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에 예약해 놓은 조조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를 보러 토요일 아침에 CGV용산아이파크몰에 갔다. 밤늦게 찾아온 후배와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으므로 컨디션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화 볼 시간을 내기 힘드니 숙취에 시달리거나 아침을 굶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매장이 워낙 넓어서 여긴 올 때마다 길을 헤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쇼핑몰 사이를 헤매다 겨우 극장을 찾아내 들어가니 내 자리가 있는 열엔 60대 할머니 여섯분이 쫘악 앉아계셨다. 내가 나의 좌석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한 할머니가 "여기 맞아요, 자리"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일어설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다 일행이세요? 그럼 제가 저쪽에 앉을게요, 라고 줄 끝을 가리키자 다들 그게 좋을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쳤다. 자리야 얼마든지 양보해 줄 수 있지만 이 분들은 도대체 이 영화가 어떤 건지는 알고 오신건가,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심각하고 잔인하게 사람 많이 죽어나가는 영화인데. 오래 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를 볼 때 만났던 할머니 두 분이 떠올랐다. 영화 초반 얼치기 킬러가 이발소에서 면도칼로 손님의 목을 그어 살해하는 씬에서 걱정을 했었으나 중반쯤 보니 영화 도중 여유있게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하시던 그 할머니. 

아무튼 영화가 시작되었다. 전편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기대감이 컸다. 여전히 묵직하고 사실적인 진행, 강렬한 총격씬, 배우들의 존재감 등 어떤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영화였다. 특히 투탑인 베니치오 델 토로와 조슈 브롤린의 연기와 카리스마는 끝장 그 자체다. 시나리오도 역시 좋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확인해보니 1편 '암살자들의 도시'도 썼던 요즘 정말 잘 나가는 각본가 테일러 셰리던의 작품이었다. 그는 작년 개봉했던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도 썼다고 한다. 배우 출신인데 이렇게 잘 쓰다니 정말 놀랍다. 한 십 년 전 날고 기던 배우 출신 각본가 아론 소킨이 생각났다.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 등 미니시리즈 각본을 많이 썼던 그가 아주 수다스러운 편이었다면 테일러 셰리던은 꼭 필요한 대사만 하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며서 구조를 잘 짜는 작가다. 이번엔 전작에서 신참 여성 요원 케이트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엘밀리 블런트가 빠져서 너무 아쉬웠지만 그건 1편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지 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너무 큰 욕심이라 할 수도 있겠다. 스테파노 솔리마 감독도 뚝심있게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간다. 그러나 전편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총격전 등 액션은 한층 강화되었으니 눈호강, 귀호강이야 더할나위 없이 했지만 절절했던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1편에서처럼 새롭지 않으니 너무 매끈하고 정석적으로 흘러간다는 일말의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맨 마지막에 죽을 뻔하다가 살아 돌아온 베니치오 델 토로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던 어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이 닫히는 장면 이후 뿌듯한 마음으로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다가 옆좌석을 살펴보니 할머니들은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오늘 그 분들은 이 영화에 대해 뭐라 영화평을 남기셨을까. 3편의 제작이 확정되었고 그 작품에선 드니 빌뇌브 감독이 다시 복귀할지도 모르다던데 그 때도 극장에서 나와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까. 모두 젊고 건강한 편이셔서 충분히 시리즈 세 번째 작품도 보러 오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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