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차는 아반떼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광고대행사를 다니던 시절에 만기가 된 작은 적금을 찾아 그 차를 샀다. 이유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서'였지만 차를 꾸미는 데에 도통 관심이 없고 카오디오도 시쿤둥한데다가 길눈도 엄청 어두운 나는 출퇴근 이외의 용도로 차를 쓰는 일이 드물었고 술을 좋아하는 바람에 차는 늘 주차장에 혼자 서 있는 일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데이트할 때 차가 필수라고 하는데 나는 유독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여자애들만 좋아해서 그런지 도통 내 차에 여자를 태워본 기억이 없다. 나만의 공간은커녕 아침에 일어나면 '가만, 내가 어젯밤에 차를 어디다 뒀더라?'라고 기억을 떠올리기 바쁘기에 결국 2년 만에 차를 팔아버리고 다시 뚜벅이가 되었다.
대행사를 그만두고 작은 크리에이티브 브띠끄에 다니던 시절, 차를 몹시 좋아해서 별명이 '차돌이'인 친구가 차를 바꾸면서 자신이 타던 차를 나에게 넘겼는데 차종은 랜드로버 프리랜더였다. 졸지에 남들이 타고 싶어한다는 외제차를 갖게 된 것이다. 당시에 네비게이션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내 차엔 무슨 전자장치가 숨어있는 바람에 수신 방해를 심하게 받았다. 길치에 가까운 방향감각을 타고난 나는 결정적일 때마다 내비게이션 작동이 멈추는 바람에 길바닥에서 곤욕을 치르곤 했다. 차를 정비하는 것도 서툴러서 이전에 내 차를 타던 친구가 가끔 찾아와 혀를 끌끌 차며 정비소에 데려다주곤 했다. 결국 그 친구와 함께 운영하던 사무실을 접으며 차를 팔아버리고 나는 다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자동차 없이 지냈다. 뒤늦게 만난 아내도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또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우리 집에 자가용 없는 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운전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좀 아쉽다고 말했다. 나는 운전을 쉰지 십 년이 훨씬 넘었고 이전에도 남의 차는 거의 운전하지 않았으므로 렌트카를 덥썩 빌려 운전하는 게 왠지 생소하고 겁이 났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 시내 주행 연수를 나흘 정도 받아보았다. 생각보다 운전이 어렵지 않았고 예전에 운전하던 감각도 되살아났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아내가 없던 어느 주말, 쏘카를 불러서 빨랫감을 싣고 아리랑씨네센터 맞은편에 있는 빨래방으로 가서 빨래를 했다. 평소엔 버스를 타고 가던 곳이었는데 빨래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이럴 땐 정말 차가 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쏘카를 이용하게 된 시기와 회사를 그만두게 된 시기가 우연히 겹쳤다.
나는 사회 생할을 시작할 때부터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지금까지 계속 광고회사에만 다녔다. 작은 사무실도 운영해 보았고 프리랜서로도 일해 봤다. 광고는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표현해서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관건인데 결과물을 보면 쉬워보여도 막상 과정은 늘 어렵고 막막했다. 게다가 나는 성격상 일을 맡으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루 종일 노심초사하는 편이다. 당연히 다른 개인적인 일엔 소홀할 수밖에 없고 저녁에 초주검이 되어 귀가하면 날카로워진 신경을 다스리느라 혼자라도 술을 마시고 잠드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내는 안주 없이는 술을 못 마시는 나의 음주습관 덕분에 자신의 몸무게도 십 킬로그램이나 늘었다고 투덜댔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는 '많이 벌었으니 이제 그만 하면 됐다'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업계는 늘 위기였고 다니는 회사마다 사정이 안 좋았다. 갑을관계가 분명한 업계의 속성 때문에 불합리한 일도 많았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하는 스트레스, 촉박한 스케줄, 원래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 결과물 등 괴로운 일이 많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점점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힘든 건 그 동안의 공력이 있어 그런대로 참을 만 했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들은 켜켜이 쌓여 그대로 마음 속 상처가 되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이대로 계속 회사를 다니면 계속 불행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 달 전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결심했다. 아내에게 제일 먼저 말했더니 '당신이 오죽했으면 이러겠어'라며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자신도 속으로는 무척 걱정이 되겠지만 나한테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 나의 뒷모습이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며 도촬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 나의 뒷모습이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며 도촬을 하기도 했다. 그 사진에 얽힌 사연을 써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되느냐고 묻길래 아직은 안 된다고 했다. 공식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은 상태라 대행사나 광고주 분들이 알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퇴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법이라고 했다. 손에 쥔 공을 놓아야 더 큰 공을 잡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어쩌면 비슷한 시기에 다시 시작하게 된 운전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퇴직을 선언한 후 어느 일요일, 쏘카를 빌려 논현동에 있는 회사로 가서 개인짐을 챙겨오면서 '남이 운전하는 차만 타다가 내가 운전하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라는 걸 새삼 느꼈다. 앞으로의 삶도 그럴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이 나는 즐겁고 뿌듯했다. 비록 작은 차라도 내가 운전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니까. 아내를 태우고 쏘카를 반납하러 가는 길에 내가 그 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운전이 워낙 미숙하다 보니 나 혼자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 죽으면 몰라도 같이 타고 가다가 당신까지 죽게 만들까봐 무서워서...그 소리를 듣던 아내는 '혼자 죽는 게 걱정이지 둘이 같이 죽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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