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길위의 생각들 2019. 1. 6. 13:22


서양 사람들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미소를 짓고 악수를 나누는 것은 누구와 마주치더라도 내가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고 내 손엔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공생욕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인사법이 서양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밴드 등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서 누군가의 게시물에 '좋아요'로 그 선의를 표시하고 산다. 페이스북을 처음 만들 때 주커버그가 '싫어요'도 같이 만들지 않는 바람에 우리는 좋아요 하나만 가지고 감정을 표해야 하는 약간 복잡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서 오늘도 할 수 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다닌다. 이렇게 멋진 사진을 올렸는데 좋아요를 안 누르면 안 되지. 저렇게 좋은 글을 써서 올렸는데 좋아요를 안 누르면 섭섭해 할거야. 그렇게 얼굴이 예쁜데 좋아요를 안 누르면 질투해서 건너뛴다고 생각할거야....졸지에 좋아요를 안 누르면 그것은 곧 '싫어요'라는 표시로 둔갑한다. 괜히 좋아요 한 번 안 눌러서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오해를 받으면 손해니까 누르자. 뭐, 돈 드는 일도 아닌데.  

그러다 보니 오늘도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내 게시물의 좋아요 숫자를 확인한 뒤 그 좋아요를 눌러 준 사람들의 담벼락에 들어가서 인사 삼아 그의 게시물에도 좋아요 몇 개를 누르고 나온다.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확인차 밴드에 들어갔다가 내가 전부터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놈의 게시물에조차 좋아요를 누르려다가 멈칫한 나는 순간 아연실색한다.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늘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입에 발린 소리나 하면서 가면처럼 사는 인생이라니. 어제 대학 써클 모임에서 선배 형에게 내가 의외로 사회 생활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예전부터 나약하고 빈 구석이 많은 나를 잘 아는 형이 전혀 비꼬는 의미 없이 해준 칭찬이었지만 왠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재미 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숙취에 시달리면서 과연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런 엄청난 인문학적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올 리가 없다. 다만 바라건대 올해는 예전보다 좋아요를 좀 덜 누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땐 싫어요! 라고 소리도 지르며 살았으면 좋겠다. 어느새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취향이 아닌 권력의 문제가 되고 말았으니까. 성공한 대기업의 회장님이나 CEO들 중엔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유독 많은데 생각해 보면 그건 그가 급한 성격 그대로 살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위치보다는 마음이 더 문제다. 내가 좋아요를 누른 횟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싫어요를 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자 결심해 본다. 그러니 아내여, 친구들이여, 부디 새해부터 나와 함께 단체로 삐뚤어져 보지 않겠는가. 착하고 올바르게만 살면 재미 없으니까. 그리고 난 그대들이 그렇게 착해빠지거나 올바른 성향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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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숀펜이 나오는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를 보러 인사동에 나갔다가 내친 김에 서촌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창민 사진전]에 갔었습니다. 전에 페북에선가 이 포스터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은 나는데 이렇게 불현듯 사진전까지 보러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사진전 마지막 날이라 화랑에는 작가와 작가의 친구분들이 바닥에 앉아 간단하게 술잔을 나누고 계시더군요.

전시된 사진들은 놀라웠습니다. 포스터에 실린 <브레송에 헌정>이란 작품도 좋았고 <도촬_길거리 쵤영>이나 <우회 혹은 배려>같은 작품들은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도 보는 사람의 시선과 통찰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작품들이 아이폰으로 촬영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는 바로 그 스마트폰 말이죠.ㅠㅜ


저도 요즘 카메라를 배우기 시작한 참이라 그 충격의 강도가 남달랐습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길거리, 학교, 직장, 공원 어디에도 이야기는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때마다 카메라가 없죠. 그래서 우리는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하다가도 “에이, 운이 좋아서 저런 소재와 마주쳤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야 사진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고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이란 논리가 성립되면서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그런데 아이폰 카메라가 DSLR을 비웃기 시작한 겁니다. 아니, 새로운 생각이 고정관념을 비웃기 시작한 거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죠. 한창민은 아이폰 카메라를 들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기도발이 잘 먹히는 계룡산 소백산처럼 이름난 산들은 많지만(정말 거기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 부처님과 접속이 잘 되긴 할까요?) ‘사진발’이 잘 먹히는 장소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창민 작가는 이미 SNS에서 유명인사라고 하더군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많은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텍스트를 제시하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이번 전시회도 지난 일 년간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에 올렸던 사진 3500여 장 중 64장을 골라 인화했다고 합니다. 뭔가 꾸준히 하는 사람은 역시 다르죠? 전시된 작품들 중 이미 팔렸음을 표시한 작품들이 많더군요.

 

저도 내일은 카메라를 들고 오늘 산책 나갔던 곳을 다시 한 번 나가봐야겠습니다. 찍고 싶은 장면들을 아이폰으로 대충 찍었지만 DSLR카메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아직은 노출도 셔터속도도 잘 모르지만 이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으니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아이디어가  모든 것을 결정하죠.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아마 내일도 변함없이 그럴 겁니다.

  

역시 작가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해주는 사진이죠? 

 이 작가가 찍기 전에도 누군가가 이걸 먼저 찍었을 텐데.

 핸드폰으로 찍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고 강렬합니다.

 이 꽉 찬 구도!

 이 사진도 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사진 찍다가 뺨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은 못 찍겠죠. ^^

작가님과 작가의 친구분들. 구도는 어느 정도 제 의도대로 됐는데 촛점도 안 맞고 노출도 형편없는, 바보같은 제 사진 하나 덧붙입니다. ㅜㅠ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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