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준의 드라마일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1.16 응답하라, 2016! -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를 보고 1
  2. 2014.03.27 종편 드라마가 지상파를 이기는 방법 - [밀회]




한 가지 아쉬운 건, '공부 빼고는 뭐든지 잘 해서' 맨날 꼴찌만 하던 덕선이가 딱 일 년 재수하고 너무 쉽게 스튜어디스가 된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물론 누구든 실제로 덕선 역을 맡은 혜리 정도의 미모와 귀염성만 있다면 어떤 면접시험이라도 잘 통과했겠지만 말입니다. 근데 그때도 스튜어디스 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네, 맞습니다. 응팔 애기입니다. 방금 응팔 마지막회를 보았습니다. 처음엔 지난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너무 ‘추억팔이’에만 매진한다는 반발심에 조금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드라마와 연기자들이 화제가 되고 회가 거듭할수록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쌓이면서 저도 어느덧 ‘응팔’의 팬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가들의 치밀한 구성과 취재, 그리고 연기자들의 노력이나 드라마 자체가 가지는 개연성, 디테일 등이 정말 좋았거든요. 지난 시즌처럼 이번에도 역시 ‘마지막에 여주인공의 남편으로 등극하는 어릴 적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대형 낚시바늘도 큰 몫을 했구요. 오죽하면 제 주변에 공중파 드라마는 안 봐도 이 드라마만큼은 챙겨 본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어제 회의 시간에 들은 얘기지만 현재 ‘응팔’에 나오는 배우들이 최근에 찍은 CM이 무려 55개나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 리콜>처럼 한 때 ‘근미래'를 다뤘던 SF영화나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는데, 마친가지로이 드라마도 ‘근과거’를 다뤘기 때문에 유난히 더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는 우리들이 모두 기억하는 시대의 뻔한 모습이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면 새삼 감동하게 되는 단순한 구조가 숨어 있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아이폰을 썼다고 012나 015로 시작하는 플라스틱 삐삐 소품에 감동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도룡뇽이 차린 식당에 가서 위기철의 <논리야 반갑다>를 읽는다든지, 결혼 전날에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있는 신부의 모습 등은 뻔하면서도 ‘맞아, 그땐 다들 저랬지’라는 묘한 반가움과 공범의식이 숨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거기에다 이 드라마 시리즈는 평범한 척 하면서도 모두 특별한 인물들이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덕선이나 도룡뇽 말고는 대부분 공부도 잘 하고 모범생에다 효자 효녀들입니다. 보라처럼 과외 한 번 안 하고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든지 택이처럼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프로기사가 다닥다닥 옆집에 붙어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그러그러한 이야기 끝에 ‘그래도 그땐 사람들이 순진하고 착한 맛이 있었어’라는 ‘분식회계’가 숨어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자칫 이런 심리가 '과거회귀'로 가지나 않을까 매우 염려됩니다. 그때가 좋았어,라는 말은 현실을 잘 모르거나 외면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도피처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을 때 나오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은 너무나 전염성이 강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과오가 많은 사람을 ‘열혈 애국자’로 포장할 수도 있고 이승만 전 대통령 같은 기회주의자를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할 수도 있으니까요.


응팔을 지켜보면서 현실이 각박하고 힘들수록 지금 여기서 온몸으로 부딪히려는 굳은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무조건 과거만 추억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곧 총선이 있고 내년엔 대선이 있습니다. 과거는 부도수표요 미래는 약속어음이라 했습니다. 현재만이 현금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사람들은 성보라도 택이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근미래를 책임질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안철수 씨, 문재인 씨, 박원순 씨, 딴 데 쳐다보지 말고 대답해 주십시오. 과연 답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 '응답하라 2016'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분명 당신들 얘기가 제일 먼저 나올 텐데. 제발 정신 차리고 우릴 쳐다보십시오. 싫지만 우리에겐 지금, 당신들이 그나마 희망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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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밀회] 1,2편을 방금 보았다. 사실 나는 요즘 김희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굳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회사 동료인 우변이 며칠 전부터 이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며 “이거, 몰입도가 장난 아닌데요. 오랫만에 우리나라 드라마에 푹 빠져서 보네.”라고 귀뜸을 한 다음부터 그 궁금증이 커졌던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알려진 것처럼 40살 유부녀와 스무 살 청년이 우연히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진다는 통속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신물나는 억지설정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시청률이 상승하고 많은 지상파 시청자들까지 이 종편 드라마를 찾아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연출이나 각본, 또는 배우들이 매우 뛰어나거나, 아니면  그 셋 다 골고루 뛰어나서가 아닐까. 



