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한 여자가 뒤늦게 만나
살림을 합쳤다.
각자의 애인이나 옛 추억이야
당연히 정리를 했지만
책꽂이에는 아직도
과거의 편린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두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한 집에 사는 두 사람이
할 일이라 생각했다.
[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들을
먼저 원하는 사람들에게 한 질씩 주었다.
시시한 추리소설이나
값싼 베스트셀러들은
그냥 버렸다.
그래도 책꽂이엔 이상하게
책들이 많았다.
어느날 저녁
거실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각자 가지고 있던 시집들만 모아 보았다.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정호승의 <새벽편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정호승의 <별들은 따뜻하다>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황지우의 <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모두 두 권씩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당대에 화제가 되었거나
후대까지 스테디 셀러로
사랑을 받았던 시집들.
너무 흔하고 트렌디해서
살짝 민망하기까지 했던,
그러나 전생에 나누어 가졌던
깨진 거울조각처럼
이제 와서야 두 권이
제짝처럼 야하게 몸을 맞댄
그 시절의 공감대.
'2-1=1'
이 간단한 수식이
삶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2013년 9월의 어느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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