아프게 밟힌다.
"정두야! 작년 봄 맹골수도로 내려오란 권유를 받고 내가 무슨 생각한 줄 알아? 간단해. 이게 옳은 일인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지금도 마찬가지야. 옳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난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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