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간을 살인병기로까지 만들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복수'라는 단어만큼 강력한 성취동기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전설은 물론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가 앞다투어 복수극이라는 테마를 즐겨 사용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의 부모 형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의 복수에 평생을 바치는 것도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연극 <조씨고아 - 복수의 씨앗>은 그런 의문을 테마로 만들어진 연극이다.

중국 진나라때 조정의 충신인 조순은 정적이자 간신인 도안고의 계략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자신은 물론 일가 300명이 멸족되는 대재앙을 겪는다. 조순에게 사랑 받았던 시골 의원 정영은 마흔 다섯 살에 늦게 자식을 하나 얻었는데 낳은지 한 달이 지난 그 자식을 대신 죽게 함으로써(도안고가 바닥에 세 번 패대기를 쳐서 죽었다고 한다)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씨고아를 살린다. 그리고 간신 도안고 밑으로 들어가 조씨고아를 도안고의 양아들이 되게 한다. 스무 살이 되면 조씨고아에게 복수를 하게 하려는 일념으로.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다. 그리고 이십 년 후 정영과 조씨고아는 드디어 도안고에게 복수를 하는 데 성공한다. 황석영의 역작 [손님]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가족을 도륙하는 이 비극의 끝엔 무엇이 남을까.

이 연극은 13세기에 살았던 기군상이 사마천의 <사기>에 있던 기록을 토대로 쓴 희곡이 원작이다. 이를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연출가인 고선웅이 각색해 재작년 처음 무대에 올렸는데 어느새 '명불허전'이라는 평을 들으며 전회매진을 기록하는 작품이 된 것이다. 그제 내가 명동예술극장에 가서 본 [조씨고아 - 복수의 씨앗]은 본토인 중국 베이징 공연을 거쳐 국내에서 세 번째로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군신을 위해 초개 같이 목숨을 버리거나 적장으로 들어가 신분을 숨기고 오랜 세월을 견디다가 복수를 감행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인이 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설정은 많았으니까. 그러나 그건 개념적으로 따졌을 때 얘기고 실제로 숨 쉬고 밥 먹고 소리 지르며 살아가는 인간군상들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게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연극이 상연되는 지금은 진나라나 원나라 시대와는 가치관이 다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에서도 정영의 아내는 "당신이 한 약속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그런다고 제 자식을 죽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라고 남편에게 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영은 조순의 아들이자 부마인 조삭과 공주의 눈물어린 부탁을 저버리지 못한다. 간단치 않은 캐릭터를 앞에 두고 연출가의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 작품을 21세기에 한국에서 상연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가 선택한 것은 '존재론적 질문과 유희정신의 조화'였던 것 같다. 군신을 위한 복수극이라는 테마를 다루고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머코드로 무장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심각함과 유머가 공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간신인 도안고나 시골 의원 정영은 물론 하물며 복수를 부탁하는 공주의 대사와 몸짓에도 경쾌한 유머가 스며있어서 관객들이 1, 2부로 나뉘어진 150분 동안 여러 번의 감정적 이완을 느끼며 연극을 즐길 수 있다. 이건 훌륭한 각본과 연기가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한 일인데 이 연극은 그것을 해내고 있다. 극의 중심이자 복잡한 주제의식을 실어나르는 정영 역의 하성광은 그 중에서도 눈이 부신다. 장엄할 때는 장엄하게, 소심할 때는 소심하게 천의무봉의 연기를 펼치는 것이다. 특히 높은 목소리로 길게 이어지는 그의 탁월한 대사 능력은 놀랍다.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연극대사가 아니라 랩처럼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극에서 누군가 죽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 부채를 펼치는 묵자라는 캐릭터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감초 역할을 적절히 수행한다.

도안고 역을 했던 장두이는 초반에 좀 대사를 불분명하게 처리해 눈쌀을 찌푸리게 했으나 이내 컨디션을 회복하고 극의 중심 역할을 해낸다. 그 밖에도 공손저구 역의 정진각, 조순 역의 유순웅, 정영의 아내 역을 맡은 이지현, 공주 역의 정새별 등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게 딱 맞는 열연을 펼친다. 대사 처리에서 가장 미숙한 사람은 조씨고아 역을 맡은 이형훈이었는데 이는 맡은 역할이 열혈청춘인 스무 살의 젊은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흠이 되진 않았다.

무대는 아주 미니멀하하게 꾸며져 흡사 부조리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아내는 예전에 LG아트센터에서 보았던 피터 브룩의 <마술피리>가 떠오른다고 했다). 고선웅은 천정이 높은 명동예술극장의 장점을 살려 소도구들에 줄을 매달아 천정에서 내려오게 하거나 올리는 무대연출을 선보인다. 두 겹으로 되어 있는 커튼은 공간의 폭을 더욱 넓게 만들어 몇 사람만 등장하는데도 당장 옛 중국 대륙과 왕실의 스케일이 느껴지게 만든다.