우선 연출 안판석을 보자. 방송국을 튀쳐나가 [국경의 남쪽]이라는 영화를  크게 말아먹긴 했지만 안판석은 [아줌마], [현정아 사랑해] 등을 만들 시절 MBC  드라마 왕국의 좌장 노릇을 했던 인물이다. 그 후 나온 [하얀 거탑]은 일본 작품의 리메이크라는 핸디캡에도 치밀하고 입체적인 연출로 감독 인생의 정점을 찍은 바 있다. 


그리고 각본의 정성주. 역시 안판석과 함께 [아줌마]와 [장미와 콩나물]이라는 작품을 했고 그 후엔도 많은 드라마 극본을 쓴 베테랑 작가다. 나는 특히 최진실이 광고회사 직원으로 나왔던 [매혹]이라는 작은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정성주는 ‘씨네21’이었던가,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작가는 시키면 뭐든 다 쓰는 사람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드라마 작가란 예술혼을 불태우는 천재라기보다는 경험과 노력으로 당장 계약된 일들을 무슨 일이 있든 쳐내고야 마는 ‘고도의 기능직’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괜히 뭔가 있는 것처럼 폼을 잡는 사람들보다 이처럼 명쾌하고 직선적으로 자신의 일을 표현하는 정성주 작가에게서 짜릿한 신선함과 믿음직스러움을 느꼈다. 



‘연봉 일 억짜리’ 예술재단 기획실장인 오혜원은 자신이 근무하는 재단에서 진행하는 클래식 음악회를 진행하다가 퀵서비스 직원인 이선재가 놀라운 피아노 연주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리허설이 끝난 잠깐의 빈 시간에 배달 왔던 이선재가 무대에 놓여 있던 피아노를 무심코 연주하는 바람에 공연 진행자들 전체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이건 마치 영화 [굿 윌 헌팅]에서 학교청소부였던 맷 데이먼이 대학 복도 칠판에 써있던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던 것과 같은 설정이다. 졸지에 ‘조율된 피아노를 건드린 범인’이 되어버린 선재는 공연장 주변을 맴돌며 쫓기다가 그의 실력을 대번에 알아본 오혜원의 남편 강준형 교수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리고 강준형은 그를 자기 제자로 삼을 생각으로 아내인 혜원에게 선재의 연주를 오디션삼아 들어보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힘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등의 다양한 클래식 음악들 덕분이 아닐까 한다. 우에노 주리가 나왔던 화제의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볼 때도 그랬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장면은 늘 박력이 넘치고 새로우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샤인]에서 데이비드 헬프갓이 빗속을 뚫고 술집으로 들어와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장면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 드라마에서도 유아인이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지켜보던 김희애는 단숨에 그의 재능에 매료되어 몰래 눈물까지 흘린다.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근육질의 남자가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모습과는 질적으로 다른 ‘고상한’ 매력까지 있다. 



아직까지는 둘 사이에 연애는 없다. 그냥 순수하게 음악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청자들도 그 느낌을 안다.누군가를 알아보는 기쁨, 누군가에게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뿌듯함… 그 여운. 물론 여러 매체에서 이미 본 ‘화제의 키스신’ 이후로는 많이 달라지겠지만. 


이 드라마는 첫회부터 만만치 않은 속도감을 자랑한다. 콘서트 시작 전의 팽팽한 긴장감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잘 버무려 넣었고 예술재단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이해하기 쉽도록 대사 속에 자연스럽게 잘 녹여낸다. 음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입학비리와 비즈니스적인 이합집산, 암투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 잡념 없이 클래식을 연주하는 소년의 순수함이 있다. 게다가 고상한 척하던 심혜진과 김혜은의 ‘화장실 격투신’, 김혜은과 김희애의 ‘사무실에서 집어던지기신’ 등 단도직입적인 묘사들과 ‘전화녹음내용 까발리기’ 등도 통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지상파라고 점수를더 주고 종편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밀회]는 연출과 각본, 연기 모두 수준급 이상인 웰메이드 드라마다. 게다가 트렌드로만 따져봐도 꽤나 앞선 감각이다. 다시 말하느니 입만 아프겠지만 역시 문제는 ‘콘텐츠의 질’ 이라는 평범한 결론이다. 언제나 센 놈이 이기게 마련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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