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망설였다. 올 연말 최고의 기대작 [마약왕]은 개봉하자마자 평론가들의 악평에 시달리더니 CGV어플을 열어보니 어느새 예매 9위로 떨어져 있었다. 평론가들과 관객의 악평이 일치할 경우 영화의 질이 어땠는지는 그동안 경험해봐서 알지 않는가. 그러나 내게는 송강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어떤 영화에서든 거의 본능적으로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연기의 신 송강호. 영화가 아무리 후졌더라도 송강호는 살아남았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나를 혼자 토요일 오후에 대학로에 있는 극장으로 향하게 했다. 

토요일 오후 5시 15분 영화인데도 극장은 빈 좌석이 많았다. 관객들의 수준도 별로였다. 내 뒤에 앉은 남자 새끼는 자기 여자친구에게 계속 영화와 역사와 사회에 대한 되먹지 않은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었고 여자는 영화를 보는 도중에 전화를 받아 무려 15초 이상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는 뻔뻔함을 보여줬으니까. 그러나 의의로(?) 영화가 좋았다. 우려와 달리 설정이나 만듦새가 나쁘지 않았고 송강호는 물론 김대명, 조우진, 조정석 등 출연진의 연기가 고르게 다 좋았다. 우민호 감독 때문에 연기력을 인정 받아 지금은 한국영화에서 안 나오는 작품이 거의 없어 '제 2의 이경영'으로 불린다는 조우진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더 킹]에서 어설픈 경상도 사투리 검사 역을 맡았던 김소진의 연기조차 여기서는 훌륭했다. 약간 안쓰러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배두나도 대체로 예쁘게 나왔고 '불구경보다 재밌다는 미친년 구경 다 하셨으면 이제 그만 집에 가세요!"라는 대사를 칠 때는 카리스마도 있었다. 

139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마약, 폭력, 권력 등 심각한 소재, 1970년대 초반이라는 생경한 시대적 배경 등이 젊은 관객들의 발걸음을 막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흥행을 위해 차라리 조우진이 죽던 사우나 씬을 조금 더 잔인하고 자극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마지막 송강호가 자신의 집에서 총질을 하며 경찰과 대처하는 씬은 알 파치노의 열연이 빛났던 브라이언 드 팔머의 [스카페이스]에서 따온 게 명백한데, 송강호가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볼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실 우민호 감독은 전작 [내부자들]에서도 마틴 스콜세지나 프랜시스 포드 코플라 등의 영화를 베끼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선이 굵은 작품은 그 나름의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소재에 머물지 않고 그 소재를 통해 어떤 '맥락'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작가'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하고 80년대가 시작되는 시대적 배경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도 단순히 마약 영화가 아니라 욕망과 권력과 편법으로 얼룩진 우리의 현대사를 조명하는 필름으로 그 의미망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몰론 마지막 장면에 화면을 가득 메우는 송강호 얼굴 위로 '15년 형을 선고받은 그 때문에 그때부터 검찰에 마약반이 신설되었다'라는 조정석의 나레이션이 흐를 때는 파자마를 입고 현관문 밖으로 조간신문을 주우러 나오던 레이 리오타의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뭐 어떠랴. 이 작품은 그런 사소한 흠집보다는 선 굵고 거대한 그림을 그리려는 의도가 더 돋보이는 역작인데. 흥행 성적과는 상관없이 영화적으로도 한 번은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세간의 평 때문에 놓치고 후회하지 말자.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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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은 오랫동안 ‘광주사태’라고 불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항쟁’이라는 명예를 회복했는데 아직도 '그건 불순세력의 폭동이었다'고 말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518기념일에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바로 얼마 전까지 논란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그만큼 상흔이 짙은 역사적 사건이었고, 그 강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참살극이었으며, 37년이 지난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비현실적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나는 518계엄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박정희가 믿었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서울의 봄’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을 어깨 너머로 듣다가 몇 달 후 갑자기 MBC뉴스데스크에서 이득렬 앵커가 “지금 이 시각, 광화문에선 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입니다”라는 오프닝 멘트를 들을 때도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그 해에 존 레논이 암살당했고, 그래서 그의 유작 앨범 [Starting Over>를 라디오에서 매일 들었다든지 하는 건 잘 기억나도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워낙 쉬쉬하는 분위기라 나처럼 어린 놈은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518의 참상을 사진이나 필름으로 목격하고 뒤늦게 치를 떨어야 했다.