연극을 보기 전 프로그램을 한 권 샀다. 연출가 인터뷰가 실려 있었는데 인터뷰어 김민정이 원작인 기군상의 [조씨고아]와 고선웅 각색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내가 아무리 뛰고 날아봤자다. [조씨고아 - 복수의 씨앗]은 결국 기군상 작가의 손바닥 안에 있다."라고 하는 대답이 믿음직스러웠다. 그의 말대로 이 작품은 원작의 문제의식을 가볍게 뒤집거나 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복수에 성공하고 그 복수극 때문에 죽은 사람들과 정영이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아내를 비롯한 죽은 자들이 그를 아는척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침으로써 복수의 허망함을 전할 뿐이다. 그렇다고 복수를 하지 말았어야 할까. 그건 쉽게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연극은 즉답을 회피함으로써 우리에게 '살아가는 원동력'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고선웅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릴림픽 개폐회식 연출을 맡아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보냈던 스타 연출가다. 5·18광주민주항쟁을 다룬 ‘푸르른 날에’를 연출한 것 때문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가 문체부 차관이 당시 초연인 이 작품을 보고 리스트 삭제를 부탁했다 해서 유명세를 치룬 적도 있다. 1부를 보고 인터미션에 잠깐 밖으로 나오다가 우리 좌석 맨 뒷열에 앉아 있는 배우 이혜영을 보았다. 얼마 전 이 극장에서 그가 주연했던 [메디아]를 보았기에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연극을 보았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가 십만 원을 내고 국립극단 회원으로 가입하면 할인 혜택도 많고 또 일 년 간 국립극단에서 올리는 작품만 제대로 찾아 보아도 좋은 연극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길래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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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명동 엘칸토 예술극장에서 피터 한트케의 언어유희극 <카스파>를 본 적이 있다. 아무런 사정 정보 없이 보게 되었는데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인극이라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연극 도중에 목이 칼칼해서 계속 '음,음...'하고 헛기침을 했는데 배우가 갑자기 연극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노려 보며 "거, 연극을 볼 때는 그 목으로 음,음...소리 좀 내지 말아요!"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배우도 좀 너무 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인 나는 너무 놀라고 무안해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었다. 그러니 어찌 그 연극을 잊을 수가 있으랴.  


내게 명동은 구두와 연극의 거리였다. 엘칸토 예술극장이라는 이름도 금강제화라는 구두회사의 후원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을 것이다.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본 것도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창고극장은 사라졌고, 엘카토예술극장도 없어졌다. 그런데 언제인가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동네에 사는 김진경 연출가가 이 연극을 우리에게 추천했고 아내가 김광덕 배우에게 예약을 부탁했는데 마침 예약 취소된 자리가 있다고 해서 운 좋게 빨리 그 연극을 보게 되었다. 어제 저녁 연극을 보고 나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급하게 관람후기를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오늘 정신을 가다듬고 독서일기를 하나 올린 뒤 오자 수정을 해서 여기에도 다시 한 번 올려 본다. 


아아. 내가 이렇게 문화 생활을 자주 해도 되는 걸까. 성북동으로 이사 온 뒤로 영화는 좀 줄었는데 오히려 연극 나들이가 부쩍 늘었다. 배우들이 이웃에 살아서 그런가 보다. 오늘은 명동예술극장에서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로버트 알폴디가 새로 해석한 연극 [메디아]를 관람했다. 성북동에 사는 여배우 김광덕 씨가 코러스로 출연하는 작품인데 오랜만에 보는 배우 이혜영 주연 작품이라 더욱 기대가 되는 연극이었다.

난 어렸을 때 엉터리로 읽은 기억이 조금 나긴 하는데(그리스 비극이 다 그렇듯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배신, 분노, 복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나는 이혜영의 목소리와 억양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번 연극의 타이틀 롤인 메디아 역으로는 이혜영 이외의 배우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딱 적역이었다(단 8분 간 출연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남명렬 배우 - 요즘 아로나민 골드 CM에 나와 '드신 날과 안 드신 날의 차이을 경험해 보십시오' 라고 말하는 분 - 도 좋았다) 같이 출연한 김광덕 씨는 이혜영 선배와 출연하며 그 카리스마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믿었던 남자 이아손에게 배신을 당한 메디아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배신자에게 가장 큰 아픔을 남기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그건 바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최고의 복수는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스스로 용서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비극의 장치로서 이보다 더 센 선택은 없을 듯하다. 감독은 신들의 이야기였던 원작에서 신의 영역을 모두 삭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러브 스토리'로 개작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혜영 배우에게 들은 얘기지만 '분노는 큰 사랑에서 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앞뒤로 움직이는 기다란 의자를 이용한 심플한 무대도 멋졌고 그리스 비극이지만 모두 현대 의상을 입고 나오는 점도 좋았다. 다만 유머가 거의 없는 정극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좀 힘들었다. 그리고 해설을 대신해 가끔 나오는 직설적인 대사는 너무 친절해서 짜증이 났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내 앞에서 일어서던 여자 관객은 옆 친구에게 "야, 내 기가 다 빨린 느낌이다." 라며 웃었다. 두 시간 내내 계속된 열연과 긴장감에 약간 탈진을 한 것이다. 물론 연출가도 배우도 관객도 쉬운 길을 마다하고 일부러 선택한, 고되지만 뿌듯한 탈진감이었다.

끝으로 이혜영 얘기 하나만 더.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두 아이를 죽인 뒤라 옷과 손에 피를 묻힌 상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이혜영이 개인적인 얘기를 언급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동안 계속 작품 활동을 하긴 했지만 지난 이십 년간 엄마와 아내로서 아이들 키우는 데만 집중하다가 작년에 연극 [갈매기]를 기점으로 '숨어있던 욕망'을 다시 발견했음을 깨닫고 작품이 끝난 뒤 집에서 일주일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추동력 삼아 이번에 다시 [메디아]라는 작품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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