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면

혜자 2018. 6. 12. 17:15

<쫄면> 

아내와 나는 둘 다 군것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이 있을 때는 과자나 음료수 등을 사먹는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 집에 손님이 와서 탄산음료나 쥬스를 찾을 때도 없어서 미안해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입맛이 비슷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아내도 나도 어렸을 때 군것질을 할 정도로 용돈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형제자매가 많은 집의 넷째 딸이었고 어머니가 하숙을 치셨다니 아이들의 어리광을 받아줄 여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자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군것질을 할 정도로 유복한 것도 아니어서 어린 시절 내내 동네 가게에서 과자 하나 제대로 사먹은 기억이 없다. 옛날 시골집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더구나 그 때는 집에서 프라이드 키킨이나 피자 등을 시켜먹는 건 고사하고 세 끼 밥만 먹어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으니.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남들은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 아르바이트니 뭐니 해서 스스로 돈을 벌고 쓴다고도 하는데 나는 하릴 없이 띵가띵가 놀기만 하는 편이라 늘 용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술집이나 당구장엔 가도 다방이나 빵집엔 잘 가지 않았다. 시쳇말로 '가성비'가 떨어진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구장 가는 길에 스낵코너 같은 데 들러서 뭘 사먹는 애들이 되게 신기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이런 식이었으니 군것질이나 불량식품의 즐거움은 다른 세상의 일인 것만 같았던 반생이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 결혼한 덕에 안 싸우고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런 아내가 가끔 열광하는 음식이 쫄면이다. 아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자기 용돈으로 뭔가를 사먹어봤는데 그 첫 번째가 쫄면이었던 것이다. 여고시절에 쫄면에 만두 하나 추가해 친구들과 나눠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고 말할 정도니까. 그래서 요즘도 밖에 나가 뭘 먹을까, 하면 쫄면을 꼽을 때가 많다. 이제 쫄면 정도는 배가 터지도록 사줄 수도 있지만 나는 왠지 그런 아내가 좀 안쓰럽다. 시인 김수영이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쓴 것처럼 아내가 너무 작은 것에 행복해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과 미안함 때문이다. 내일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쫄면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아내가 예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쫄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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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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