대학 1학년 5월 축제기간에 학생회관에서 틀어준 광주 관련 기록물들은 대부분 독일 방송국에서 온 것들이라 해서 약간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나는데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그 의문이 풀린 셈이다. 이 영화는 518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어떻게 화자를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한 점이 가장 큰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독일인 기자와 함께 택시운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너무나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광주까지 태워다주면 십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얼떨결에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 택시기사 만섭. 평범한 속물이었던 그가 뜻하지 않게 독일 기자 피터와 동행하면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은 송강호라는 괴물 연기자의 대사와 눈빛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아니, 평범한 택시운전사의 마음과 목소리였기에 관객들을 그대로 1980년 광주 현장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뒤덮었던 [군함도]의 흥행을 [택시운전사]가 꺾었다고 한다. 만약 거창한 역사의식이나 직업의식에 불타는 주인공이 열변을 토하는 영화였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아, 송강호.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그러나 송강호의 위대함은 다른 곳에 있다. 사실 '연기만 잘 하는 기계'들은 많다. 케빈 코스트너처럼 자유롭고 진보적인 역할을 많이 했던 배우가 알고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면에서 송강호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셀럽이다. 비록 [변호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민주 투사요’ 하는 오버도 없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묵묵히 신념을 지켜내면서 예술적인 성과까지 이루어 내는 것. 이건 정말 어렵고 소중한 능력이다. 그래서 난 송강호라는 배우를 이 시대의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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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는 악당들의 인질극 덕분에 주인공 이소룡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에 있는(!) 파고다탑에 가서 보물을 탈취해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탑엔 각 층마다 세계의 무술 고수들이 지키고 있는 거죠. 이소룡은 첫 칸부터 압둘 자바가 기다리고 있는 맨 윗층까지 올라가 차례차례 고수들을 제압해 나갑니다. 전 그 영화를 볼 때 어린 마음에도 “쟤네들은 도대체 이소룡이 오기 전까지는 저기서 뭘 하고 기다릴까? 먹을 것도 놀 것도 없는 텅 빈 방에서…그리고 왜 이소룡이 괴조음을 내지르고 싸울 때 밑으로 내려와 동료 고수들과 같이 싸우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등장인물들에 대한 ‘개연성’에 대한 목마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보면서도 비슷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설국열차라는 설정 자체가 ‘노아의 방주’ 같은 세기말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짐작 못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꼬릿칸의 사람들은 저토록 현실적이고 삶에 대해 확고한 신념과 욕구, 기대치가 있는데 반해 다른 칸 사람들은 왜 저렇게 비현실적이며 도대체 ‘인격체’처럼 느껴지지 않는 걸까 하고 의아했습니다. 물론 꼬릿칸 사람들이 최하층민 계층이니까 반란의 욕구가 매우 강하고 다른 사람들은 지배층에 속하거나 그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계층이라서 그렇다고 할 순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란군들이 달려오는데도 자신의 열차칸을 벗어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비로소 총을 쏘거나 도끼질을 한다는 게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가하게 앉아 초밥을 만들어 먹거나 어린이들과 수업을 하거나 계속 마약을 하고 춤을 추고 사우나를 한다는 건 지나치게 관념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한마디로 불편한 거죠. 그런데 제 아내는 이 장면이 너무도 당연하고 잘 된 설정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저와 삐딱선을 탄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여기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봉준호의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박찬욱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것도 관람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었습니다. 열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서로 망치 살육전을 벌이던 적들끼리 “해피 뉴 이어!”를 외치며 잠깐 멈추는 유머코드는 [올드보이]에서 자기 생니를 뽑으며 고문하던 악당에게 “우린 친구잖아”라고 말하는 오달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박찬욱은 이런 잰체하는 유머코드를 좋아합니다. 연기력은 뛰어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틸다 스윈튼의 연기도 거북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결정적으로 삶은 계란을 나눠주다가 그 트레이 속에서 기관총을 꺼내 쏘는 장면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명백한 오마주라고 해야겠죠.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시퀸스에 이르기까지 ‘팔’에 대한 고찰이 많이 나옵니다. 앤드류의팔은 열차 밖으로 내밀어졌다가 박살이 나고 꼬리칸의 선지자 길리엄은 팔이 없는 반면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커티스는 아직도 자기가 팔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죠. 그런데 이 모든 게 나중에 ‘달마대사’의 메타포임이 밝혀집니다. 전 이게 좀 싱겁습니다. 


그리고 열차의 엔진을 소유하고 있는 맨 앞칸의 윌포드가 작은 아이를 납치해 가는 이유도 “이 작은 곡사포 안을 어린아이 손 아니면 어떻게 닦아낸다 말입니까?”라는 거짓말로 나치들로부터 어린 생명을 구했던 쉰들러의 대사를 거꾸로 변용한 것 같아서 좀 낯간지러웠습니다. 



얘길 하다 보니 온갖 불만을 늘어놓으며 남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영화를 일방적으로 폄훼하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군요. 그런데 평소에 안 그러던 정말 제가 정말 왜 이럴까 생각해 봤더니 가장 결정적인 건 ‘감동’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짜릿함이나 감동 부분의 트리거 역할을 해야 할 요나와 남궁민수의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 연기 잘 하는 송강호와 동서양 어디서도 통할 거 같은 매력적인 포스를 뿜어내는 고아성은 영화 내내 심드렁하게 겉돕니다. 캐릭터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죠. 이 열차의 보안 책임자였던 남궁민수와 다음 칸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있는 요나는 원할 때마다 열차칸의 문을 척척 열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지만 정작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성취동기’가 부족합니다. 하다 못해 윌포드에게 철천지 원수 진 일이 있어 그걸 꼭 갚아야 한다든지, 아니면 그게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진실과 통한다든지 하는 확실한 동기가 그들에게 주어졌으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건 고작 1년에 한 번씩 세계를 뱅뱅 도는 ‘윤회’ 같은 이 지겨운 열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에서 생존 가능성을 찾는 것뿐입니다. 이건 좀 맥이 빠지는 결론이며 안일한 통찰이죠. 



이상이, 엄청난 스케일과 비주얼, 쟁쟁한 스타들의 뛰어난 연기가 등장하는 만듦새 훌륭한 일급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설국열차]를 재미 없게 본 이유입니다. 물론 이 메모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혀야 뒷탈이 없겠으나… 따지고 보면 개인적이지 않은 의견이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저는 유명한 평론가나 기자도 아닌 일반 관객인데요 뭐. 그런 의미에서 매우 성급하고 편협한 영화 일기인지 알면서도 그냥 올립니다. 이건 그저 제 개인적인 블로그이고, 개인적인 페이스북 담벼락일 뿐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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