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 예매 어플에 뜬 <비치 온 더 비치>라는 영화 제목은 단박에 'Sex on the beach'라는 칵테일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정가영이라는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홍상수가 생각난다는 평이 있었다. 조금 더 궁금해져서 유투브에 들어가 그가 만들었다는 단편영화 <내가 어때섷ㅎㅎ>이라는 작품을 먼저 찾아 보았다. 그냥 콘도 응접실 같은 데에 카메라 한 대 뻗쳐놓고 13분동안 두 남녀가 앉아 맥주 마시며 수작질하는 내용이 전부였는데 놀랍도록 재미가 있었다. 감독이자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정가영은 '여자가 들이대는 영화를 만들어보면 재밌을 거 같아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는 정말 그의 생각대로 어이 없이 웃기면서도 귀여운 맛이 있었다. 내친 김에 <처음>이라는 단편도 찾아보았다. 연기과에 다니는 남학생이 두 여학생이 있는 방에 찾아와서 영화 촬영 전 첫 키스를 경험하고 싶으니 협조해 달라고 얘기하는 황당한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정가영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특히 평범하면서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억양이 일품이다. 성적 욕망에 충실하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 캐릭터, 하면 그동안 윤성호 감독만 떠올랐었는데 이제 정가영이라는 막강 캐릭터가 하나 더 생긴 거 같아서 반가웠다. 개봉한지 며칠 되지 않은 영화 <<비치 온 더 비치>.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은 <라라랜드>가 더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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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은 후배인 혜원을 좋아한다. 그런데 혜원은 동욱의 마음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과 사귀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다. 오늘도 동욱이 조르고 졸라서 겨우 만든 둘만의 술자리이지만 얘기는 겉돌기만 한다. 테이블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새로 옮긴 혜원의 직장 얘기를 하다가 혜원이 육 개월 전부터 동욱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일하는 임창수 대리와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옆자리 직장 동료와 몰래 사귀고 있다는 사실에 격분한 동욱은 일방적으로 혜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동욱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던이 술집의 주인이자 선배 영식은 혼자 남은 동욱을 위로하고자 중국에서 가져 왔다는 술을 한 잔 따라 준다. 그런데 동욱이 이 술을 한 잔 마시고 고개를 든 순간 영식은 사라지고 눈앞에 사라졌던 혜원이 다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시점은 둘이 새로 옮긴 직장 얘기를 하던 불과 몇 분 전 상황이다. 동욱은 이미 알고 있지만 혜원은 자신이 임창수 대리와 사귄다고 고백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다시 얘기를 이어가다가 임창수 대리와 그의 전 애인 은나가 사귄 기간 얘기를 하며 싸우는 두 사람. 이번엔 동욱이 나가고 술집 주인 영식이 중국술을 마시게 된다.그리고 또 타임슬립.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비밀은 술이다. 이 술은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의 약이었던 것이다.

흔히 단편영화라고 하면 웬지 예술적이라 뭐가 뭔지 모르는 알쏭달쏭한 내용일 거라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흥행과는 담을 쌓은 듯 어렵게만 만든 단편영화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일반론을 가볍게 뒤집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정말 좋았건 이유는 타입 슬립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능력으로 지구를 구한다거나 복권을 산다거나 하는 거창한 게 아니라 동생이 훔쳐먹은 푸딩을 다시 차지한다거나 너무나 갑작스러운 첫사랑의 고백을 되돌린다는 사소함에 쓰이는 게 더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도 그렇다. 타임 슬립을 일으키는 중국술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하이컨셉이지만 여기서는 각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도구 이상으로 쓰이지 않는다. 대신에 연애나 질투 같은 사소한(?) 감정들이 개연성 있는 플롯 속에서 대활약을 한다. 장소 한 번 바꾸지 않은 술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임창수 대리는 얼굴 한 번 나오는 일 없는데도 신기하게도 영화 내내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 건 감독의 뛰아난 각본 감각과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30분남짓 되는 이 단편은 나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백영욱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얼마 전 이 작품이 외국의 어떤 영화제에서 뒤늦게 상을 또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림으로써 알게 되었다. 우리 회사의 김건익 실장님에게 영화 [한 잔] 얘기를 했더니 자신은 시사회 때 후배인 백영욱 감독은 물론 그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고 자랑을 하셨다. 맨 마지막에 혜원이 중국술을 한 잔 마시고 처음의 설전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은 아주 어릴 적 읽었던 <기적을 일으키는 사나이>라는 동화가 생각나서 더욱 반가웠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이런 멋진 영화를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안 그래도 어렴풋이 술 약속을 해놓긴 했는데 11월이 가기 전에 백영욱 감독님하고 만나 이 영화 얘기 하면서 소주 '한 잔'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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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 토요일자 신문을 읽었습니다. 신동호 논설위원이 쓴, 2001년도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탔던 [버스44]라는 중국의 단편영화 이야기를 다룬 칼럼이었죠. 세월호 참사에 일그러진 우리들의 현실 인식이 겹치는 기발한 영화였습니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도 이 영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더군요. 짧은 영화니까 다들 한 번씩 보셨으면 해서 공유합니다. 신문칼럼도 함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9201055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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